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첫 셀프 페인팅 도전기
10대 때 생각했다. 나이 서른이 되면, 돈 많고 능력치 만렙인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서른이 되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면 돈 많고 능력치 만렙인 진짜 어른이 될 수 있겠지…라고.
이제 곧 마흔을 앞두고 생각한다. “I’m still hungry.”
여전히 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다.
처음으로 내 사업을 시작하고 고민이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을까. 공유숙박업 2호점을 준비하며 나는 1호점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인테리어에 신경 썼다. 하지만 작정하고 하면 제일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인테리어다. 내가 계약한 건물은 전체가 숙박업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10명이 넘는 각 호스트가 인테리어 경쟁에 돌입했다. 가구와 소품, 조명에 대부분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페인팅을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품이 많이들 뿐더러 사람을 쓰자니 돈도 많이 든다. 게다가 신축 건물이었기 때문에 딱히 손대지 않아도 깔끔한 우드톤이라 인테리어를 크게 해치지 않았다.
나도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페인팅을 포기했다. 해본 적도 없고, 구청의 실사를 받기까지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계속 페인팅을 한 숙소의 모습이 자꾸 맴돌았다. 내 상상 속 숙소는 너무 예뻤다. 사람들이 내 숙소의 인테리어를 보고 한눈에 반해 숙소를 예약하는 모습, 그렇게 내 통장에 쌓여가는 돈들… 꿈같은 상상 또는 환상에 이끌려 어느새 내 손으로 페인트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하루 만에 배송이 오는 로켓배송 덕분에 망설일 틈도 없이 다음날 내 손엔 붓이 들려있었다.
방 3개, 화장실 1개 총 4개의 문. 페인트가 잘 발리기 위해선 젯소칠로 밑작업을 먼저 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1개의 문을 앞뒤로 칠하는데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손잡이와 경첩, 문틀까지 꼼꼼하게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문을 분해해서 칠했으면 좀 더 쉬웠을 것을… 하지만 문을 분해하려다가 페인트까지 포기해 버렸을 가능성이 더 컸기에 그냥 했다.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힘들고 손가락이 마비되는 느낌이었지만, 아이들 하원시간에 맞춰서 해야 했기에 쉴 틈 없이 달렸다.
다음날 아침, 마치 전날 철인 3종 경기를 하고 온 사람처럼 (해본 적은 없지만…) 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어제의 힘듦은 다 까먹고 드디어 색을 입힐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작업장에 갔다. 본격적인 작업이니만큼 마스킹테이프로 보양작업을 꼼꼼하게 했다. 솔직히 이 작업이 제일 어렵고 시간도 많이 들고 재미도 없었다. 더구나 성격 급한 나에겐 인내심 테스트하는 관문이라고 여겨졌다. 다행히도 보양작업이 끝나고 롤러로 페인팅을 할 때는 속도가 났다. 시원시원하게 발려지는 걸 보니 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흥이 나는 것도 잠시, 또다시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노동요의 약효는 딱 3분이었다. 침묵 속에서 문 4개를 다 바르고 나니 입이 바싹 마르고 영혼이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목표한 작업량을 마치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지하철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책을 꺼내 읽을 힘도, 인스타그램 릴스를 스크롤할 힘도 없었다. 이 짓을 한 번 더 해야 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스스로 벌인 일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어디 가서 ‘저 셀프 페인팅 해봤어요.’라고 아는 척은 할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생각했다. 이 또한 경험이리라. 경험치 레밸업 했다 치자. 스스로를 위안했다.
대망의 셀프 페인팅 마지막 날.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2번째 칠을 할 때는 생각보다 빠르게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마스킹 테이프를 제거할 때의 그 쾌감을 영상으로 담으려고 휴대폰을 세팅했다. 녹화 버튼을 누르고 테이프를 떼는 그 순간…!
“으악…!”
마스킹 테이프가 떨어지면서 함께 붙어있던 벽지도 우지직- 울퉁불퉁 다 찢겨 나갔다.
순간 내가 바위가 된 줄 알았다. 그 자리에 굳은 채로 찢어진 벽지를 바라보며 실소가 터져 나왔다. 누굴 위한 보양작업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보양이고 뭐고 그냥 칠할걸.
연회색에 살짝 줄무늬 패턴이 있던 벽지라 찢어진 자국이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망했다…! 3일을 꼬박 고생했는데 너무 속상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뇌를 각성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순간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벽지를 새로 붙이거나, 젯소를 발라서 가리거나, 페인트를 좀 두껍게 다시 칠하는 것. 셋 중에 가장 쉽고 빠른 건 페인트의 영역을 좀 더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결과는 괜찮았다. 화분도 좀 세워놓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시선을 교란시키면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의 첫 셀프 페인팅 도전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의 성공의 기준은 별거 없다. 중간에 포기만 안 하면 그게 성공이다.
뭐든 처음은 다 어렵다. 부족함과 실수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꽤나 만족스러운 성취감과 자존감, 새로운 도전 정신이 자꾸 생겨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이 없는 30대다. 하지만 계속해서 배우고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얼마 전, 우리 아이가 2리터의 우유(아이가 들기엔 조금 무거웠다)를 작은 컵에 따르다가 왈칵 쏟은 적이 있다. 자신의 실수에 겁을 먹은 아이는 우유를 내게 건네며 ‘엄마가 해’하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아이에게 ‘쏟아도 괜찮으니까 다시 해볼래? 흘린 우유는 닦으면 돼’라며 격려했다. 아이는 다시 용기를 내서 무거운 우유를 컵에 따르기를 시도했고, 결과는 성공했다. 실수를 했다고 포기를 한다면 성공의 경험은 또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하지만 계속 시도하면 어느새 우리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우유를 따르는 아이도, 첫 셀프 페인트에 도전한 나도! 우리는 오늘도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