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북촌보다 흥미로운 원서동

서울시내 4대 산 등정기 #6 낙산을 향해서

by 미니맥스

서울 성곽길 완주기를 쓰고 싶은가?


이번 연휴동한 등정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북악산 삼청공원을 내려와 곧장 낙산으로 향하고자 했다. 삼청공원에서 와룡공원을 향하다 성균관대 후문을 시작으로 성균관대를 가로지르면 혜화동이다. 그럼 10분 정도 걸으면 서울 성곽길 2코스의 출발점인 혜화문을 마주하게 된다. 혜화문에서 출발해서 낙산을 지나 동대문을 지나 광희문까지 걷고 다시 남산을 넘어서면 나의 서울시내 4대 산 등정기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바로 혜화문을 향해가던 나의 마음은 삼청공원을 몇 걸음 걷지 않아 바뀌었다. 무엇을 목적으로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무엇을 목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몇 편의 글을 후딱 써서 10편의 글을 모으고 그것을 브런치북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다. 콘텐츠를 짜내는 욕심이다. 전문 작가로 살아가는 자도 아니면서 부지런함이라는 이름으로 짜내는 콘텐츠 과잉이다. 그렇다고 살림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ㅎㅎㅎ. 강박이 과하다. 가을이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다. 쫓기지 말자. 나는 자유롭고 싶어 걷고 자유를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런데 지금은 글이 나의 길을 정하고 있다. 이건 아니지 ㅎㅎㅎ. 지금 내가 가는 방향이 내 인생이 가는 방향이다. 마음을 바꿔먹고 광화문으로 발길을 돌린다.


광화문에서 대학로까지


마음을 바꿨다. 광화문에서 북촌을 지나 원서동을 지나 창경궁에 들르기로 했다. 그리고 시가이 되거든 혜화문에서 낙산을 넘어 광희문까지 가자. 중간에 이건희 미술관이 지어질 열린 송현도 둘러보고 북촌도 천천히 걸어서 원서동에 닿으면 프릳츠에서 라떼도 한잔 마시고 천천히 가자. 아직은 그래도 내가 살 날들이 제법 남지 않았던가. 광화문에서 대학로까지 걸어 다시 낙산으로 향하기로 코스를 변경한다. 북악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다. 주변에서 머무르는 산이다. 북악산은 산 봉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로와 광화문까지 아우르는 산이다. 넓게 보면 종로도 광화문도 북촌도 혜화동도 모두 북악의 일부이다. 나는 아직 북악산에서 내려와 도시로 길을 바꾼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북악의 자락을 걷고 있는 셈이다.


경계는 마음에 있는 허상


그렇다. 무엇의 경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오늘과 내일이라는 단위로 경계가 없는 시간을 구분해 놓은 것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는 경계에 익숙하고 경계를 구분 지으려 한다. 그러나 원래 땅에 경계는 어디에 존재했는가? 나와 타인들 간의 경계도 내가 주관적으로 정한 것과 같이 산과 도시의 경계도 지도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구나. 모든 경계와 구분은 내가 만든 것이다. 절대적인 구분과 경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경계에 대해 이르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다시 이어진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했던 초기 분류학자들. 생명의 나무의 가지를 정리하고 구분하던 그들의 업적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신의 한 수와 같았다. 그러나 다윈의 등장으로 모든 종의 경계는 사라졌다. 하나의 종에서 또 다른 종으로 진화라니, 종간에 구분은 없는 것이라니. 흑인이 백인과 같은 종이라니. 애써 찾으려 했던 질서가 다시 카오스로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구분과 경계에 대해 그는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그렇다, 종은 또 다른 종으로 이어지지 구분되지 않는다.


산과 도시도 구분되지 않고 이어진다. 산과 산도 이어진다. 자연은 이어지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이 구분을 종이 위에 그릴뿐이다. 그 구분을 넘어서는 자유를 누리고자 나는 걷고 싶다. 그러나 정작 지도 위 선을 따라 걸으며 선을 넘어서지 못한다. 부끄럽다. 그럼에도 한 반 내딛는다.



왕의 길이 가로지르는 북촌


광화문에서 출발해서 삼청동 정독 도서관을 향한다. 카페와 미술관이 늘어선 길이다. 정독도서관을 지나 북촌으로 오르지 않고 재동으로 넘어간다. 런던베이글 뮤지엄을 지나자 사거리가 나온다. 계동이다. 그리고 다시 좀 더 나아자가 창덕궁이다. 이 길이 북촌의 큰길이다. 예전에 말이다. 안국역 앞으로 큰 도로가 나기 전에 이 길이 경복궁과 창덕궁을 연결하던 왕의 길이다. 조선 올드 타운의 킹스로드인 셈이다. 왕들과 왕비와 공주와 왕자들이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던 길. 조선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번화한 길. 그 길 주변으로 옹주와 왕족들의 집이 들어서 있던 곳. 지금은 런던베이글 뮤지엄과 카페들과 식당과 현대건설이 차지한 땅이다.


오래된 그래서 신기한 원서동


마주한 창덕궁 담벼락. 담벼락 따라 길게 이어진 동네가 원서동이다. 비원의 서쪽에 있는 동네 원서동. 길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고하 송진우 선생의 생가와 몇몇 고택들이 나오는 한적한 동네다. 머지않아 삼청동처럼 번화할 동네다. 궁과 나란히 살아가는 동네 원서동.



마음이 하늘이 되는 카페프릳츠


원서동과 현대 사옥 사이에 창덕궁이 내려 보이는 카페가 있다.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그러나 오늘 쉬어갈 곳은 카페 프릳츠다. 스페이스 공간 아래에 위치한 프릳츠. 작은 한옥안쪽 마당이 풍족한 곳이다. 마당 가운데 서있는 3층 석탑과 담쟁이덩굴 사이에 놓인, 햇빛이 비스듬히 드는 마당에 놓인 테이블. 라떼와 빵 조각을 올려놓으면 참새들이 날아와서 빵 부스러기를 물어간다.



햄튼 코트와는 비교도 안되는 창경궁


다시 가방을 챙겨 대학로로 향한다. 창덕궁을 지나 터널을 지나 창경궁이다. 서울에 이런 뜰과 나무 숲이 있다니 올 때마다 놀랍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 안쪽으로 들어가니 식물원이 나온다.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식물원 모습이다. 런던에 있는 큐가든을 축소한 느낌이다. 창경궁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해가 궁너머로 지고 있다. 낙산은 다음 날로 다시 잡아야겠다. 그래도 시작은 창경궁에서 해야겠다. 그리고 혜화문을 시작으로 광희문까지 가야겠다. 그러나 오늘은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련다. 나의 서울시내 4대 산 종주기는 이번 연휴에도 마무리를 못할 모양이다.




keyword
이전 05화북대문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