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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날다 Oct 25. 2022

위드와 코로나


 2020년 1월 중순 국내 첫 코로나19(COVID-19)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우리의 일상이 달라졌다. 매일 만나던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도 거리두기를 해야 했고, 자주 가던 슈퍼도, 출퇴근길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순식간에 경계 대상이 되었다. 아프면 찾던 병원도 겁이 나 가지 못했다.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순식간에 일상은 공포가 되고 시간은 멈춘 듯했다. 사회복지 현장 또한 전대미문 재난 상황에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코로나19와 함께하게 되었다.     


 “코로나 조심해야 하니 복지사도 사무실에 딱 있으세요.”

 “내 걱정하지 말고, 난 잘 있을 테니.”

 “나보다 복지사가 더 걱정이다,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데.”

 “에고 이게 무슨 난리고 큰일이네.”

 “무서워서 밖에 안 나가요.”

 “술 사러 슈퍼도 못 가겠다.”

코로나19는 이렇게 모두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외출은 물론 방문 상담도 서로의 안전을 위해 자제해야만 했다.      


 오십 중반의 혼자 사는 동엽 씨도 코로나19는 특별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그는 부친이 초등학교 때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이십 년 동안 모친과 단둘이 생활했다. 외동아들에 친인척들과도 왕래가 없던 그에게 모친은 전부이자 세상과의 연결고리였다. 그런 모친이 사망하자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두문불출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나는 그의 안부가 늘 걱정이고 궁금했지만 동엽 씨는 나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지 말라니까, 왜 자꾸 귀찮게 해.”

 가끔은 짜증스러운 듯 소리도 질렀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낯선’ 사회복지사의 만나달라는 요청에 동엽 씨는 부담과 위협을 느끼는 듯했다. 방문과 거부 그리고 문전박대의 밀당의 시간이 지속되고 있을 즘, 만나 달라 떼쓰는 나보다 더한 강적이 나타났다.  

    

 조용하던 동엽 씨의 핸드폰이 밤낮없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코로나19가 위험하고 확진자가 몇 명이며,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모든 뉴스와 언론은 온통 그것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문자 안 받고 싶은데.”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혼자인 동엽 씨는 코로나19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무서운 상황이라는 건 알 거 같다고 했다. 

“무늬만 안전 문자에요, 이거 받으면 더 무서워서 잠이 안 와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몰라서 더 겁나요.”

시도 때도 없는 안전 문자는 동엽 씨에게도 무서운 존재였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 나누길 원했다. 코로나19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다.      


 대화의 물꼬가 터진 이후 우린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통화하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백신 맞고 왔어요,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나는 잘 지내고 있을 테니, 당분간 안 와도 돼요, 그냥 전화해요.”

오히려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서로의 안부 묻는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 진짜 반갑네요, 코로나 안 걸리고 건강하죠?”

코로나19 일상이 익숙해지고 조심스러운 방문이 가능할 때쯤 동엽 씨는 예전과는 달리 나를 반겨주었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공공의 적 앞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넘나든 우리는 알 수 없는 끈끈함과 동지애가 생겼다. 우리는 그렇게 코로나19로 인해 친해졌다. 그리고 지금도 그것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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