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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노 Oct 13. 2022

<방구석 일기장> 동생

세상의 모든 동생을 위하여

2022.09.15

날씨: 제법 쌀쌀했지만 동생과 통화 후 집을 나서니 하나도 춥지 않음


동생

#내 동생


나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닮은 존재이다. 유일하게 동일한 한 쌍의 부부의 정자와 난자에서 나온 생명체이니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서는 둘이 닮았다는 소리를 가끔 듣기도 하지만, 사실 둘이 어쩜 그렇게 다르냐는 소리를 훨씬 더 많이 듣고 자랐다.


흰색이 있으면 검은색이 있고, 짜장면이 있으면 짬뽕이 있고,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있듯이,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어도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이제야 철의 ㅊ끝자락이 조금 보일랑 말랑 하는데,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철이 들어 태어났다. 아마 역도 선수를 했다면 장미란 님의 후계자로 대한민국을 빛냈을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닌 게, 우선 외형부터 동생은 역도를 했으면 매우 유리했을 만큼 키가 많이 작다. 나는 또래에 비해서 조금이나마 큰 편인데, 그래서 둘이 같이 다니면 더더욱 키 차이가 부각된다. 동생은 얼굴도 엄청난 동안이어서, 3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학생 소리를 듣고 다닌다. 가뜩이나 조그만데 하필 사는 곳은 온갖 거인들이 모인 미국,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인 뉴욕에 살고 있으니 아마 본인도 걸리버들 사이에 낀 소인처럼 느끼며 다니고 있을 것이다.



#리틀 테레사


그래도 하나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동생은 사실 그 누구보다 큰 거인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작아 보이지, 속에는 전 농구선수 하승진 님, 아니 그보다 더 큰 NBA 농구선수보다 더 거대한 인격이 숨어있다. 만약 환생이 진짜라면 아마 동생은 전생에 마더 테레사, 마틴 루터 킹, 예수와 같은 성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동생은 자신보다 남을 더 챙기곤 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슈퍼마켓에 데려가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 하면, 보통의 꼬마는 입꼬리를 씰룩대며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코너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그럼 오빠 꺼는?' 하며 자리에 있지도 않은 나를 챙기곤 했다.


반대로 나는 동생이 내 거 뭐하나라도 잠깐 가져가면 부모님한테 달려가 동생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배짱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매 번 그러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생이 나에게 양보를 했었다.


청소년기 때도 나는 사춘기라는 방패를 이용하여 부모님과의 갈등을 외출의 핑계로 삼는 게 다반사였는데, 동생은 사춘기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나와 싸우고 나서 상처받은 부모님의 상처를 보듬어주곤 하였다. 나중에서야 동생이 그때 자기도 힘들었다고 고백하였는데, 그때의 나마저도 철이 없어 그렇게 미안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동생은 나를 보살펴주었다. 동생이 한국에 있을 때 잠깐 같이 살았던 적이 있는데, 같이 살 때도 사실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하였다. 동생은 아침형 인간이라 새벽에 일어나 일찍 잠드는 반면, 나는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시다가 동생이 한참 자고 있을 때 집에 기어들어와 동생이 집에 올 때쯤이면 다시 밖으로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한심하고 미울 법도 한데, 동생은 오히려 콩나물국이 해장에 좋다며 아침까지 차려주곤 하였다. 아침밥은 물론이고, 이쯤 되면 설거지, 빨래 등 온갖 집안일도 동생이 거의 다 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인이 된 나도 동생과 같이 있을 때는 잘해주려고 하였지만, 애초에 나의 생활 패턴이 망가져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동생에게는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더한 일도 많았지만, 아무튼 그때마다 동생은 무한한 인내와 오히려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태몽?


그동안 못해주었던 일들이 내 안에 한이 되어서 일까, 안 그래도 어젯밤 동생에 관한 꿈을 꾸었다. 지금 이 글의 소재가 동생인 이유도 꿈 얘기를 적기 위해서이다.


대부분의 꿈이 그러하듯 모든 장면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꿈의 시작은 좀비 때가 몰려오는, 또는 배가 침몰하는, 아무튼 그런 느낌의 매우 긴박한 긴급 재난 상황이었다.


흔한 영화의 클리셰처럼 모두가 구조될 수는 없어 저마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는데, 다행히 운 좋게 나에게도 구조될 기회가 왔다. 구명보트 또는 구명버스 느낌의 어떤 운송수단이었는데, 타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나는 저 멀리 동생을 보았다. 게다가 동생은 배가 부른 만삭인 상태였다(동생은 아직 미혼이다). 나는 구조대원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잠시만요!'를 외치며 얼른 달려가 동생을 끌고 오다시피 데려왔다.


하지만 역시(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둘 중 한 명이 살려면 한 명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멋진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제발 동생을 살려달라고, 아기도 있는 몸이라고, 손발을 모두 빌며 애원하였고, 그렇게 펑펑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 생생한 꿈이라 혹시 미래에 태어날 조카의 태몽인가 하여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알려주었다.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잠시 시간 내 내 전화를 받은 동생은 너무나도 순수하게 그 깟 꿈 하나,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으며 훌쩍였다. '너 혹시 임신한 거 아니야?' 하며 농담으로 달래주며 전화를 마무리하였는데, 전화를 끊고도 동생의 웃음이 나를 한동안 흐뭇하게 하였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내가 지금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끔씩 전화를 하는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내 동생을 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만약 동생이 있다면 지금 한 번 전화해보길 추천한다. 없는 꿈 얘기라도 지어내서 말이다. 정 생각이 안 나면 위의 내용을 그대로 갖다 써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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