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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벗은 일상

by 파스

1715년 태양왕 루이 14세 사망 이후 프랑스는 로코코 시대를 맞이한다. 절대왕정의 바로크 시대를 이어 화려하고 섬세한 귀족풍의 부르주아 예술 시대가 열린 것인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면서 자연스럽게 퇴조했다.


하지만 어떤 예술의 시간은 정치의 시간보다 늘 빠른 법이다.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 1699~1779)은 부르봉 왕가(Maison de Bourbon)가 마지막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로코코와는 정반대로 눈을 돌렸다. 당대의 보통 사람들, 민중의 보잘것없는 일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와 신화 그리고 역사를 예술의 맨 꼭대기 장르에 올려두었던 당시의 위계 속에서 샤르댕이 그렸던 부엌의 음식과 냄비, 그릇들은 프랑스 대혁명에 앞서 반란과 전복을 모의한 사물들의 혁명가였다.


「호두와 칼, 포도주 잔과 함께 놓인 복숭아 바구니」 (출처: 루브르박물관 홈페이지)


「가오리」 (출처: 루브르박물관 홈페이지)


샤르댕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나 쉽게 접하지만 아무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부엌의 음식과 그릇들이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탄생할 수 있었을까.


샤르댕은 부엌의 음식과 냄비, 그릇들이 의미 있고 아름다워서 그것을 그린 것이 아니다. 샤르댕의 시선이 정물들에게 아름다움을 부여한 셈이다. 모든 사람들이 의미를 두지 않는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샤르댕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각각의 사물에 침투해 그 속에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우리는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노력하거나 의욕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의욕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아름답게 된다. 아름다운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샤르댕이 당신에게 자신만이 느끼는 비밀을 고백하는 것을 보고, 정물들은 이번에는 당신에게 더 이상 그들의 아름다움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정물은 이제 살아서 생명을 띠게 된다. 정물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당신에게 전할 이야기들, 빛을 발하게 될 영광, 베일이 벗겨질 비밀로 가득하다. 만약 며칠 동안 샤르댕의 그림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면 당신은 일상에 매료될 것이며, 회화의 삶을 이해하고, 더불어 삶의 아름다움을 쟁취하게 될 것이다. - 프루스트, 『샤르댕과 렘브란트』 중에서


샤르댕의 시선은 정물 하나하나에서 멈추지 않고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프루스트는 우리 옆에 잠든 공기를 햇빛이 비추었을 때 미세한 먼지들의 소용돌이를 볼 수 있듯이, 겉으로 보기에 단조로운 방 안에서 특별한 형태의 우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그의 그림 「시장에서 돌아옴」이나 「식사 기도」를 보라고 권한다.


그가 방이라는 공간에 사물들과 사람들을 존재시킴으로써 방은 사물과 사람을 넘어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갖게 된다. 방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그들 간의 유사성이나 차이점을 드러내는 법칙, 그들의 매력이 담긴 은은한 향기, 그들의 영혼의 비밀을 간직함과 동시에 폭로하는 친구이자 그들의 과거를 간직한 신전이 된다. - 프루스트, 『샤르댕과 렘브란트』 중에서


「시장에서 돌아옴」 (출처: 루브르박물관 홈페이지)


「식사 기도」 (출처: 루브르박물관 홈페이지)


프루스트는 샤르댕의 그림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이유가 그가 사물들을 대면했을 때 일시성을 제거하여 그것들에 깊이와 영원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들레르가 말한 현대성(modernité)을 프루스트는 샤르댕에게서 읽은 것이다. 그리고 프루스트는 이 현대성을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 마르셀에게 글쓰기를 위한 소명으로 부여한다.


나는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다시 찾으려고 애썼고, 뭔가 시적인 것인 양 좋아했다. 지르다가 멈춘 듯 비스듬하게 놓인 나이프, 흐트러진 냅킨에 햇빛이 노란 벨벳 조각을 끼워 넣어 둥글게 불룩 튀어나온 모양, 반쯤 비워진 잔이 정교하게 벌어진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포도주 잔, 반투명 유리잔 밑에 마치 햇빛이 응결된 듯 어두운 색이지만 빛에 반짝이는 포도주 찌꺼기, 부피의 이동, 조명에 의한 액체의 변모, 이미 반쯤 빈 과일 그릇에 담긴 초록빛에서 푸른빛으로 그리고 푸른빛에서 금빛으로 바뀌는 자두 빛깔의 변화, 식도락 축제가 거행되는 성당 제단과도 같은 식탁에 깔아 놓은 식탁보 주위에 하루에 두 번씩 자리를 잡으러 오는 낡은 의자들의 산책, 그리고 식탁 위 굴 껍질 속에 마치 작은 돌 성수반에서 마냥 남아 있는 몇몇 반작이는 물방울들을. 내가 한 번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바로 그곳에서, 가장 일상적인 물건이나 '정물'이 심오한 삶 속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애썼다. -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마르셀은 지금까지 한번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그곳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아름답지 않음' 속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지성이 필요없다고 여긴 망각 속에 진짜 시간이 숨어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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