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

행복도 적당하게

by 지우

생각해 보면


행복과 불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 위치해 있고

언제든 서로 손을 잡고 마주 볼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가지 모두 노크 없이 방문을 벌컥 열어버리는 아빠처럼 너무나 쉽게도 찾아오고

내 방에 방문하는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하루 기분의 지대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그런 것은 나의 선택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그냥 그렇게 된다. 허무하게도.


그것이 행복일 경우 전체적인 컨디션을 고양시키는 데에 엄청난 도움이 되며 하루를 알차게 그리고 더 옳은 방향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다리을 역할을 해준다.(나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셨다.)

그러나 불행이라는 것이 한 번이라도 마음속에 잠시나마 들르게 되면 하루의 고양감 또는 '오늘 너무나도 좋았다.'라는 생각쯤은 몇 백만 년 전에 일어났었던 일인 것 마냥 존재적 감각이 까마득 한 방 속으로 집어 쳐 넣어 버려 내지고 내동댕이 쳐버려지곤 한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가끔 그런 것을 경험하고 나면 가슴 깊이 사무치게 허무하다.


행복이 약해서 불행이라는 것에 뒤처지는 혹은 밀려버리는 것일까.

정말 슬프게도, 진실되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런 존재이다.


서로 대극점에 서 있다라기보다는 그 둘은 옆에 같이 존재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가며 나의 양 옆에 있다.


그런데 불행이라는 것이 행복을 보완한다?

내가 적고 읽어보아도 조금은 이상한 말인 것 같긴 하다.


불행이 행복을 보완해 주려면 불행이라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존재이어야 하는데

필요한 것이 맞나?


'불행은 나를 더 성장시켜 준다.'라는 말이 마음이 많이 와닿는 것 보면

그리고 그런 글귀에 공감하며 내가 불행했던 순간의 감각을 알고 있음에 혹은 그게 상처일지라도

그 상처를 매만지며 '아 이게 불행이었구나.' 할지라도 불행이라는 것을 작은 냇가 보듯

이렇게 자세하게 들여다보자면 불행이라는 녀석, 참으로 안타까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 온 후 굳어가는 땅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불행이라는 녀식이

나를 위해 일하고 애써주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인데 말이다.


그럼 행복은 어떠한가.


행복, ‘선’의 대명사아래 숨어 비웃음을 품은 녀석일 수도 있지 않을까?(너무 비관적이지만)

행복아래에만 있으면 여름과 가을의 간격에서 존재하는 나무그늘의 시원함 같이 그저 즐거운 존재일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문득 정신 차려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자세를 정말 쉽게도 무너뜨리거나 안일하고 쉽게 방심하도록 만드는 것 또한 행복이라는 것 아닐까.


이렇게 상황을 역전시키거나 숟가락의 볼록한 부분으로 나를 보듯이

반대로 혹은 역으로 순서를 바꾸어 돌이켜보거나 응시해 보면

행복 그리고 불행 무엇이 부정적이고 무엇이 긍정적이다라고 선언할 것 까지도 없는 것이다.


행복을 사랑한다.

지금 현재 나의 삶의 시스템 혹은 이 포맷에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고 사랑한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


행복감 없이는 현재의 마음가짐과 생활태도 그리고 나의 행동거지가 절대 나올 수 없으며

그 결과로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감각과 감정을 전달받고 혹은 나에게 전달해 주는 호감의 감각을

내가 받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부정만 할 수는 없다.


불행또한 정말 힘들고 고되고 슬픈 것이지만 그것을 이겨냈던 나를 돌아보면

그 순간들 없이 우매하고 무지하게 커왔을 아니 성장하지 못했을 나를 상상해 보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슬픈 이야기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에서 기인하고 그 결과를

내가 느꼈고 내가 견뎠고 내가 성장한 것이기에 행복과 불행 자체를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현재도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면 내 능력선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을 잠시나마 베풀고 왔다.

가만히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음을 깨트리는 움직임을 불행.(냉정하지만 현실적으론)

가서 선행을 베푸는 것이 행복.

이러한 작은 상황에서 마저 서로 공존하고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뜻하지 않아 자신의 흐름에 맞지 않는 불행 같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좋은 행복의 길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


결국 행복이고 불행이고 어떤 것이든 나에게 다가오든 멀리서 보이든 어쨌든 저쨌든 지지고 볶든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너무 깊게 하지 않는 것이

행복과 불행에 있어 너무 한쪽으로 편중된 채 파묻히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적당히 감각하고 적당히 느끼고 적당히 반응해야만 서로 손을 잡고 있는 행복과 불행을 끌어안고

적당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언제나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