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정말 어려운 이유
지난 한 주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남편이 직장에서 일이 몰리면서 아이들이 잠든 시간 퇴근해 집에 오는 날이 허다했다.
평소에는 7시면 집에 도착해 함께 오붓하게 식사를 한다. 물론 아이들 때문에 허겁지겁 먹기 바쁜 저녁 식탁 풍경이긴 하다. 내가 다 먹은 저녁상을 정리하는 동안 아이들의 목욕은 남편 몫이다.
신생아 때부터 아이들을 씻기는 일은 남편에게 맡겼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크면서 남자아이들은 아빠와 데면데면해진다. 우리 신랑과 아버님을 보면 우리 집 부자들의 미래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릴 때부터 같이 씻으면서 친밀감을 높일 수 있도록 내가 남편을 배려해 줬다. 그렇게 하루 한 번 치르는 야단법석한 의식 같은 목욕으로부터 나는 벗어날 수 있었다.
늘 아빠와 목욕을 했기 때문에 익숙한 아이들이지만, 남편이 야근이 잦아지면서 내가 씻기는 일도 잦아졌다. 아빠 손맛만 알던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경험하자 문제가 생겨버렸다. 특히 첫째는 만 4세 어린이인데, 제법 잔머리가 잘 돌아간다. 엄마는 머리 감길 때 눈에 물 한 방울 안 들어가게 섬세하다. 욕조에서 물을 이리저리 튀고 장난을 쳐도 가끔 눈감아준다. 양치질을 열심히 하면 무한 칭찬을 해준다.
반면 아빠는 눈, 코, 입 구멍마다 물이 들어가게 해서 영혼까지 씻겨준다. 욕조에서 장난을 치면 몇 번은 참아주다가 결국 소리를 지른다. 양치질은 열심히 해봤자 아빠가 다시 검사해서 더 빡빡 닦아준다. (아이의 시선에서 상상해 본 것이다. 아빠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는 있겠다.)
그래서 목욕 시간은 엄마와 함께 해야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하다. 매운 아빠의 손맛에서 부드러운 엄마 손길을 알아버린 첫째는 “엄마랑 씻을래.”라며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한다. 덕분에 가정에서의 내 업무가 하나 더 추가되어 힘들어졌다. 그래도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한동안은 나와 씻었다. 하지만 일주일 넘게 독박육아를 했던 나에 대한 보상으로 남편이 꾀를 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목욕시간에 도입했다. 아빠랑 씻으면 네가 좋아하는 00 줄게.
이렇게 매일 퇴근 시간마다 과자를 사 와서 아이를 꼬셨다. 작전은 대성공. 아빠가 욕실 앞에서 과자를 흔들면 아이는 달려가 옷을 벗으며 “아빠랑 씻을래.”라고 한다.
그런데 어제는 아무리 아빠가 유혹을 해도 엄마와 씻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촉촉한 초코칩을 2개 주겠다고 회유해 보고, 먼저 욕조에 들어가 있는 동생에게 2개 다 주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다음부턴 아예 과자를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아이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유튜브가 있었다. 초코칩보다 그 유튜브 영상의 결말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나는 저녁을 먹고 난 후라 달달한 간식이 당겼다. 게다가 촉촉한 초코칩은 몇 안 되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 중 하나였다. 왠지 아빠가 씻으면 준다고 했는데 내가 줘버리면 아빠의 권위(?)가 살지 않을 것 같아서 나만 몰래 먹기로 했다.
소리가 들릴까 살살 초코칩 봉지를 뜯어서 한입을 딱 베어 무는데, 아이의 얼굴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초코칩보다 유튜브를 선택했지만 그래도 초코칩을 먹고는 싶었나 보다. 몰래 먹다가 걸린 나는 머쓱해서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안 씻어서 아빠가 먹으면 안 된대.”
그리고 이미 내 입속으로 들어간 초코칩을 맛있게 삼켰다. 자신의 초코칩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아이는 다시 유튜브에 집중했다. 나는 속으로 ‘후, 다행이다.’(뭐가 다행인건진 모르겠지만) 안도하며 아이 옆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둘째는 아빠랑 씻고, 첫째는 유튜브를 보고, 아주 잠시나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각자의 할 일을 알아서 하고 있는 그 자유로움과 평화로움 속에서 유튜브를 보던 첫째가 적막을 깨며 내게 말했다.
“그런데 엄마도 안 씻었잖아.”
“... 응?”
유튜브 보다 말고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영상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곧잘 따라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숨겨진 작은 분노와 억울함과 속상함이 섞인 그런 한 마디였다. 그렇다.
나도 초코칩을 너무 먹고 싶지만 아빠랑 안 씻고 유튜브 본다고 해서 못 먹었는데, 엄마는 바로 옆에서 자신을 약 올리는 듯 혼자 초코칩을 먹고 내가 먹고 싶어서 쳐다보니, 너는 씻지 않았으니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아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도 안 씻었는데 왜 저렇게 당당하게 먹는 걸까.
아이의 복잡한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니 너무 귀엽기도 하면서 미안했다.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또한 우리가 아이에게만 규칙을 만들어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일상 속에서 부모로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어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봤다. 엄마로서 무언가를 당당하게 주장하기 이전에(적어도 초코칩을 혼자 몰래 먹기 전에)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의 모습인 것 같다. 엄마아빠는 그렇게 안 하면서 난 왜 해야 돼?라고 되물을 때 할 말이 없으면 그것은 부모의 잘못이다. 오늘도 부족함 투성이인 엄마는 아이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한다.
당당하고 책임감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할게. (혼자만 먹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