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속 개인의 서사 : 사용자의 감정 읽기

사용자를 이해하는 맞춤형 공간 설계

by 혜온

우리는 공간을 만들거나 새로이 디자인하려 할 때, 종종 장소 자체의 규모나 외관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은데요. 하지만 정작 그 안에 머물게 될 사람들의 개성은 얼마나 고려하고 있을까요? 아무리 멋진 인테리어나 고가의 자재로 완성된 공간이라도,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감정적 니즈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진정한 ‘맞춤형 공간’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개인화된 공간 디자인이 우리 심리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그리고 공간 기획자가 사용자 개개인의 서사를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photo by @somucherinmyhead


먼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흔적과 취향이 배어 있는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 방은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 구성된 곳이다'라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그 공간에 녹아들게 되죠. 예를 들어,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시선을 조금 위로 둘 수 있도록 서가를 배치하고,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위치에 독서 의자를 두면 같은 방이라도 활용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이러한 섬세한 조정은 단지 편의성만 높이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애착과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photo by @rinn

더 나아가, 개인 맞춤형 공간 설계는 심리적 안정감과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누군가는 머무는 장소가 지나치게 삭막하거나 본인의 개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다고 느끼면, 일상 속에서 작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반대로, 취향이 반영된 인테리어와 구조를 접하면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라는 긍정적 감정을 얻기도 합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들은 장시간 그 장소를 쓰는 사람의 마음 건강이나 창의적 사고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간기획자가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선, 사용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가요?”나 “예쁜 가구를 원하시나요?” 같은 표면적인 질문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생활 패턴을 지니고 있는지,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지, 잠시라도 힐링이 필요할 때 무엇을 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예컨대 늦은 저녁에 작업 효율이 극대화되는 사람이라면, 야간에 집중하기 좋은 조명이나 방음 설계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배려가 쌓여 하나의 공간에 녹아들 때, 그 공간은 ‘나만의 아지트’처럼 느껴지는 법이죠.


photo by @fourfeit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간 속 개인의 서사’가 형성됩니다. 흔히 공간은 정지된 배경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과 기억, 일상의 리듬이 담기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죠. 이를테면 음악 애호가가 사는 집에서는 LP 플레이어와 스피커 주변에 따스한 조명이 배치되어, 주말 아침에 음악을 틀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무드가 조성됩니다. 또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에서는 반려동물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특정 가구 배치를 유연하게 바꾸거나, 물과 사료를 두는 공간을 인테리어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이 쌓여, 결국 사용자가 공감하고 의지할 수 있는 개인화된 공간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공간 설계가 개인화됐다는 건 단순히 ‘개취(개인 취향)’를 존중한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서사’를 읽고 공간 안에 펼쳐두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업 효율을 높이거나 일상의 피로를 풀어주는 목표가 이뤄질 수도 있고,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거나 휴식과 사색을 돕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공간이 사용자의 감정과 이야기를 얼만큼 깊이 품어주느냐 하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photo by @arimundong

결국 사람은 자신만의 서사를 가장 편하게 풀어낼 수 있는 장소를 찾습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마음이 복잡할 때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죠. 그렇기에 공간 설계에서 사용자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은, 단순히 디자인 단계에 얹는 한두 가지 아이디어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서사가 충분히 반영된 공간은, 그곳을 찾는 순간부터 감정적 안정과 몰입을 선물하기 마련이니까요.


공간기획을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혹은 지금 머무는 장소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분들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 공간은 내 라이프스타일과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어쩌면 아주 작은 변화—의자 하나의 위치 변경, 선호하는 색감의 포스터 부착, 반가운 소품 추가—만으로도 공간은 전혀 다른 울림을 선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곧 ‘공간 속 개인의 서사’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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