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그리고 우리집 목장

목장집아들 마지막회

by 미니맥스

1980년대 우리가 자주 보던 인기 티비 프로그램이 있었다. 초원의 집이었다. 낮12시즈음에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무척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드라마다. 영어 원제는 지금 찾아보니 대초원의 작은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이다. 세 자매가 부모와 함께 초원의 농가에서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었다. 당시에 외국을 자주 오가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티비에서 보는 미국의 모습은 이국적이거나 상상적이거나 그런 느낌이었다. 초원의 집에서도 엄마와 아이들이 젖소 젖을 짜거나 소를 돌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아버지가 젖소를 키우고 목장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또는 우리 형제는 초원의 집을 떠올렸고, 뭔가 낭만적이거나 이국적인 일들이 펼쳐질 기대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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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젖소도 한우와 다름없이 소였다. 그래서 많이 먹고 많이 싸고 많이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먹일 풀이 부족해서 방장산으로 억새를 베러 다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꼴로 우리에서 뛰쳐나와 밭을 뛰어다니는 소를 쫓아다녔고 날뛰는 소를 몰아 다시 우리 안으로 넣느라 숙제하다가 불려나가기 일수였다.


젖소부인들이 네덜란드에서 오기 전에 아버지는 말뚝을 땅에 박고 산에서 베어온 소나무 등걸로 이어서 두 칸 높이 소우리를 만드셨다. 굵은 소나무로 단단하게 지어진 우리는 더없이 튼튼해 보였다. 그러나 큰 소 세 마리에게 이 우리는 약하기 그지없어서 가려워서 나무 기둥에 대고 비비면 흔들리거나 넘어지거나 해서 우리가 망가졌다. 그럼 녀석들은 ‘해방이다’ 외치며 뛰쳐나와서는 바로 사료창고를 털거나 초지로 뛰쳐나가 풀을 다 밟아 놓는다. 비록 집 멀리 도망을 가지는 않지만 사료 푸대를 밟아 터트려서 엉망을 만들기 때문에 다시 우리 안에 집어넣으려면 온 가족이 호출됐다.




그렇게 빈번하던 소탈출 사건은 소우리를 전기 철책으로 바꾸면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얇은 철사 줄을 주위에 두르고 약한 전류를 흐르는 방식이다. 동물원에 가면 사자 우리에도 이렇게 얇은 철사가 주위에 처져있다. 처음에는 전기가 흐르는지 모르고 철사줄에 코를 가져다 된다. 소들은 코가 가장 예민하기 때문에 코로 닿고, 코로 냄새를 맡아 탐색을 한다. 그러면 전기가 펑 와서 뚝 쳐내는데 어른도 닿으면 깜짝 놀랄 정도의 충격이 전해진다. 그렇게 한번 전기 철사줄에 놀란 소는 근처에도 얼씬하지 않게된다. 전기철책이 도입된 이후 숙제하다 소를 잡으러 뛰어나가는 일은 없어졌다.



처음 목장을 시작할 때 꿈꿨던 초원의 집은 현실이 아니었다. 목장은 아버지의 직업일 뿐이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소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고 그 기억은 낭만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처음 착유한 우유에서 느낀 따스함, 집에서 엄마가 끓여준 생우유의 고소함이 그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집 목장은 내가 2003년쯤에 문을 닫았다. 연로해지셔서 더 이상 소를 돌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들도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축사 조차도 흔적이 없지만 예전에 초지로 쓰던 밭은 여전히 사촌네가 임대해서 풀을 갈고 있다. 그 초지를 보면서 가끔 떠올리던 기억들을 익선동 시그니처 R 라떼를 계기로 정리를 하게 됐다. 일주일이면 끝 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고 말았다.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운, 낭만이라고는 일도 없는 목장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초원의 집 수준의 낭만으로 목장은 남아있다. 그 기억을 이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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