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55분에 눈이 떠졌다. 새벽 2시 50분에 다시 깨어나 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비가 오면 산행하기 어려울 것을 걱정하며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다 보니 어느덧 3시 40분이 되었다. 2008년 12월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한 이후로 항상 이런 식이었다. 산행 날이면 늘 잠을 설쳤다. 나는 아내가 음식점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잠들었지만, 새벽에는 아내가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밥솥이 쉭쉭 김을 뱉어내고 있었다. 식탁 한쪽에는 마늘, 멸치, 오이 반찬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늦은 밤에 도시락 반찬을 싸놓은 것이다. 팥죽을 데워 먹고 배낭을 짊어졌다. 우의와 우산, 스틱, 여벌 옷까지 챙긴 배낭이 어깨를 짓눌렀다. 집에서 나오면서 누가 시켰다면 이렇게 할지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새벽 5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만난 얼굴들이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시화에서 버스를 타고 온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버스는 5시 10분에 상록수역 방향으로 출발했다. 본오동 지역에 사는 회원들까지 서른 명을 태우고, 이슬비를 맞으며 지난 6월 5일 산에서 내려왔던 하늘재로 향했다.
하늘재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해발 525미터로, 이름처럼 하늘과 맞닿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기 156년 신라 제8대 왕 아달라가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고, 삼국사기에는 '계립령'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계립령 유허비에는 이 고개의 역사와 비를 세운 이유가 적혀 있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한 세월 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과 애환을 간직해온 이 고개가 계립령이다.' 그렇다면 하늘재는 경상도와 충청도 백성의 고단한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아닐까. 관음리와 미륵리라는 지명은 불교를 받들던 과거 역사가 현재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 기척이 없는 하늘재에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들도 밤새 내린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지 기척이 없었다. 지난 6월, 탄항산 등산로를 따라 내려왔던 발들이 물었다. “하늘재 표지석은 어디에 있나요?”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일행의 눈이 내 손가락을 따라 비탈진 곳에 머물렀다. 그곳에 하늘재 표석이 솟아 있었다.
배낭을 커버로 씌웠지만, 우의를 입은 산 벗들은 없었다. 포암산으로 들어섰다. 산은 처음부터 가팔랐다. 하늘재에서 포암산까지는 1.6킬로미터. 도시에 찌든 육체에서 삐져나온 땀과 이슬비가 섞였다. 온몸이 끈적거렸다. 헉헉 내뱉는 숨소리가 안개 속에 갇혀 주위를 맴돌았다. 날씨가 맑았으면 주흘산과 탄항산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눈앞의 나무들만 보일 뿐이었다. 가끔 바위가 나타나 밧줄에 의지하여 산에 올랐다.
드디어 962미터의 포암산 표지석과 돌탑이 보였다. 월악산국립공원 가장 남쪽에 있는 포암산은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같다고 하여 마골산이라고도 불렀다. 이슬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흐렸다. 선두는 벌써 만수봉 가는 길로 진행하고 있었고, 뒤로 쳐진 산 벗들은 드문드문 힘겨운 듯 50여 분 만에 포암산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은 19킬로미터. 이곳에서 만수봉 갈림길을 지나 대미산에 올라 차갓재로 내려서는 산행이다. 내려가는 산은 오를 때와는 달리 부드러웠지만 가끔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물먹은 땅이 미끄러웠다. 나무에 내려앉았던 빗물이 어깨를 적셨다. 키 작은 풀잎에 앉은 빗물이 바지를 적셨다. 후텁지근했다. 얼린 생수가 반쯤 녹아 있었다.
'이판사판' 님은 땀 흘릴 때는 식염이 탈진을 막아준다며 나에게 식염을 건넸다. 이미 아래위 옷은 땀과 빗물로 무거워져 있었다. 모자에서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마루금을 경계로 한쪽은 안개 바다이고, 다른 한쪽은 나무 바다였다.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2008년 12월, 백두대간 첫 산행에서 서른일곱 명이 함께했다. 오늘은 백두대간 1,625킬로미터 중 남쪽 구간의 절반에 도달하는 날이다. 중산리를 통해 지리산 개선문에 들어서고 천왕봉에 발을 내디뎠을 때 진눈깨비가 내렸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진눈깨비는 비로 변해 등산화를 덮을 만큼 눈이 질척거렸다.
백두대간 산행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함께 산행했던 사람들은 그다음 달 나오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안산에서 산을 탄다는 사람들끼리 안산 백두대간 종주 클럽이 힘들게 산을 탄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산악 대장들이 모여들었지만, 나는 그들의 발걸음을 쫓아가지 못하고 항상 후미에 서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안산 백두대간 종주 클럽을 찾았으나 몇몇은 이겨내지 못하고 다음 산행에서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산행에 참여하여 빠지지 않은 사람은 회장과 나, 그리고 하나둘 있었다.
시작은 처음이다. 시작은 두려움이 있고 서투르지만, 설렘이 있다. 그리고 처음은 낯설고 어설프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용기가 불끈 솟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그러나 서투름과 두려움이라는 고개를 넘지 못하면 늘 제자리다. 하지만 그 너머엔 보람과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무진기행(霧津紀行)을 하면서 생각한다. 서두르지 말고 늘 '처음처럼'을 생각하자고. 허기가 몰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작은 규모의 유격장 같은 곳을 지나 너른 바위가 있었다. 도시락을 꺼내 한술 뜨려는데 비가 후 투득 떨어졌다.
포암산에서 만수봉 갈림길까지 거리는 5킬로미터였는데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다. 비법정 등산로였기 때문이다. 법으로 등산을 금지하는 산길이다. 동식물을 보호한다는 이유였다. 백두대간 길은 곳곳에 사람이 갈 수 없도록 하고 있었다. 과연 사람이 산을 훼손하는 것일까? 산을 찾는 사람들은 산을 사랑하기 때문에 산을 찾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산을 훼손한다고? 오히려 산을 훼손하는 것은 자본이 아닌가. 채석장이 그렇고 덕유산 스키장이나 곤돌라가 그랬다. 지리산 칠선계곡에 댐을 만든다고 하고 노고단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것이 맞는 것일까.
부드러운 흙길을 걸어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니 해발 1,115미터의 대미산(大美山)이 보였다. 하늘재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도 비법정 등산로라고 쓰여 있었다. 크게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산은 험하지 않았다. 대미산은 문경 지역 모든 산의 주맥이다.
조선 영·정조 때 발간된 <문경현지>에는 대미산을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라고 적혀있다. 즉, 문경에 있는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산은 이름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흔히 높은 산은 봉우리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솟아 있는데, 대미산 정상은 숲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비탈진 곳에 표지석이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734.65킬로미터 남쪽 구간의 절반 367.325킬로미터.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고 쓰여 있었다. 중심이다. 내가 이곳에 서 있다. 사람 몸의 중심부가 어디냐고 물었다. 어떤 이들은 다리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심장, 그리고 머리라고 하였다. 모두 자기 처지에 맞는 대답을 했다. 정답은 없다.
박노해 시인은 내가 아픈 곳이 중심이라고 했다. 어느 부위이건 아프면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7월의 중심은 어디일까. 4대강과 비무장지대가 아닐까. 그곳이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다. 몇 발짝 내려오니 대간 중심이라는 표식이 또 있었다. 백두 대장군 지리 여장군이라고 쓰여 있는 장승이 서 있었다. 해발 816미터의 작은 차갓재였다.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동로면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차갓재에서 1킬로미터의 접속 구간이 백두대간 길과 이어진 샛길이다. 나무숲이 울창했다. 오른쪽 무릎이 내리막길에서 쑤셔댔지만, 다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느긋했다. 여러 종류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노인 부부가 비탈진 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이곳이 제천인가요?”라는 물음에 “문경이요. 동로면(안생달)” 생달리 양조장이 보였다. 8시간 40분 동안 땀과 비에 찌든 몸이 진저리 쳤다. 먼저 산에서 내려온 천공 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생달리 막걸리를 따랐다. 꼬깨비 님이 등짝에 붓는 찬물이 피로를 가시게 한다. 포암산 대미산 신령이시여! 왔다가 갑니다.
산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번 산행의 모든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글을 쓸 것이다. 산행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매일 조금씩 쌓이는 좋은 습관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늘재 - 대미산 - 차갓재)
참고 :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최창남. 2009.12.14. 애플북스)에 따르면, 백두산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는 1,625킬로미터며 남쪽 구간인 지리산 천왕봉부터 설악산 향로봉까지는 도상거리 684킬로미터이다. 이 구간을 산림청(437킬로미터)과 국립공원 관리공단(247킬로미터-95킬로미터는 비법정 탐방로)이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684킬로미터 도상거리를 690킬로미터라고도 하고 실제 거리는 1,000여 킬로미터라고도 한다. 또한 오늘 중간지점 표석처럼 남쪽 구간을 734.65킬로미터라고 실측한 기록도 있다. (포항 셀파산장 실측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