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4 대산 등정기 #4 북악산 2
서울의 주산 북악산의 무게
다시 북악산이다. 그중 북북악이다. 능금마을을 지나 팔각정을 향해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오르고 있다. 북악산은 뾰족한 봉우리를 가졌지만 긴 산이다. 청와대 뒷산 봉우리는 백운봉으로 북악산의 일부일 뿐이다. 북악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진 단단한 산이다. 그래서 청와대 뒷산을 보면 왠지 위압감이 들고 그렇다. 그러나 북악산은 북쪽에서 오는 시베리아 찬 바람을 막아주는 좋은 산이다. 그리고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완만한 산이다. 그래서 갈 곳도 많고 숨겨진 곳도 많다. 특히나 북북악은 더욱 그렇다.
북악산은 조선시대 주산이었다. 경복궁의 산이고, 임금을 지키는 산이었다. 정도전이 현재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택한 것은, 북악산의 기운이 북한산 보현봉으로부터 이어진 것이고 이는 다시 태백정맥을 통해서 백두를 통해 중국으로 이어진 까닭이다. 즉 유교 주자학자인 그에게 북악은 그런 정통과 맞닿아 있는 의미가 있는 산이다. 그래서 북악산은 서울 시내 4 대산 중 주산이며 임금의 산이다. 그래서 두드러지고 강해 보이며 늘 시선을 끄는 산이다. 북악산의 무게는 그런 왕관의 무게를 보여주는 산이다.
북악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다
임금의 자리인 경복궁, 대통령의 자리인 청와대. 그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이 머문 곳이 북악산의 한 자락이었다. 자리는 오른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차면 기울고 부족하면 채워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낮은 자가 높게 오르면 종국에는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래서 북악산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번갈아 가며 머무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잘 가르치는 곳이다. 주말에 잠깐 올랐다 정상 찍고 내려온다면 한 시간이면 족한 것이 북악산이다. 그러나 그런 소모적인, 보여주기식 오르내리기가 아니고 산에서 걷고, 산에서 호흡하며 산에서 머무른다면 12시간도 족히 기쁜 마음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이 북악이다.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라는 마음을,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품 안에서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를 느끼기 좋은 산이 북악이다.
이제는 10년도 넘은 일이다. 엄대장님과 함께 청계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진달래고개도 못 갔는데 엄대장님께서 땀을 뻘뻘 흘리시고 숨을 몰아쉬시는 게 아닌가? 우리가 놀라 물었다. 엄대장께서 이런 야산에서 땀을 다 흘리시네요 ㅎㅎㅎㅎ 대장님 답하길, 청계산도 산입니다.
팔각정
30분 정도 걸었더니 팔각정이 눈앞이다. 팔각정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냉수 한잔 마시고 둘러보는 풍경이 참 좋다. 북으로는 북한산과 평창동이 다 보이고 멀리 일산까지 보인다. 압록강까지 보이는 듯 하지만 그건 구름일 것이다. 남으로는 롯데타워,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팔각정 전망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땀이 다 보상받는다. 어찌 보면 북악사의 정상은 백운봉이 아니라 팔각정인지 모르겠다. 자 다시 출발. 이제 김신조 루트를 거쳐 삼청각으로 가보자.
김신조루트
스카이웨이 둘레길을 따라 조금 가면 위로 구름다리가 보이고 김신조 루트로 이어진다.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간다. 김신조 일당이 쏜 총알을 맞은 소나무도 있고 이어서는 내리막길이다. 군사용 계단으로 쓰였던 내리막을 한참 내려가면 왼편으로 데크길이 이어지고 큰 기와지붕집이 보인다. 삼청각이다. 이전에는 삼청각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데크길이라 한참을 돌아서 다시 삼청각으로 향한다.
삼청각
김신조 루트에서 곧장 삼청공원 말바위쪽으로 내려가면 일반적인 코스인데 비추한다. 그러면 그것은 하산이다. 북악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다. 머물고 거니는 산이다. 자 팔각정을 즐겼다면 이제 삼청가이다. 굳이 식사를 하지 않아도 좋다. 카페에서 라테 한잔, 좀 더우니까 빙수 한그릇 하면서 성북동을 내려다보는 한가로움을 누려보자. 돈암동 너머 구름이 내 것이 된다.
[삼청각 카페에서 라떼 한잔. 하늘도 구름도 모두 녹아있다]
[삼청각에서 내려보이는 북북악산. 멀리 성곽이 보인다]
성북동대사관로
삼청각에서 왼편으로 이어지는 대사관로를 따라가 보면 대사관 또는 대사관저들이 줄을 잇는다. 독일 대사관저 일본 대사관저 등 대사관 마을이다. 그래서 도로 이름도 대사관로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성북동이 개발되면서 외교관 마을로 개발이 되면서 아직도 대저택들이 대사관저로 쓰이고 있다. 물론 서울 부자들이 사는 성북동도 같은 성북동이긴 하다. 가수 이승기 씨의 신혼집을 성북동에 차렸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유명인, 부자, 들이 사는 동네가 성북동이다. 여하튼 동네 구경도 할 겸, 집 구경도 할 겸 대사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산에 머무는듯하면서도 도시에 내려온 느낌 모두를 갖게 된다.
정법사
북북악의 정수 세 개를 꼽으라면 나는 정법사와 길상사와 그리고 삼청각을 꼽고 싶다. 그중 으뜸은 저녁의 길상사요, 다음은 아침의 정법사다. 정법사는 길상사에 비해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정법사가 좋다. 요란하지가 않다. 절 안에 작은 카페가 있는데 한 번도 나 말고 다른 손님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조용히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멀리 하늘을 보며 숨을 가다듬기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숨도 마음도 법도 정결해지는 곳이다.
[조용히 가만히 그렇게 있기 좋은 곳이다. 정법사]
길상사
정법사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왼편에 길상사다. 법정스님의 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소유의 법정스님. 누구도 모르는 강원도 오지 암자에 기거하시다 주말에 가끔 오셔서 법문을 하셨던 절이 법정 사다. 수행자들 불편하다고 주무신 적도 없다고 한다. 한번 머무신 때가 입적하신 때다. 본인께서 시주를 받아 연 절이지만 한 번도 주지스님을 한 적이 없다. 입적은 법정사에서 했지만 폐암으로 마지막 길이여서 어쩔 수 없이 길상사에서 열반하셨다. 지금도 진영각에 법정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불필요한 소유의 마음이 불행을 가져온다는 말씀이 청정하게 남아있는 도량이지만, 무엇보다 저녁에 6시 넘어 걷는 길상사는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나무들 사이로 구름이 보이거든 스님 말씀인가 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길상사 경내. 내가 평화롭다면 더욱더 평화로운 곳이 길상사다]
길상사까지 다 걸었더니 이제 해가 없다. 어둠 속에 다시 북악산을 올라 남북악으로 넘어가자니 귀신이 무섭다 ㅎㅎㅎ 내일 아침에 다시 이어서 남북악으로 건너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