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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날다 Oct 25. 2022

와이파이 그녀


 나는 겨울이야말로 바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계절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한여름 열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휑한 모래사장과 마음 시린 찬바람에 바다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쓸쓸하지 않냐고들 한다. 하지만 겨울 바다는 혼자가 아니다. 그 속내는 지난 계절 다녀간 많은 사람의 추억과 사연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그날도 핸드폰 충전과 와이파이 수신이 빵빵함을 확인하고서야 겨울 바다의 찬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외근에 나섰다. 그녀의 집에 가려면 겨울 바다를 십오 분 정도 가로질러 걸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외근 길이지만 음악을 들으며 걷는 바닷길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 바다의 기운을 온몸으로 맞으며 수미 씨를 만나러 갔다.     


 벨을 누르고 오 분이 지났는데도 인기척이 없었다. 만나기로 약속도 했고 그녀는 거동이 어려워 늘 집에만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벨을 누르고 문을 몇 차례 두드렸다.

“어디 갔나?”

세평 남짓한 원룸에서 현관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거동이 불편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십 분쯤 지나서야 집안에서 들릴 듯 말듯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희미하지만 분명 사람의 소리였다. 드디어 십여 분의 기다림 끝에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제가 문을 열어도 될까요?”

“네.”

힘없는 대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문도 못 여는 것일까?

현관에 기댄 채 서 있는 수미 씨의 첫 모습은 흡사 메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몸에 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손가락은 비틀어져 있었고 바람이라도 잘못 불면 부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모습이었고 풀어헤친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엉켜 있었다. 나를 맞이하는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쓸쓸하고 힘없어 보였다. 환갑의 나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 든 모습이었다.      


 그녀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통 창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그녀에게 무서운 존재라 사계절 내내 두꺼운 커튼을 내려놓고 지낸다고 했다. 집은 어두웠고,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와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날 도청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한참 숨을 고르던 그녀가 건넨 첫마디였다. 

“국가가 나를 도청하는 거 같아요.”

그 전파공격을 막기 위해서 커튼을 내려놓고 지낸다는 것이었다.

“삼십 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어디를 가도 끊임없이 도청하고 감시당하고 있어요.”

오랜 세월 감시당하는 삶을 살았고 그 무게와 두려움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라고 했다.      


 “도청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첩보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얘기였다. 그녀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었다.

수미 씨는 증거가 있다며 서랍장 밑에 겹겹이 싸놓은 검은 봉지 안에서 2G폰을 주섬주섬 꺼냈다.

“핸드폰이 꺼져있어도 약하게나마 전파가 통해서 도청되기도 해서 항상 꺼놔요.”

잠시 망설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핸드폰 전원을 켰다. 이내 뭔가 발견한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보세요, 보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격앙되고 커졌다. 하지만 핸드폰 화면에는 특이한 것은 없었다.

“지금도 도청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요.”

“꺼야 해요, 빨리 봐요, 얼른요.”

나는 아무리 핸드폰을 들여다봐도 별다른 걸 발견하지 못했다.

“이거에요, 여길 봐요.”

그녀가 다급하게 가리키는 걸 봤다. 와이파이 신호가 약하게 잡히고 있었다. 그녀는 와이파이 신호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는 증거이며 지금은 전파가 좀 약하지만, 도청되고 있는 거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경찰도 한 통 속이라고 했다.

“이젠 정말 믿을 곳이 구청밖에 없어요.”

구청은 자신에게 수급비도 주고 도와주기 때문에, 믿을 수 있을 거 같아 신고했다고 한다.

“힘들었겠어요.”

상황은 어쨌든 그녀의 마음은 지옥 속이었을 것이다.

“어어 흑.”

그녀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무섭고 사는 거 같지 않아요.”

그녀에게 이 세상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수미 씨는 조현병으로 장시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받아왔다. 이 년 전쯤 증상이 좋아져 가족 품으로 돌아왔지만, 최근 다시 건강이 나빠져 다시 입원 치료할 예정이었다.     


 나는 그녀와 만난 후 다시 그 바닷길을 걸어 사무실로 돌아와 습관처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혹시 나의 핸드폰도 누군가 감시를 하는 건 아닐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잠시 음모론적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많은 일을 장소 가리지 않고 한다. 글도 적고 음악도 들으며 휴식을 위한 게임, 은행 업무도 해결한다. 버스, 지하철, 카페, 식당, 도서관 등 어디를 가도 무료 와이파이가 된다. 그 속도의 빠름 또한 따라올 수 없을 정도고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확연히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새롭고 편리해졌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고 없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편리함이 늘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었다. 


 그녀도 와이파이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생활의 편리함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오늘따라 속절없이 핸드폰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잘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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