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챙기는데 갑자기 "우르릉 쾅!" 하고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중부 지방에 최고 120밀리미터의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떠올라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우의를 챙기고 스패츠도 넣었다. 중앙역까지 가는 동안 비가 쏟아질까 봐 우산까지 배낭에 넣고 걸었다. 다행히 문경시에 도착할 때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오늘의 산행은 경북 문경시 동로면 차갓재에서 충북 단양 저수령까지 14.1킬로미터에 이르는 코스였다. 접속 구간을 포함해도 총 1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보통 20킬로미터 이상 걷는 날이 많아서인지, 서른일곱 명의 산행 참가자들은 모두 여유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지난달에 내려왔던 생달리로 가지 않고 벌재로 향했다. 오전에는 벌재에서 황장산을 넘어 차갓재로, 오후에는 문복대에 올라 저수령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해발 625미터의 벌재에서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꽤 가팔랐다. 산은 바람이 없고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단 10여 분 만에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안산 백두대간 종주 클럽에 처음 참여한 한 여성이 “선두에 서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내 앞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이 여성은 안산천에서 마라톤 배낭을 메고 달리는 모습으로 유명했다. 여성 총무인 여왕벌 님이 그녀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분은 안산시 대표 격입니다. 풀코스와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상금을 타곤 하죠. 100킬로미터 울트라도 11시간 이내에 완주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녀는 안산 에이스 마라톤 클럽의 멤버였다.
황장산은 국내 100대 명산 중 하나로,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곳곳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이를 이용해 오르는데 팔과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밧줄이 없는 구간에서는 바위에 몸을 붙이고 네발로 기어야 했다. 릿지 구간은 전율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위험이 따랐다.
오래전 이곳은 성터였는지, 자연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다른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 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몇 굽이를 넘으니 해발 1,077미터의 황장산 표석이 눈에 들어왔다. 산세가 험해 긴장되었지만, 정상에 오르니 상쾌함이 밀려왔다.
백두대간 중간 지점을 표시한 장승과 표석이 있는 작은 차갓재가 앞에 보였다. 3시간 30분 동안 9킬로미터를 걸은 몸이 땀으로 끈적거렸다. 지난달에 등목했던 생각이 떠올라 오늘도 생달리의 차가운 지하수에 몸을 맡겼다. 행정 명칭인 생달리의 자연부락 이름은 안생달이었다.
오후에 걸을 구간은 벌재에서 저수재까지의 6킬로미터. 그리 길지 않은 거리라 얕봤던 걸까. 우리는 생달리 막걸리 양조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소주를 몇 잔 마셨다. 그러나 벌재에서 문복대로 오르는 길 역시 황장산만큼 가팔랐다. 한낮 더위에 소주를 마신 몸은 금방 지치고 말았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쉬고 또 쉬며 능선에 오르니 그제야 알코올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했다.
많은 사람이 산행 중에 입산 주, 정상 주, 하산 주라며 술을 마시곤 한다. 나 역시 하산 후에 하산 주를 즐기면서도, 산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습관이 얼마나 나쁜지 깨닫는다.
비가 온다고 했으니,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싶었지만, 하늘은 전혀 그럴 기미가 없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아 답답한 날씨 속에서 비탈길을 오르자, 산에 녹음이 짙게 드리웠다. 오늘은 절기상 입추였다.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였지만, 더위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문복대로 향하는 길은 뚜렷했다. 하지만 앞서가던 윤 대장과 오늘 처음 선두에 나서겠다고 했던 강원혜 산 벗이 벌재에서 작은 차갓재로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생달리로 내려오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문복대에 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백두대간 종주에 처음 참여한 그녀에게는 오늘이 단단한 신고식이 되었고, 산악 대장들조차 길을 잃는 알바를 경험한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키보다 더 큰 풀들이 길을 막고 잡목들이 배낭을 잡아채는 길을 지나 마침내 해발 1,074미터의 문복대에 도착했다. 이제 저수령까지 2킬로미터 남짓 남았다. 완만한 비탈길은 몇 개의 둔덕으로 이어졌다. 오후 3시간 동안 걸은 끝에 저수령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휴게소가 있었지만, 주유소는 운영되지 않아 휑한 모습이었다. 모두 지하수를 틀어준 휴게소에서 땀을 씻어내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20차, 차갓재 - 황장산 - 저수령)
오전 8시에 도착한 죽령은 해발 689미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불 예방 기간이었던 지난 5월, 이곳에서 연화봉과 비로봉을 거쳐 고치령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초록으로 가득한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지난 8월에는 저수령으로 하산했으니, 오늘은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북진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죽령에서 출발하여 도솔봉, 묘적봉, 상헌봉, 싸리재, 솔봉, 배재를 지나 시루봉과 촛대봉을 거쳐 저수령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전체 거리는 20.18킬로미터로,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절대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식수 2ℓ를 넣은 배낭이 불룩했다.
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난했다.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한 도솔봉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경계로 하는 산으로, 삼형제봉과 함께 한적한 육산으로 알려져 있다. 소백산의 주 능선은 부드럽고 여성적인 산으로 불리니, 그리 험난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숲길에는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굴참나무, 고로쇠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나는 특히 홍송(紅松)을 좋아한다. 소나무는 곧고 맑은 향기를 지녔지만, 가벼운 눈이 쌓이면 가지가 쉽게 부러지고, 강한 바람에는 뿌리까지 뽑히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홍송보다 대나무가 더 좋아졌다.
대나무는 곧고 올곧으면서도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 강한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까지 뽑히지 않는다. 대나무는 속을 비우고도 부러지지 않으며, 마디를 통해 힘을 분산시켜 더욱 단단함을 유지한다. 마디는 역경을 극복한 흔적이자, 인생의 마일리지 같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장항마을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길은 계속해서 오르막이었다. 해발 689미터에서 해발 1,314미터까지 올라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령에서 도솔봉까지는 6.1킬로미터였다. 출발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삼형제봉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늘 산행 시간은 7시간 30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무더위에 지친 발걸음이 그만큼 따라줄 것 같지는 않았다.
2시간 20분이 지나 도솔봉에 도착했다. 도솔은 부처가 될 보살이 머무는 곳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곳은 도솔천이라 할 만하다. 평평한 헬기장 옆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애써 즐거운 표정을 지어본다. 여성 총무인 여왕벌 님은 헬기장 보도블록 위에 지쳐 누워 있었다. 어제까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산행을 빠질 수 없었다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21차 산행까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나는,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폭우를 뚫고 가기도 하고, 무더위 속에 식수가 바닥나 산비탈을 뛰어내리기도 했다. 눈과 비로 덮인 밧줄에 매달려 바위를 오르고, 아이젠을 착용한 채로도 바위에서 다리가 후들거렸던 순간들이 이곳까지 오게 했다.
내 삶의 전반부와 하프타임이 이러했듯, 후반부도 힘든 여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고, 아낌없이 살아가야 한다. 내 삶이니까.
소백산은 이곳 도솔봉에서 남쪽으로 묘적봉과 투구봉, 촛대봉이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죽령에서 시작해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으로 이어진다. 모든 봉우리가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 산을 걷는다는 것은 수행이자 깨달음의 여정이다.
우리는 묘적봉과 묘적령으로 향했다. 묘적봉은 소백산 국립공원의 최남단에 위치한 봉우리로, 묘적이란 참선으로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다. 그곳에는 급경사와 전망이 좋은 바위가 있었다.
해발 1,148미터의 정상에서 우리는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러고는 산상 문학회를 열었다. 비록 이름은 거창했지만, 사실상 나 혼자만의 발표회였다. 나는 하모니카로 동요 꽃밭에서와 조경수의 노래 행복 이란을 연주하고, 김소월의 시 산유화와 김춘수의 시 꽃을 낭송했다. 매일 낭송하던 꽃을 끝까지 낭송하지 못해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문학회의 종료를 알리자, 모두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기를 바랐다.
묘적봉에서 묘적령까지는 1.3킬로미터. 드문드문 이어지는 능선을 보며 숲길을 걸었다. 묘적령에서 저수재까지는 10.7킬로미터로, 오늘 산행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리였다. 어느새 상헌봉을 지나 싸리재로 향하고 있었다. 싸리재는 상헌봉에서 5.9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등산화로 뚝뚝 떨어졌다. 생수병도 텅 비었지만, 배낭 깊숙이 넣어둔 얼린 생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흙목 정상을 지나고 1.4킬로미터를 더 걸으니, 배재에 도착했다. 오후 2시 30분, 한창 더운 시간이었다. 가끔 숲에서 나와 능선을 바라보면 햇빛이 날카롭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유두봉을 지나 해발 1,084미터의 봉우리에 올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답답한 조망 속에서 길만 바라보며 걸었다. 오르막길이 힘들 때는 이렇게 걸으면 덜 힘들다.
작년 11월, 신의터재에서 봉황산을 오르내린 후 갈령으로 내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산행 거리는 24.56킬로미터였다. 오늘도 모두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렇게 봉우리가 많을 줄이야!" 3시 40분경에 도착한 투구봉에서는 시야가 확 트여 전망이 좋았다. 바위에 올라 물을 마시며 촛대봉까지 남은 1.1킬로미터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촛대처럼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촛대봉은 예상보다 평범하게 보였다.
이제 저수재까지는 1.1킬로미터 남았다. 약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저수재에 도착하면 시원한 생맥주와 막걸리를 마시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끈적이는 몸을 시원하게 씻어낼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생각해 보면, 백두대간 길은 정말 힘든 여정이다. 그런데도 다시 이 길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좁고 가파른 고개를 넘나들며, 너무 힘들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는 해발 850미터의 저수령에 도착하니, 휴게소는 여전히 휑하게 느껴진다. (21차, 죽령 - 도솔봉 - 저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