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30년이다
서울살이 30년이다. 종로살이 15년이다. 뒷동산 오르내리듯 인왕산과 북악산을 다녔다. 그래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 서울시내 4 소산을 모두 걸어보자. 인왕산부터 시작이다. 주말마다 조금씩 올라야겠다. 그러나 이 생각은 나중에 하루에 4 산 모두를 종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뀐다. 서울살이 30년 기념으로 서울시내 4대 산 등정을 시작하다.
인왕산
서울시내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 네 개 산을 오르게 된다.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 좌청룡인 낙산, 북현무인 북악산, 그리고 남주작인 남산이다. 오늘의 등반은 인왕산이다. 등반이라고 하지만 300미터 정도 산으로 걸으면 산밑에서 정상까지 1시간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인왕산부터 시작해서 북악산을 거쳐 낙산을 거쳐, 남산에 이르는 길을 걸으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를 더해서 안산(연세대 뒷산)까지 하루에 한 산씩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루에 4개 산을 모두 오르는 길을 걸으려고 한다.
인왕제색도
첫 번째 산은 인왕산이다. 인왕산 하면 인왕제색도이다. 인왕제색도는 한자로 仁王霽色圖 이렇다. 제자가 비 그치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가 그친후의 인왕산 풍경이라는 의미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1호라고 소개가 나오던데 이 그림을 그릴 때 정선이 76세였다. 조선은 영조시대이고 1751년이니까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프랑스에서는 프랑스혁명이 곧 일어날 때이다. 마침 어제는 비도 좀 오고 구름도 끼여서 인왕제색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 그친 후의 상쾌함이 산에 가득하다.
수성동 계곡에서 바라본 인왕산. 복원되기 전에는 이 계곡에도 주택이 있었다.
국사당
인왕산은 밤에도 몇 번 오른 적이 있다. 여름날 10시 정도 오르면 서울 야경을 보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서울에 없다. 북쪽 압록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선선하고 별도 간간이 보이는 것이 여름밤에 이열치열로 오르기 안성맞춤인 산이 인왕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했다. 청와대 수비대가 있어서 가로등과 경비대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와대가 이전해서 경비대는 없지만 대신 동호회에서 단체로 오는 등산객이 밤에도 자주 보인다.
다만 밤에 오를 때 사람보다 귀신이 무서운 곳이 인왕산이다. 인왕산 성곽 너머에 해골바위 쪽으로 국사당이 있다. 국가의 사당이다. 유교국가이기 때문에 4대 문 안에는 두지 못하고 성곽바로 바깥쪽에 국사당이 있고, 그 근천로 기도빨이 영하다고 해서 기도하는 무속인들이 자주 굿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절 아래쪽인 독립문역 근처에 제물을 파는 가게들이 몇 군데 아직도 남아있다. 저녁에 인왕산을 오르면 방울소리, 굿소리가 들리는데 귀신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짝꿍이라도 꼭 같이 갈 일이다. 아니면 전설의 고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무악대사
성곽 길을 따라서 산 중턱정도에 이르니 아래쪽으로 남산이 내려다 보이고, 광화문과 경복궁이 보인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배화여전과 배화여중고가 내려다 보인다. 이성계 장군이 서울 수도를 정할 때 무악대사는 인왕산을 배산으로 해서 배화여전 자리를 경복궁 자리로 길하다고 했고, 정도전은 그건 명을 따르는 조선에 있을 수 없다 하여 북악산을 배산으로 하여 지금의 경복궁 자리를 길하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파워 게임에서 정도전의 승리함에 따라 지금의 북악산이 주산이 되고 경복궁 자리가 정해진 셈이다. 이때 지금의 경복궁 자리로 궁터를 정하면 좌청룡인 낙산이 낮아서 이후 침략이 오면 낙산을 넘어 오리라고 예언을 했다 하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낙산을 넘어 경복궁으로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멀리 남산이 보인다. 배화 여전히 인왕산 자락에 있다.
독립문역에서 45분 성곽길
출발은 독립문역에서 무악현대 아파트 쪽으로 시작한다. 어느 길로 가든 결국 인왕산 입구로 연결되므로 자신 있게 아파트 단지 안으로 올라가서 무조건 위로 위로 올라가면 산에 이른다. 눈 있는 사람에게 성곽이 보이지 않을 수 없고 성곽길을 따라가면 인왕산 정상이다. 경복궁역에서 시작해서 수성동 계곡 쪽으로 오를 수도 있고, 창의문 부암도에서 시작해서 오를 수도 있다. 길은 어디로 가든 결국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그냥 발길 가는 대로, 성곽이 보이는 대로만 가면 정상에 이른다.
범바위 너머 여의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왕산 중턱이다.
인왕산 정상 338미터다. 멀리 북한산이 지척이다.
오른쪽으로 북악산 봉우리와 마주하는 인왕산 정상 바위. 야간에 등정을 추천하고 싶다.
산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북한산, 서쪽으로 행주산 덕양산 일산이 다 내려다 보인다. 독립문역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창의문 쪽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올라오면서 500미리 물을 한 병들고 왔는데 오는 길에 다 마셔버렸다. 옆에 무리 사람들이 사과를 하나씩 나눠먹고 남은 사과 하나를 가방 위에 올려두었다. 사과하나도 없이 급히 올라온 나는 그 사과에 시선이 자연스레 박혔다. 저 사과를 달라고 할까, 아니면 2천 원에 팔라고 할까, 분명 남은 사과인데... 한참을 침만 삼키면서 사과를 노려보면 나는 결국 아무 시도도 못하고 아닌 척 다시 북악산만 쳐다보다 창의문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집 앞 슈퍼에서 사과 5개에 만원이었다. 그런데 물은 떨어지고 오이도 하나 없는 등산가인 나에게 지금 사과 한 개에 만원을 한다고 해도 냉큼 살 기세다. 때에 맞춰 가격은 정해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고생이다. 얼른 내려가서 부암도 가서 세븐일레븐에서 고드름을 사 먹어야지 하는 생각 하나로 하산을 쏜살같이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움직인다.
청운문학도서관
목마름에 길은 청운문학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래 최소한 정수기는 있겠지. 청운동에 있어서 청운문학 도서관인가? 참 멋진 도서관이다.
산정상부터 가져왔던 목마름도 잊은 채 정자에 앉아 물소리를 경청했다. 서너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가고를 반복하는 동안 가부좌로 앉아서 목마름을 참고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 어찌나 대견하던지 ㅎㅎㅎ 참을성 많은 선비라도 되는 양했다. 결국에서 도서관 1층 정수기에서 병가득 물을 마시고 경복궁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들른 세븐일레븐에서 더위사냥 하나를 사 먹으면서 오늘의 등산은 끝이 났다. 일전에는 연세대에서 시작하여 안산을 오르고 다시 인왕산을 넘어 북악산을 넘어 삼청동에서 수제비를 점심으로 먹곤 했는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ㅎㅎㅎ 겨우 산하나 올랐는데 다리가 후들후들이다. 자 다음은 인왕산에 있는 신비한 암자 석굴암과 청계천 발원지이다. 2편에서 이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