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의 역사

귀차니즘이라 쓰고 끈기 부족이라 읽는다.

by 미고

지난주 연재를 빼먹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한 여름에 태어난 나는 겨울만 오면 만사가 귀찮아지는 병이 돋는다.

찬 것에 취약한 몹쓸 내 위장 탓에, 추운 날에는 자주 체하고 두통과 몸살에 시달린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열정도 금방 사그라든다. 눈치 빠른 사람은 내가 연재를 빼먹은 것에 대한 적절한 핑계를 만들고 있는 중이란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하.


내가 두 아들에게 정말 물려주고 싶지 않은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귀차니즘’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무언가 일을 벌이는 것을 잘했다. 하지만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엔 미숙했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시작은 참 잘한다. 하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기존의 것에 금방 지루함을 느끼고 눈을 다른 데로 돌린다. 나에게‘지루함’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귀찮음’이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누구나 어렸을 때는 습득력이 빨라서 뭐든 금방 잘하게 된다. 피아노도 그랬다.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오니 그다음부터는 연습이 귀찮았다. 피아노 학원에서 거짓으로 연습 횟수를 속일 때도 많았고, 피아노 건반에 엎드려 자다가 선생님께 혼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어릴 적 꿈이었던 ‘피아니스트’는 물 건너갔다. 그 외에도 나의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로 포기를 반복했던 일들이 허다했다.


좀 슬픈 이야기인데, 고3 때 나는 내신보다는 모의고사 성적이 좋아서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게 유리했다. 하지만 목표인 학교보다 커트라인이 낮은 학교에 수시 지원을 했고 덜컥 붙었다. 수능날까지 좀 더 공부를 해서 목표한 학교에 다시 도전해 볼 수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정시를 포기하고 대충 대학을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리석고 한심한 선택이었다. (정시를 봤다고 해도 좋은 대학을 갔을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문제는 금방 질리고 금방 귀찮아지고 금방 포기한다는 것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이 고질병은 또 도지고 만다. 광고를 전공했고 졸업과 동시에 종합광고대행사에 취업을 했다. 나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잡일에 그쳤다. 멋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내가 생각했던 일과 많이 달라서 그만뒀다. 그리고 방송작가가 되었다. 교양국에서 오래 일했고 적성에도 맞았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비슷한 글을 쓰다 보니 이 또한 질리기 시작했다. 좀 더 새롭고 재밌는 글을 쓰고 싶어 드라마작가에 도전했다. 하지만 드라마 작가로서의 커리어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지루함이 귀찮음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제일 두렵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늘 흥미로운 일임엔 틀림없다. 매번 똑같은 글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그래서 글 쓰는 일은 늘 새로운 도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려고 할 때 귀차니즘이 가장 자주 찾아온다. (혹시 저 같은 사람 또 있으신가요…?)

영화 한 편만 보고 글 써야지. 오늘은 피곤하니까 내일 써야지. 그럼 반드시 내일도 피곤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미루다 보니 결국 또 밀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 것은 나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안다는 것이다. 분명 또 귀찮아질 걸 사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미리 여기저기 소문을 내는 편이다. 집 근처 필라테스 센터에 주 2~3회 정도 나가서 운동을 하는데, 거기서 신기한 인연을 만났다. 날씨가 추워 운동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난로 앞에 앉아서 다른 회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도 브런치 작가였던 것이다. 신이 나서 그자리에서 서로 구독을 하고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힘들게 구독자 한 명을 얻었는데 연재가 밀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나를 채근하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또 이번엔 내가 사업자 대출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만난 선생님이 있는데 어떻게 내 예전 블로그를 찾으시곤 서로 이웃을 맺었다. 참고로 나는 블로그를 안 한지 정말 백만 년이 되었고, 가끔 강의후기나 올리는 용도로 쓰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선생님이 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다. “이제 새 포스팅을 주세요.” 웃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자극이 되었다. 대단하게 키우진 못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포스팅과 맺어온 이웃들이 아까웠다.


그래 나는 금방 질리고 금방 귀찮아지고 금방 포기하는 인간이지.

하지만 나는 또 금방 다시 시작하고, 도전하는 걸 잘하는 인간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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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매우 오락가락한다.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다가 어느 날은 영상 10도 이상을 웃돌며 따뜻해진다.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비추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나랑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계절은 결국 돌고 돈다. 매일 꾸준히는 못하지만, 금방 질리고 귀찮아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꾸준한 사람이 되자. 그렇게 또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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