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養生
건축/토목 전문용어로 콘크리트 치기를 한 뒤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도록
응고경화를 위해 온도, 습도 등의 조건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것
사람에게 역시 건축과 토목의 분야처럼 양생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에 와서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말쑥한 삶을 살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생각이 너무나도 많아 잠에 쉽게 들지도 못했으며(직업적 특성도 있었겠지만) 잠의 유지정도도 매우 낮아 쉽게 깬 뒤 게임을 하러 가거나(마치 게임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깼다라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시간과 상관없는 커피섭취, 식사에 영향을 미칠 과자 혹은 라면 섭취, 과도한 핸드폰 사용, 미디어 시청 등 모든 것이 나를 위한다는, 내가 좋아한다는 핑계로 인해 나를 양생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말이죠.
그런데 문득 ‘이게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올랐습니다.
답은 역시나 NO.
내가 나에게 부정당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솔직하게 정확하게
'아니요.'였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의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양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하루키 님 역시 그런 과정 없이는 자신일 수 없고 삶의 방향성에 있어 살아 나아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매우 중요한 과정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럼 ‘나에게 양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역시 뒤 따라왔습니다.
저는 원래 본디(정말 선천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우울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매사 부정적이며 기분이 쉽게 오락가락하고 말을 내뱉을 때에도 신경질적인 부분이
정말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신 외에도 많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그것을 저는 ‘선천성’이라는 거짓된 철옹성을 지어주고 스스로의 약점을 매우 고달프게 방어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찾아왔던 우울증 진단은 삶을 변화해야만 한다는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완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 살기 위해 다 뜯어고치고 제대로 된,
나를 위한 습관 혹은 행동들을 시간 들여
양생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중에서 적정 습도를 맞추고 외부에서 가해질 충격에 대비해
양생 되는 곳을 보호하고 정말 차근차근 하나씩 쌓아 올렸습니다.
결과가 바로 앞에 보이지 않아도 그런 일련의 행위들이 정말 나를 위한 것임을 믿고 행했습니다.
하나씩 쌓아 올릴 때 역시 부정적인 생각들이 저를 지배하기도 했고
시행착오 역시 많이 겪으며 다시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렸습니다.
물론 지금도 다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나의 허울인 철옹성을 부시고 오히려 성보다는 아늑하고 편안한 집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결과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벽돌 혹은 나의 인생에 베이스가 될 부분에
정말 전심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저의 혹은 저만의 양생이라고 칭하겠습니다.
현대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안고 그 상처의 존재 그리고 정도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받아들여 그냥 그것이 삶이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짧은 제 생각으로는) 절대적이고 또 절대적인 지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한 사람도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는 자세는 너무 슬픈 이야기 같았습니다.
제가 작성한 단편성 글의 모음은 단순히 제게 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약하고 우울하고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저 마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 자신에 달렸고
내가 살아나가는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전달해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정말 조금이라도 정말 티끌만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작성해 봅니다.
양생. 시작하겠습니다.
작게 알립니다.
자전적 글이며 전달을 목적으로만 한 글이 아니기에 편협할 수 있습니다.
한정적인 제 안에 있는 어느 지점을 말하기에 한 부분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글의 흐름에 마음을 놓아두시고 그 놓아둔 시간에 잠시나마 위로가 되셨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