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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금 Sep 27. 2022

12. 엄마의 진심


 어느 날 피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옆에 계신 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다른 가족들과 함께 오셨는데 가족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대화를 하다가 그분이 나에게 혼자 온 거냐고 물어보시길래 항상 혼자 온다고 했더니 그분이 대뜸 그러셨다.

"어머니가 되게 강하신 분인가 봐요." 

내가 왜냐고 물어보자 그분은 '이렇게 젊은 딸이 아픈데 병원도 같이 오지 않는 건 어머니가 딸을 강하게 키우고 계신 거 아니겠냐'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전에 50대 딸이 아파 80대 노모가 보호자로 같이 온 것도 보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엄마가 세거나 강한 성격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문득 나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그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서 만난 분이 어머니가 강하신 분인가 보다는 말을 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하셨다.


"내가.. 강하지 못해서 그랬어."


그동안 내가 느낀 쿨함은 진짜 쿨함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은 약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었나 보다. 내가 병원에 혼자 입원해있던 많은 시간 동안 엄마는 어쩌면 혼자 몰래 우셨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물어본 거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무거운 답변에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그동안 하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어떤 진심은 이렇게 말로 하지 않으면 하나도 모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평생 약간의 서운함과 오해를 가슴에 품고 살았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대기실에서 만난 그분이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 모녀에게 이런 진지한 대화를 할 발판을 마련해주신 고마운 분 아닌가. 


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끼면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맹목적으로 엄마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한다. 어느 날 엄마가 집을 비우신 날에 돌아오실 때까지 베란다 창문 밖을 열심히 쳐다보며 기다리던 유년 시절의 나, 그때의 내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었는지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지금 덜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함께한 우리의 시간이 늘어난 만큼 엄마와 나 사이에 사랑 말고도 여러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 순도 100%의 순수 결정체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한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여자로서도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지금이 더 큰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더 자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엄마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바라보려 한다. 엄마라는 포지션과 딸이라는 포지션에서는 평생이 지나도록 발견할 수 없는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상대의 모습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진짜 이해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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