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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에서 남산까지 내달리기

서울시내 4대산 등정기#8 동대문

by 미니맥스

동대문 흥인지문


광화문에서 출발한 지 대략 두 시간이 지났다. 낙산 정상인 낙산공원을 지나 동대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낙산 성곽에서 내려다본 동대문. 길이 곱다. 가을 초입이라 억새가 한창이다. 낙산에서 남산까지 내쳐 가기로 한 길이라 동대문을 지나서 성곽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낙산이 풍수적으로 낮고 작아서, 동대문 터를 높이고, 문도 누를 올려 2층으로 하고, 문도 흥인지문 네 글자로 지어 숭례문, 돈의문보다 한 글자를 더 넣었다. 무게를 글자로 크게 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장충운동장에 터를 쌓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장충운동장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DDP로 개발된 그곳이다. 동대문은 여하튼 한양에서도 지세가 낮은 곳이다. 물이 흘러 나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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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와 강아지풀이 가을 풍경을 만들고 있다. 언덕 위에 교회탑이 하늘에 닿아 보인다.]



무악대사의 저주와 임진왜란


전해지기는 무악대사가 경복궁을 인왕산 아래가 아니라 북악산 아래로 정해진 것을 보고서는 서운한 마음에, 마주 보는 남산은 높고, 좌청룡인 낙산은 낮아서 반드시 낙산으로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1592년 임진란 때 일본 왜군이 낙산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하는데 꼭 풍수 때문이 아니라도 낙산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거의 평지라 방어가 상대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름을 (일부러) 만들어 드립니다.


성곽길을 내려과 동대문으로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주름가게 간판이 보인다. 명동주름. 손주름 후리아주름 꽈배기주름. 동대문시장 근처라 주름 만드는 곳이 있다. 주름... 그래 편편하기만 하면 볼 품이 없어서 주름을 넣지... 옷에도 주름을 넣어야 직선이 아닌 곡선이 되어서 이뻐진다. 삶에서 주름은 없기만 바랄 뿐인데, 인생에 고비는 없기만 바랄 뿐인데, 옷에는 이뻐지라고 일부러 주름을 넣는구나. 그래 큰 강이 직선으로만 흐르겠는가? 굽이굽이 흐르면서 모래도 쌓기도 하고 쌓인 흙도 쓸어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굽이굽이 흘러가야 큰 강이 되지. 하물며 서울 성곽도 동서남북 사방으로 만든 도시지만 성이 구불구불이다. 네모난 직사각형이 아니다. 내가 지나온 길도, 앞으로 갈 길도, 주름이 있었고, 있을 것이다. 멋으로 여기자. 일부러 주름을 넣어주는 가게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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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앞에 있는 명동주름. 주름을 펴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도 하는구나]



동쪽의 끝이었던 동대문


동대문 주변이 1960년대까지 전철 출발지였다고 한다. 경성전철의 기지국인셈이다. 즉 도시의 출발이자 끝인 곳이다. 동대문 사대문을 벗어나면 한양 밖인 셈이다. 정약용 선생도 편지에서 아들들에게 서울 살이가 힘들어도 반드시 한양에서 버티고 살아야 한다고 적었다. 그 서울의 동쪽 끝 동대문이다. 동대문에서 100미터나 갔을까? 곧 청계천이다. 1960년까지 전철이 다녔구나... 가만 그때는 북악 스카이웨이가 개통한 시기인데. 서울 시내에서는 전철이 다니고 있고 강북에서는 성북동이 개발되면서 북악스카이웨이가 만들어지고 했던 시기가 1960년 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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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동대문 시장]



DDP 동대문 플라자에서 만난 이간문


청계천을 건너니 동대문플라자 DDP다. DDP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DDP뒤편에 있는 이간문이다. 두 칸짜리 수문이다. 2008년 동대문 플라자 개발 공사를 하면서 발굴됐다. 남산 쪽에서 흘러 들어온 물을 동쪽으로 흘려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수문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흙으로 덮였다가 2008에야 발굴이 되었다고 한다. 꽤 큰 돌문인데 최근까지 지하에 묻혀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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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플라자의 이간문. 두 칸짜리 수문이다. 높이가 족히 3-4미터는 되는 큰 수문이다]



땅속의 이간문..... 모든 역사는 묻힌다... 모든 것은 잊힌다


일전에 인류학 발굴 서적에서 본 기억이 난다. 서울 모든 지역은 파면 옛 유적이 나온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과거 유적이 나온다. 대략 1년에 1센티미터 흙이 쌓인다고 한다. 그래서 1미터를 파면 100년 전 역사가 나온다고...... 종로에서 건축 관련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지반 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파나 가는데 17세기 집과 우물의 형태가 발굴됐다. 그래서 공사가 몇 달 가까이 지연이 됐다. 문화재청, 종로구청과 협의를 거쳐 어떻게 공사는 다시 재개했다. 그렇다 지금 서울의 지하에는 100년 전 500년 전 조선의 역사가 묻혀있다.



그렇다. 시간은 흙으로 과거를 묻는다. 역사는 그래서 땅에 묻힌다. 일부는 다시 발굴되기도 하지만 현재라는 순간은 시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함께 묻힌다. 과거는 묻히고 새로운 현재는 만들어진다. 그것이 지구가 정한 방식이다. 내 생도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묻히고 잊힌다. 모든 사람 하나가 우주라고 한다. 그러나 그 우주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현재를 잠깐 살다가 지나간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일이 아니다.


시름이 있거든 그냥 묻어야 한다. 가만 두워도 시간이 언젠가는 묻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행과 불행중에, 행이 먼저이고 불행이 다음이다. 즉 행복이 아닌 것이 불행이다. 불행이 먼저고 불이 없어져서 행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원래 행한데, 행복한데, 앞에다 부를 붙인다. 원래 행복했는데, 굳이 부를 붙여 불행하면서, 굳이 행복해지려한다. 모든 것은 묻힌다. 모든 것은 잊힌다. 시간이 그렇게 해준다. 시간에 내맡기자. 스스로 행앞에 아니 불자만 붙이지않으면 행복하다.



광희문. 시구문. 천주고 순교자의 문


오늘의 원래 목적지 광희문. 광화문이 아니라 광희문.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본 적이 없는 문이다. 네이버지도 탓에 결국 찾았다. 서울의 동소문 광희문. 동대문에서 걸어서는 10-15분 거리다. 을지로 4가에서 신당동 떡볶이 거리로 가는 길에 있다. 역시 소문이라 크지 않다. 광희문이 서울의 시구문이었다. 시체가 나가는 문. 그래서 조선말 천주교 박해자들도 성안에서 처형돼서 이 문밖으로 버려졌다고 한다. 정약용의 형제중 유일하게 사형을 당한 정약종도 이 문밖으로 버려졌겠구나.... 여기서부터 남산이다. 그런데 남산은 보이지 않고 언덕길만 보이고 성곽은 안 보인다. 광희문부터 장충체육관까지 성곽소멸길이다. 없는 성곽을 따라 장충동으로 향한다. 이제 남산으로 갈 시간이다. 남산을 올랐다가 남대문으로 가서 광화문까지 오늘은 마무리하고 말리라.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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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동소문 광희문. 시구문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제 다시 남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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