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고 나면 오늘 일이 두고두고 생각나고 후회된데이.”
막순 어르신의 한마디에 나는 달맞이길 오르막으로 향했다.
담배 애호가인 막순 어르신은 폐암 말기 환자였다. 최근에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끔 기운이 날 땐 마당에서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좁고 가파른 마당 한 편에 놓인 작은 화분과 녹색 플라스틱 의자는 어르신의 휴식처이자 아지트였다. 그곳에 앉아 달맞이의 사계절을 보고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며 아픈 것도 견딜 만하다 했었다.
어르신 집에서 바라본 달맞이길은 사계절 매력이 다르다. 봄엔 우아하게 흩날리는 벚꽃이, 여름엔 싱그러운 바다 냄새가, 가을엔 멋진 노을을 따라, 겨울엔 상쾌한 바람이 함께 한다. 혹자는 그 길을 부산의 몽마르트르라고도 한다. 어르신은 그 길의 사계절을 담배 냄새에 종종 비유하기도 했었다. 기분이 좋을 때와 화가 날 때, 우울하거나 슬플 때 피우는 담배 냄새가 다르고 그마다 매력이 있다 했다. 특히 근심 있을 때 피우는 담배는 연기와 함께 걱정거리가 날아가는 거 같아 좋다고 했었다. 비흡연자인 나로선 이해가 안 되었다. 담배는 항상 퀴퀴하니 냄새가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벚꽃이 간질간질 세상에 나올 준비할 무렵, 그날도 나는 땀을 삐질 흘리며 오르막을 올라 어르신을 만나러 갔다.
“하늘이 맑아서 좋은 일이 있으려나 했더니 복지사가 왔네.”
한동안 누워만 있던 어르신이 아지트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새 눈에 띄게 더 마르고 병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꼭 하늘을 한번 보고 싶다는 요청에 요양보호사가 힘겹게 부축해 나왔다고 했다. 모처럼 뽀송한 햇볕도 쬐고, 오후에는 일용직 근로로 지방에 있는 아들도 집으로 오기로 했다며 좋은 날이라고 했다.
“오늘은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담배 한 대하면 좋겠다.”
“이런 날 피우는 담배가 꿀맛인데.”
어르신은 산해진미도 아닌 담배가 생각난다고 했다.
“담배는 안 좋다고 했는데, 다른 군것질거리라도 사 올까요?”
나는 폐암 투병 중인 어르신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나한테는 담배가 군것질거리고 최고 맛난 음식이지.”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참겠노, 괜찮으니 좀 사다 도?”
그나마도 숨이 차면 피울 수 없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꼭 한 대 피워야겠다고 했다.
“건강 때문에 피우면 안 되는데.”
투병 중인 어르신에게 담배는 조심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간절한 어르신의 소원에 어쩔 줄 몰랐었다. 그러자 요양보호사가 어르신 소원을 들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무언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게 나는 막순 어르신의 한마디에 담배 가게로 향했다. 어르신 집 근처에 슈퍼가 없어 담배를 사려면 달맞이길 오르막을 이십 분 정도 걸어야 했다. 가는 동안도 담배를 사다 줘도 되는 건지 걱정됐지만, 어쩌면 그게 어르신의 마지막 소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르신은 몇 달 만에 피운다며 담배를 무척 반겼다. 이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긴 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제 살 것 같다, 고맙데이.”
투병 생활 이후 그렇게 환하게 웃는 어르신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모습에 후련함마저 느껴졌다. 어르신은 그해 달맞이길 벚꽃을 보지 못한 채 하늘로 가셨다. 그날 어르신의 담배 심부름은 정말 마지막 소원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어르신과 이별했다.
한동안 나는 달맞이길 벚꽃이 필 무렵이면 막순 어르신의 담배 연기가 생각나곤 했다. 어르신은 그날 쌉싸름한 담배 연기에 모든 고통과 아픔을 날려버리고 가셨을까? 그곳에서는 좋아하는 담배를 실컷 피워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