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꿈이 뭐니?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는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항상 무언가를 꿈을 꾸는 아이.
잘 때도 꿈을 꾸지만 깨어 있을 때도 꿈을 꾸는 아이.
딱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 멋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보면 '빨리 나도 어른이 돼서 저런 사람이 돼야지'라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면 멋진 춤을 추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크고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 나도 멋진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멋있는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나도 그런 옷을 입고 싶었다.
그렇게 멋지고 또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은 그렇게 온종일 꿈으로 가득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 반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덩치가 컸고 힘이 쌔보이는 친구였다. 동혁이! 이 친구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친구였다. 나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의 행동이나 모습이 신기해서 매번 그 친구를 관찰하는 걸 즐겼다.
이 친구는 걷는 모습조차도 당당하게 보였으며, 항상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솔직히 매우 내성적이었던 나에게 그 친구는 너무나 부러운 존재였다. 나는 그 친구를 보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저 친구처럼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동혁이에게 인기보다 더 놀라는 능력은 바로 동혁이가 부탁하면 누구든지 무조건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아~ 오늘 떡볶이가 먹고 싶으러 같이 먹으러 갈 사람?"
동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친구들은 마치 동혁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청처럼 동혁이에게 서로 가자고 말했다. 심지어 사주겠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 역시 미치도록 동혁이와 그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그저 멀리서 동혁이와 친구들을 바라만 보면서 부러워했다.
다른 한 명의 친구는 "민우"라는 친구다.
이 친구도 조금 특별한 능력을 지닌 친구였다. 이 친구는 나와 마찬가지로 항상 혼자 지내는 친구였다. 주변에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고 혹시 누군가 말을 걸면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앙상한 몸에 키가 작았던 민우는 소심하다 못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말 걸기가 어려웠다.
'나 지금 혼자 있고 싶어! 그러니 아무도 말 걸지 마!'
나도 민우처럼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그런 내가 봐도 너무 소심한 친구였다. 결국 나는 동혁이와 마찬가지로 이 친구를 계속 관찰하기 시작했다.
'과연 쟤는 언제 말할까? 혹시 말을 못 하는 거 아닐까?'
그런 민우는 또 한 가지의 특별한 점이 있었다. 내 기억에 민우는 매번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마치 한순간이라도 글자를 읽지 않으면 죽는 사람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를 너무 빨리 읽어서 다른 책을 보고 있었다. 확실하게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만화책이나 위인전 같았다. 수업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언제나 책상에 놓여있는 책을 보려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친구. 그런 친구였다.
하루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동혁이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우한테 말을 걸었다.
"야~ 너 좀 있다 학교 끝나고 축구할래?"
동혁이의 뜬금없는 말에 민우는 고개를 들어 동혁이에게 말했다.
"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그리고 반에서 최고의 인기남이었던 동혁이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민우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것이다. 뭐 말하는 게 그리 큰일이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사건은 마치 연예인이 지나가는 일반 사람에게 같이 밥 먹자고 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렇게 동혁이와 민우는 축구 한 번을 시작으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수업이 끝나면 축구를 했다. 당연히 민우는 운동에 소질이 있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동혁이는 그 사건 이후로 항상 민우와 함께 했다. 그런 민우를 보면서 나는 너무 부러웠다.
'나도 민우처럼 동혁이랑 친구하고 싶다! 민우보다 축구 더 잘할 수 있는데...'
이렇게 나는 속으로 항상 민우를 내심 부러워했다. 성격은 나보다 소심하고 키도 작은 민우를 무섭게 부러워했다.
몇 개월이 흘러 그 두 친구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동혁이가 가는 곳 어디든지 민우는 함께 했다. 활동적이고 멋있었던 동혁이와 함께 다녀서 그런지 민우도 조금씩 다른 친구들과 말하기 시작했고, 축구를 미친 듯이 해서 그런지 몸도 많이 좋아지는 듯 보였다. 역시나 그런 민우 옆에는 또 다른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어느덧 멋지게 우리 반 연예인으로 데뷔한 민우가 그저 부러웠다.
어쩔 때는 동혁이보다 민우가 더 부러웠다. 감히 넘볼 수 없는 동혁이보다 한때는 나보다 못나다고 생각한 민우가 더 부러웠다. 딱 그때 나는 예전 민우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고 그저 하루 종일 책상만 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 그게 나였다. 물론 책 따위는 읽고 있지 않았고 그냥 나무 책상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더 흘러 여름방학을 왔다.
사실 나도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대로 하는 축구는 아니었다. 동혁이와 그 친구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친구들끼리 모여서 우리만의 축구를 했다. 나를 포함해서 6명 정도 되는 친구들은 정식 축구장이 아닌 한쪽 구석에 있는 철봉 아래서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놀았다. 마치 오늘 경기에는 절대 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몸을 풀고 있는 후보 선수들 같았다.
"야~ 여기 패스~패스~ 이렇게 차야 공이 더 잘 굴러간다고~ 알겠지?"
우리끼리는 이미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힐끔힐끔 동혁이랑 친구들이 축구장에서 땀 흘리며 공을 차는 모습을 바라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그런 동혁이와 친구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저 축구장에서 공을 찰 수 있겠지? 캬~ 골까지 넣으면 대박인데...'
이리저리 공을 드리블하고 다른 반 친구들을 재껴가면서 돌파하는 동혁이와 그 친구들 그리고 민우가 멋있어 보였다. 사실 저 중에 누군가 다쳐서 내가 대신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여전히 동혁이와 민우는 최고의 친구였고 어느덧 짝꿍까지 되었다. 그런 민우를 다른 친구들도 부러워했다.
'어떻게 하면 동혁이랑 저렇게 친할 수 있는 걸까?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수업이 끝나자마자 늘 그랬던 것처럼 다른 친구들은 모두 동혁이와 민우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얘기인지는 안 들렸지만 동혁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보였고 친구들은 뒤집어지듯이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겨울방학이 지나고 이제 3학년도 거의 다 끝날 무렵까지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두 친구 들을 부러워만 하면서 보냈다.
나는 5학년을 마치고 6학년에 올라가기 전에 지방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친한 분이 소개해준 자리가 있어 사업을 하기 위해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씀 이후 아버지는 거의 6개월 가까이를 아버지는 사업 준비 때문에 주말에만 집에 들어오셨다. 땀냄새가 진동하는 빨래가 듬뿍 담긴 보자기에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한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가족의 이사를 착실하게 준비하셨다.
그렇게 6개월 후 전학 가기로 한 전날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때쯤 나를 앞으로 불렀다. 내가 다음 주면 전학을 가게 돼서 못 본다는 짧은 얘기를 하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했다.
"다음에 볼 수 있으면 같이 축구하자!"
이 말이 내가 전학 가기 전에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의 전부였다. 그날 나는 친구들과 저녁까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언젠가는 다시 볼 친구들이니 슬픔도 없었고 아쉬움도 없었다.
너무 힘 들어서 땅바닥에서 앉아 쉬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민우는 지나가듯이 말했다.
"야~ 너 어디로 가냐?"
무언가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민우의 질문에 나는 순간 민우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 어 전주인가? 뭐라고 했는데... 나도 잘 몰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우는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나는 멍하니 오늘도 계속 축구를 하고 있는 부러운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깜깜한 저녁까지 학교에 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다 떠나고 우연히 민우와 나 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민우에게 뻘쭘한 듯 말했다.
"넌 집에 안 가냐? 이제 집에 가자!"
나는 우연히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해준 민우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민우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내가 재미있는 거 말해줄까? 너 내가 동혁이랑 친한 거 알고 있지? 우리가 왜 친해진지 얘기해 줄까? 궁금하지? "
민우는 마치 떠나가는 나에게만 마지막 선물을 몰래 주듯이 말했다. 딴 사람 같았던 민우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여름방학 전에 동혁이랑 얘들이 문방구 앞에서 뭘 먹고 있더라고... 근데 내가 그걸 봤는데 나보고 이리 와보라는 거야... 그래서 갔더니 돈이 부족하다고 좀 빌려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뭐~ 친구이니깐 빌려줬지... 그랬더니 다음날 나보고 축구하자고 하더라~"
나는 너무 놀랐다. 놀라는 내 모습을 보며 민우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어느 날은 집에서 나오는데 돈이 없는 거야! 진짜 짜증 났거든... 근데 우리 아빠 지갑이 갑자기 보이는 거야... 그래서 한번 봤더니 돈이 엄청 많더라고... 히히히... 그래서 몰래 조금 가지고 왔는데 아빠가 모르더라..."
그 말이 끝나고 민우는 나와의 마지막 인사도 없이 도망치 듯이 집에 갔다.
'역시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난 친구가 없는 거구나? 전학 가면 아빠가 돈 많이 번다고 했으니 나도 친구들이 많이 생기겠지?'
나는 또다시 멋진 꿈을 꾸며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우리 집은 차가 없어서 아주 부자인 아빠 친구분의 멋진 차를 타고 그렇게 전주로 전학을 갔다.
나는 동혁이가 되고 싶었고, 민우가 되고 싶었고 그 주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너무너무 미치도록 부러웠다. 나중에 알게 된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도 너무 되고 싶었다. 그게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