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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Feb 28. 2023

삭풍은 매섭고도 애절하게 분다(朔風勁且哀).

옛 그림 산책. 2




1. 삭풍은 매섭고도 애절하게 분다(朔風勁且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엊그제인가 싶었다가 우수도 벌써 지나버렸다. 길거 같았던 겨울이 이렇게 끝나버렸다. 봄이 왔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반대로 겨울이 끝났다는 계절감은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나돈다. 중국 남조시대 시인 사령운의 시 세모(歲暮)를 보면 삭풍은 매섭고도 애절하게 분다(朔風勁且哀)는 시문(詩文)이 적혀있다. 아마 올겨울은 이 삭풍경차애(朔風勁且哀)가 유달리 약해서 그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러한 아쉬움을 계속 마음에 담으면 옳지 않으니 그림으로 달리 방편을 해결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 않을까 한다.




2. 김명국의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겨울의 애절함을 가장 잘 담아낸 그림을 뽑으라면 가히 연담 김명국의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이다. 그림은 검은 구름 아래 흰 눈으로 덮인 고요한 겨울밤이다.     

김명국,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17세기, 삼베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그 추운 겨울밤 한 선비가 나귀를 탄 상태에서 뒤를 돌아보며 다리를 건너고 있다. 뒤돌라 본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면 사립문이 보이며 사립문에 누군가가 기대고 있다. 늦은 밤에 귀가하는 귀가를 서두르는 친구의 모습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러한 연출을 보면 김명국은 정말 당대 국수(國手)라는 칭호를 받을만한 화가이다.

 

  눈 덮인 산과 바위,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 필세(筆勢)가 날카롭고 거칠게 나타나 있다. 산과 바위의 필선은 빠르고 강력한 묵법(墨法)인 부벽준(斧劈皴)으로 잡아내어 그림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또한, 눈이 덮인 곳은 여백을 주고 담묵(淡墨)으로 밤하늘을 표현하여 겨울이라는 계절의 공간과 밤이라는 시간이 절묘하게 잡아내었다.


 과감한 부벽준과 수직준의 나무와 엷은 먹 처리 등은 명대 절파화파(浙派畵派)의 양식을 습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는 김명국 본인의 기질과 당대 유입된 최신 화풍을 잘 녹아내린 작품이자 겨울의 애절함을 잘 살린 그림이다.




3.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說夜歸人圖).


 김명국의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가 애절함의 농도를 보여준 그림이라면, 최북의 <풍설야귀인도(風說夜歸人圖)>는 삭풍의 매서움이 여실히 투영된 그림이다.

최북, <풍설야귀인도(風說夜歸人圖)>, 18세기, 종이에 수묵, 개인소장

 최북의 그림을 보면 우측 상단 빈 공란에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이라고 화제(畵題)가 적혀 있다. 최북이 쓴 화제는 당나라 시인 유장경의 ‘봉설숙부용산(逢雪宿芙蓉山)' 시구절로 시의 전체 내용은 "해 저물어 푸른 산이 멀리 보이지만, 날은 춥고 초가는 가난하다. 사립문에 들리는 개 짖는 소리, 눈보라 치는 밤에 나그네 발길을 되돌린다(日暮蒼山遠 天寒白屋貧 柴門聞犬吠 風雪夜歸人)." 이렇다. 즉, 최북은 유장경 시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그림을 보면 수목(樹木)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져 있다. 더불어 인물이 있는 부분과 산봉우리는 여백을 주어 겨울을, 나머진 농묵으로 밤을 담아내었다. 시의 내용처럼 삭풍의 눈보라가 심히 치고 있는 깊은 겨울밤의 풍경이 물씬 느껴진다.


 이러한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강아지는 사립문을 나서고 나그네는 제 발길을 가고 있다. 최북은 시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고 붓을 잡은 것이 틀림없다.


 슥슥 그린 거 같지만, 빠르고 굵은 필(筆)로 구도와 배경 그리고 나무와 산세의 묘사를 보면 그의 일필휘지(一筆揮之)가 느껴진다. 강한 필체와 농담 조절로 겨울의 삭풍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4. 시대의 두 광인(狂人).


 두 사람 모두 빠르고 강한 필체를 구사하며 농담의 조절이 탁월하다. 더불어 이 둘은 각 시대의 국수(國手)이 자 호탕한 성격의 광인(狂人)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명국은 취옹(醉翁)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애주가다. 최북은 금강산에서 투신을 했을 정도로 괴함이 취하였다.


 둘 다 희로애락(喜怒愛樂)이라는 모든 감정과 변화를 그림으로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여 광인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광인들이 그려낸 겨울을 감상하니 아직 겨울이 멀리 떠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참고문헌.

1. 고연희, 선비의 생각, 산수를 만나다, 다섯 수레, 2012.

2. 유홍준, 화인열전 1~2, 역사비평사, 2004.

3. 유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강의 3, 눌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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