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집아들9
목장집 아들로 내가 기억하는 느낌 중 하나는 따스함이다. 갓 짠 우유에서 느낀 따뜻함이다. 첫번째 송아지가 태어나고 아직 착유시설이 되어있지 않아서 손으로 착유를 했다. 나는 착유하는 아버지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한참 착유를 하신 아버지는 노란색 양은 양푼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아무런 생각없이 양손으로 받은 양푼은 따뜻했다. 젖소의 체온이 37도이므로 당연히 갓 나온 소젖은 따뜻했을 텐데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한 따스함이었나보다. 지금도 그때 거품이 조금 있는, 하얀 젖이 절반쯤 찬 양은 양푼을 집어들었을 때의 아늑한 따스함을 잊을 수가 없다. 신기했다.
목장집 아들로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느낌은 고소함이다. 목장집 아들로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에 하나는 신선한 우유를 집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갓짠 우유를 아버지가 가지고 내려오시면 80도 정도로 미지근하게 데워서 마셨다. 그 고소함이란...정말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완전히 끓여서 멸균 처리가 되지않아서 완전히 위생적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신 그 만큼 영양소도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소함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어떤 우유에서도 집에서 먹던 생우유의 고소함은 다시 맛볼 수가 없다. 그나마 비슷한 우유의 맛을 폴바셋 라떼에서 느꼈다. 그래서 지금도 커피는 폴바셋 라떼를 좋아한다. 집에서 멀지않은 상하에서 만든 유기농 우유로 만든다는 느낌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폴바셋 밀크는 어렸을 적에 집에서 먹던 우유맛이 남아 있다.
매일유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다. 폴바셋, 상하 목장이 나와서 잠깐만 더해본다. 사촌이 아직도 목장을 하고 있다. 작은아버지가 하시던 목장을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 유기농 목장으로 상하 우유에 우유를 납품한다. 그런데 상하우유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매우 까다롭다고한다. 소가 먹는 목초에도 농약을 해서안되고, 목장 관리도 기준이 까다롭다고 한다. 실제로 목초지를 가보면 유기농 기준에 맞춰서 해서 그런지 농약하는걸 본적이 없다. 그래서 상하우유에 대한 개취 내지 믿음이 있다(다시 밝히지만 매일유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고창에 있는 상하목장을 몇 번 구경간 것이 인연의 전부다. 아 아버지가 목장하실 때 매일유업에 우유를 납품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매일유업놈들 우유는 싸게 가져가면서 까다롭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나도 딱히 남은 인상이 좋지는 않다 ㅎㅎㅎ)
다시 우유로 돌아와서 한때 남양에서 3.4 우유를 내놓은 적이 있다. 우유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지방과 단백질 함유량이다. 지방과 단백질 양에 따라 같은 양이라도 아버지가 받던 우유값은 달랐다. 그래서 지금도 지방율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3.4는 우유에 지방이 3.4그람 있다는 의미다. 100미리 기준 지방 함유량이 3.4. 그때는 유지방 함유량이 높은 우유가 좋은 우유였으나 요새는 저지방 우유가 따로 나올 정도로 지방율에 대해서는 관대해진 거같다. 그럼 맛있는 우유, 좋은 우유의 기준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신선한 우유다. 우리나라는 콜드체인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착유부터 가공 소비자 판매단계까지 풀 냉장이다. 그러나 아무리 냉장 시스템이 잘돼있어도 우유는 엄마 소젖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신선한 우유가 가장 좋은 우유라고 믿는다. 진짜 우유의 참맛을 느끼려면 갓짠 우유를 한번 꼭 먹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편, 중국은 이런 시스템이 없어서 분유로 사서 집에서 물에 타먹는 경우도 많다.
목장 집에서 생우유를 마실 수 있는 특혜가 있다면 또다른 재미는 치즈다. 좋은치즈는 지방함유량이 높은 좋은 원유와 좋은 발효 조건이 만든다. 그래서 알프스에서는 지방함유량이 3.9정도 나오는 저지종(갈색 무늬소- 목에 큰 딸랑이를 하고 알프르 푸른 목장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이다) 우유를 사용한다. 그리고 고원 산간지방에서 1-2년 발효를 시킨다. 아펠젤러나 에멘탈러 같은 치즈가 이런 치즈들이다. 한국 목장에서는 그렇게까지 만들기는 어렵고 집에서 간단히 만드는 치즈다 리코타치즈류다.
우유를 80도 정도 미지근하게 끓인 다음에 소금과 식초를 넣어서 가만히 두었다가 면포에 걸러내면 덩어리가 생긴다. 끓인 콩물을 면포에 부어서 모양을 잡으면 두부가 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굳어진 덩어리를 잘 모양을 만들어서 하루이틀 음지에 두면 치즈가 된다. 1980년대만해도 치즈가 그렇게 흔한 식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간혹 치즈를 만들어서 먹으면 그 고소한 향이 방안에 가득 퍼졌던 기억이다. 고창에서 멀지 않은 임실이 지금은 치즈로 유명해졌다. 1960년대에 지정환 신부님이 오셔서 산양 목장을 만들고 벨기에서 까망베르 치즈 제조기술을 들여와서 시작됐는데 지금은 임실이 한국 치즈의 본고장이 되었다. 자체 운영하는 카페에서 그 맛을 봤는데 역시 다르다. 라떼에서 시작한 어릴적 목장 스토리도 이제 한편을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