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정말 사랑하시나요?

글의 격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by 미고

얼마 전, 서점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베스트셀러 매대 앞에서 한 사람이 책을 꺼내어 보고 있었다. 그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손가락에 침을 묻혔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을 꺼내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책들에 타인의 체액이 강제로 새겨지는 순간. 그리고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책을 내려놓고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며 불쾌감이 밀려왔다. 단순히 더러워서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편의만 생각하는 태도에 대한 분노였다. 그에게 책은 잠시 소비하고 버려도 좋은 일회용 도구에 불과해 보였다. 그날 내 머릿속에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흔히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에 함몰될 때가 있다. 얼마나 빨리 쓰는지,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지, 어떤 키워드가 조회수를 높일지에 집착한다. 하지만 진정 생명력을 가진 글은 결코 ‘속도’나 ‘양’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자가 자신의 문장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글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대하는 사람의 문장에는 경외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어는 고민 없이 선택되고, 문장은 유행에 따라 쉽게 소비된다. 껍데기만 화려하고 결코 자신의 속을 드러내지 않는 글에서는 경외심을 느낄 수 없다. 그런 글은 금세 휘발되지만, 쓰는 사람의 진심이 담긴 글은 독자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나는 이제 글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 바라보고자 한다. 내가 통제하고 부려야 할 도구가 아니라, 내가 마땅히 존중해야 할 존엄한 존재로 말이다. 글을 완성하고 나면 반드시 멈춰 서 물어야 한다. 이 문장이 정말로 세상에 나올 자격이 있는지, 나의 경박한 마음이 글의 품위를 해치지는 않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물론 이렇게 묻는다고 해서 완벽한 글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나를 믿고 시간을 내어준 독자와, 내 손끝에서 태어난 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인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글이란 작가의 지문(Fingerprint)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진심을 다해 쓴 글에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무늬가 새겨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도용되어서도 안 되고, 스스로에 의해 남용되어서도 안 되는 유일무이한 표식 말이다.


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새긴 작가의 지문은 깊고 선명하다. 그 깊이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며,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작가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된다. 이것이 바로 ‘글의 격’이다. 격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대하는 창작자의 태도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태도는 곧 글의 해상도를 결정한다. 대충 버무린 글은 흐릿하다. 겉으론 그럴싸해 보여도 확대해 보면 초점이 맞지 않아 피로하게 만든다. 반면 정성스럽게 다뤄진 글은 선명하다. 작가가 글을 존중하는 태도가 글의 해상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독자는 그 과정을 다 알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글은 밀도가 다르다”라는 걸. 그 한 끗 차이가 글에 대한 신뢰를 보장한다.


글은 영민하다. 누가 자신을 침 묻은 손가락처럼 함부로 다루는지, 누가 자신을 귀하게 대하는지,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그리고 글은 오직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어준다.


나 역시 글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글이 나의 지문이라면, 그 지문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세계여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지켜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는 타인의 눈을 사로잡는 기술이 아니다. 글을 대하는 나의 경외심이다.


글의 수준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그 태도는, 글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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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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