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보너부리 May 23. 2023

엄마의 초조함 들키지 않기

핑! (아니카스티요) 을 읽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데, 부자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딸이 손을 들어 흔든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딸이 말을 꺼낸다.

"엄마, 쟤는 나를 싫어하는 아이야."

"어? 인사한 거 아니었어? 손 흔드는 거 봤는데?"

"응. 나는 했는데. 쟤는 안 했어."

" 못 봤나 보다."

"아냐. 눈 마주쳤어. "

"근데 사이가 안 좋은데. 왜 인사를 했어?"

"그냥, 있길래. 했어.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너무 까불어서 화를 냈더니. 나를 싫어해."

" 저 친구랑. 친해지고 싶은 거야?"


속상한 눈치다. 첫째는 자신만의 핑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을 향한 열 살 소녀의 '핑'은 따스하고, 언제나 온마음이다. '퐁'은 언제나 뜻밖이라 쉽게 상처를 받고, 치유하기의 반복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공포 영화를 보는 것과 같아 늘 긴장되고 조마조마하다. 과정은 속상하고, 결국 화를 낸다.


마음 안에서 '불'이 올라온다. 친한 친구도 아닌데 왜 인사를 하고, 속상할 필요가 무엇인가. 그 친구가 본인을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럴 수 있지.'인 내가 딸의 일에는 작은 것에도 자꾸 날카로워진다.


집으로 돌아와 화가 난 채로, 책장에서 '핑'을 꺼낸다. 딸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모든 게 상상한 대로라면 좋겠지만, 기대했던 것과 다르더라도 실망하거나 움츠러들 필요는 없어요.'

'퐁은 친구의 몫이니까요.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니면 이제는 놓아야 할 것이 있을 수도 있구요.'



한 줄씩 돌아가며 딸과 읽는다.

딸에게 너가 인사를 했어도 그 친구가 안 받아줄 수도 있다. 그건 그 친구의 선택이다. 에서 시작해 '모두가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다.' 까지 가고 말았다.

겉으로는 딸을 위로했지만,  딸의 '핑'에 대한 이번 나의 '퐁'은 망했다.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말 걸... 후회했다.


나의 생각, 마음, 꿈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핑'이다.


40대가 되어서야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 좋게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나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핑'을 하나 더 얻게 된 것이다. 아이도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세상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참 많은 퐁을 감당하고 살아간다. 기대했던 반응도, 실망스러운 반응도, 감동스러운 반응도, '퐁'은 늘 제각각이다. 남편과 영화 '영웅'에 대해 대화하며, 도마의 엄마였다면 차라리 내가 폭탄을 던지겠노라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다가올 두려움도, 언짢음도, 무반응도 다 내가 맞아주고 싶다. 세상이 내게 날린 매정하고, 쓰린 경험들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작은 '한숨'에 세상 전부가 덜컹 인다.


아이는 앞으로 저 작은 채를 들고, 수 많은 '핑'을 날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가 다음 '핑'을 준비할 때  나는 엄마로서 '핑'과 '퐁'을 준비해야 한다.


자유롭게, 용감하게, 현명하게

 책 표지의 문구를 보니 오히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수많은 핑과 퐁을 겪어온 것처럼 아이에게도 자유롭고, 용감하고, 현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단, 날카로운 '퐁'에 상처 입고 한숨지을 아이에게 엄마의 초조함을 들키지 않는 연습을 해야지.

 '핑'과 '퐁'을 겪어나가는 그 과정을 함께  그 순간을 용감하게 기다려야겠다.


그 과정이 길고, 답답하더라도,  숨을 크게 쉬고, 열린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작은 욕심으로 나를 살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