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연결 : 공간의 흐름이 감정을 유도한다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의 미학

by 혜온

공간에 들어설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곳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가, 아니면 다소 경계 짓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됩니다. 복잡한 장식을 배제하더라도, 문 하나의 위치나 벽의 높낮이처럼 물리적인 경계는 우리의 감정적 반응을 조율하지요. 때로는 열린 구조가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고, 때로는 닫힌 구조가 오히려 안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이 만들어내는 미학적·심리적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경계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우리의 감정과 어떻게 맞물려 작동할까요?


photo by @nataliapanucci ; corridor


우선, 열린 공간이 주는 해방감은 건축계에서 꾸준히 선호되는 콘셉트 중 하나입니다. 벽체를 최소화하고 시야가 탁 트이도록 구성하면, 자연스레 시각적 답답함이 해소되지요.

photo by @Gulftype

흔히 거실과 주방을 일체형으로 설계하는 ‘오픈 플랜(open plan)’ 구조는 이러한 원리를 극대화한 예입니다. 이 레이아웃에서는 집 안 어느 곳에 있든 가족 간에 눈맞춤을 이어가고, 대화가 쉽게 오가니 소통의 흐름이 막힘없이 이어집니다. 동시에, 개인 작업을 하다가도 곁에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어 외로움이 덜합니다. 결과적으로, 열린 공간은 연결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 사이에 숨은 거리를 좁히고, 감정적 온기를 불어넣는 효과를 가집니다.


그러나 때론, 닫힌 공간이 주는 따뜻한 포근함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마음을 가다듬고 싶을 때가 있지요. 너무 시야가 훤히 뚫려 있으면, 오히려 집중력이 흩어지거나 ‘나만의 영역’을 갖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좁은 방 안에 조도를 낮춘 조명과 부드러운 가구를 배치하면, 작은 동굴 속에 들어온 듯한 안정감이 생기죠. 이는 마치 귓전에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느낌과도 비슷합니다. 주변 시선을 차단하고 내면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닫힌 구조의 힘이라면 힘입니다.


낮은 조도의 포근한 방, photo by @maggie


결국 개방과 폐쇄 사이,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공간은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경계를 설정하는 방식은 여러 층위에서 작동하지요. 벽의 높이, 문의 개수, 가구 배치, 심지어는 바닥재를 다른 재질로 구분하는 등의 미세한 디테일은 모두 경계를 암시합니다. 예컨대 레스토랑 같은 상업 공간에서, 식사 공간과 통로를 뚜렷하게 구분할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할 것인지는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심리적 안락감에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경계가 분명해질수록 ‘이 영역은 내게 허락된 곳’이라는 안정감을 주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사회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요


레스토랑 공간의 경계 설정, photo by @Endo Kuala Lumpur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이런 경계의 변주를 인지하면 할수록 공간 속에서 더 풍부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넓은 거실 한편에 살짝 코너를 만들어 개인 서재를 두는 식으로 반(半)개방 상태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절반만 열어둔 경계는 소통의 흐름은 살리면서도, 독립된 공간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하죠. 또는 반대로,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천장 일부를 개방해 채광을 확보하거나, 창문을 크게 내어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오픈된 구조도, 완전히 밀폐된 구조도 아닌 중간 지대'에서 오는 섬세한 감정을 자극합니다.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가깝습니다. 둘 다 필요하고, 둘 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공간 기획의 역할은 이 메커니즘을 잘 파악해, 그 장소에 어울리는 경계의 정도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거주형 주택이라면 편안한 휴식을 위해 사적인 공간을 확보해주되, 가족 간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열린 구역도 마련해야 합니다. 반면 창의적인 협업이 자주 일어나는 사무실이라면 개방감이 중요한 동시에, 집중 업무를 위한 프라이빗한 코너도 놓칠 수 없겠지요.


f8f256bc7320ce87db10e1d2dbead162.jpg SLACK office_Vancouver, Canada / from [5osa.tistory.com]


이러한 경계 설계의 궁극적 목표는, 감정의 흐름을 유연하게 유도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탁 트인 곳에서 해방감을 얻고, 한편으론 숨을 고를 만한 아늑한 코너에서 안정을 찾습니다. 즉, 경계가 흐릿하게 또는 선명하게 존재함으로써 공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결정짓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한 장소 안에서도, 작은 시퀀스(sequence)별로 열림과 닫힘을 다르게 연출하면 사용자 경험이 훨씬 풍부해집니다. 여러 번 방문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표정이 공간에 담기는 것이죠.


이번 글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경계라는 것은 '내가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어디까지일까?', '언제 나는 주변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하는가?' 같은 내면의 질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인간은 물리적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 환경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재정비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공간을 디자인할 때 경계와 연결의 방식을 세심히 다듬는 건, 결국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과 상호작용을 돕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같을 수 없는 삶들이, 열린 길을 통해 만나고, 필요하다면 닫힌 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또 안식을 가지며 재충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photo by @Kaia Prosacco


잠깐의 여유를 가지고 지금 여러분이 머무는 공간을 떠올려 보세요. 어디가 열려 있고, 어디가 닫혀 있나요? 그러한 경계들은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만약 각 영역이 너무 불분명하다면 새로운 가구나 파티션으로 경계를 설정할 수 있고, 반대로 벽이 지나치게 많아 침체된 분위기를 준다면 과감히 개방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경계와 연결을 자유롭게 다루는 순간, 공간은 비로소 자신의 색을 찾고, 사람들의 감정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무대로 거듭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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