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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Jan 26. 2023

홈파티와 큰손의 상관관계

이국땅에서 설을 보내며


엄마는 음식솜씨가 꽤나 좋은 편이었다. 아빠의 직장 동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도 냉장고 속 남은 재료만으로 뚝딱 요리를 해내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음식 남는 게 낫지 모자라면 정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푸짐한 한상을 차려내시던 게 기억난다.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은  먹고 나면 하루종일 배가 부르던 엄마의 뚱뚱한 샌드위치를 여전히 그립게 추억하곤 한다. 그런 엄마의 음식을 사랑인 줄도, 감사히 돕고 배워야 하는 줄도 모르고 그저 넙죽넙죽 받아먹기만 했던 철없던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조금씩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결혼 후 캐나다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처럼 빠르고 편한 배달문화는 커녕, 캐나다의 식당은 비싼 인건비와 팁 덕분에 요리 가격이 사악해서 외식 한번 하는 게 꽤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민 초기 셰어하우스의 공용 냉장고를 사용했던 우리 부부는 남지 않을 만큼만 요리를 해서 우리 방 작은 탁자 위에 차려놓고 소꿉장난 하는 기분으로 맛있게 먹고는 했다.


우리만의 원룸(studio)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계획도 없이 선물처럼 엄마, 아빠가 되었다. 아기가 자라 이유식을 먹는 나이가 되자 음식의 종류뿐 아니라 비로소 요리(?)의 양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엄청난 good eater(먹보?)였던 나의 아기는 먹이고 정리하고 돌아서면 배고파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덕분에 미리미리 충분한 양을 준비해 두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나보다 요리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해서 자주 그와 나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양은 언제나 '딱 맞게' 준비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캐나다에 와서 무난하게 적응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도 조금은 외롭다 느껴지는 날이 있다. 바로 캐나다나 한국의 명절(holiday) 기간이다. 생활자체가 가족중심인 캐나다 사람들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나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 우리의 설이나 추석처럼 당연한 듯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내곤 한다. 캐나다 땅 전역 또는 다른 나라에서 살던 가족도 모처럼 모여 함께 하는 시간인 것이다. 이민 초기 우리 부부는 이런 날이면 왠지 더 적적하고 갈 곳이 없어 시내(downtown)에 나가보기도 했는데, 가보면 막상 상점도 식당도 문을 닫은 풍경에 오히려 더 외로워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일 테니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창밖에서 따뜻한 불빛아래 모인 행복한 가족을 바라보는 성냥팔이 소녀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이민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고 아담한 우리 집이 생긴 후엔, 명절이 되면 캐나다에 가족이 없는 다른 이민자 친구들의 가족을 우리 집에 초대해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엔 칠면조(Turkey)를 굽고 추석이나 설에는 전을 부치며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 뿐 아니라 이곳에 달리 친척이 없어 외로운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주는 따뜻한 시간인 것이다. 이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창 밖에서 부럽게 바라만 보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우리 가족의 tradition(전통?)이 되어가는 중이다.




살다 보니 명절이 아니어도 캐나다에서는 홈파티가 꽤 자주 있는 편이다. 파티라 하지만 실컷 술을 마시며 흥겹게 노는 파티와는 조금 다른, 아이들도 함께하며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조촐한 와인파티가 대부분이다. 홈파티에 익숙해진 후 축하할 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함께 나눌 사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혼자 음식을 다 장만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씩 음식을 가져오는 팟락(Potluck) 파티도 자주 하는데 그래도 호스트는 늘 메인 음식을 더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다 보니 나의 요리솜씨도 어느 정도는 발전이 있었지만, 사실 요리 솜씨보다 더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준비하는 요리의 양이다.


엄마의 푸짐한 상차림을 보고 자라나서인지 손님 초대에 익숙해진 나는 요리할 때 날이 다르게 손이 커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우리 가족만 식사를 할 때조차 조절이 잘 안 돼서,  내가 가끔 '딱손, 작손'이라며 놀리는 내 짝꿍이 보기에는 아마도 어마어마한 양인가 보다. 내가 식사당번을 하는 날이면 그는 '덕순이 엄마야?', '오늘 누가 오기로 했어?'라며 놀려댄다. 내 주변엔 내가 명함도 못 내미는 왕손, 대왕손도 많은데 못 봐서 그러는 거라며 변명을 해보지만 결과물을 보고 실은 나도 속으로 놀라곤 한다.


지난 크리스마스, 가족 세 명이 모두 코비드에 걸려 누구도 초대할 수 없었던 우리는, 오랜만에 우리끼리 조촐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커진 손은 어느새 양을 줄이는 법을 잊은 것인지 결국 한가족을 더 먹여야 할 만큼 차려내고 말았다. 아아, 평소처럼 나눠먹으면 좋을 텐데...... 코비드에 걸렸으니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저장한 채 두고두고 먹으며 우리는 새해를 크리스마스 음식과 함께 맞이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음식 남는 게 낫지 모자라면 정 없다."라는 말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궁금해진다. 유난히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 만나서 인사가 "밥은 먹었니?"인 우리는 어쩌면 함께하는 식사에 마음을 담고, 그것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유전자에 새겨진 것을 아닐까. 추운 겨울 따뜻한 집에서 풍족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에 하는 감사하고도 배부른 감상인 줄을 알면서도 '홈파티와 큰 손, 함께 하는 한 끼와 우리네 정'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니 짝꿍, 요리하는 내 손이 조금씩 더 커져가는 것이 나의 나누는 마음과 사랑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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