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라는 가장 다정한 무기
다른 사람의 글을 보다가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나랑 결이 비슷한데, 나보다 약간 더 웃긴 글을 만났을 때다. "아, 이 사람 누구지?" 나도 모르게 프로필을 타고 들어간다. 부러움을 넘어선 기분 좋은 패배감, 그리고 곧바로 타오르는 승부욕. 나의 가장 뜨거운 질투는 잘 쓴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입꼬리를 기어이 올리게 만드는 재미있는 글 앞에서 터져 나온다.
가끔 내 프로필을 보고, ‘좋은 글 기대할게요’라는 인사를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좋은 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대에 먼저 선을 긋는다.
“저에게 좋은 글을 기대하며 팔로우하신 분들께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의 좋은 글 기준은… '재미'입니다."
농담반 진담 반처럼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내가 추구하는 창작 철학이다.
어린 시절, 내 장래 희망은 명확했다. 사람들을 낄낄거리게 만드는 시트콤 작가.
인생이 매일 시트콤 같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상상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예능국이 아닌 교양국 작가로 방송판에 입성했다.
매일 진지한 정보와 다큐멘터리를 다루면서도 내 시선은 늘 옆 동 건물, '개그콘서트' 연습실로 향했다. 방송국에서 마주치는 예능국 사람들을 나는 은근히 동경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내 눈엔 참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교양국에서도 얼마든지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상대의 긴장을 한순간에 녹이는 농담 한마디를 던졌을 때, 굳어 있던 얼굴이 무장해제되는 찰나. 나는 그때 알았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가장 빠른 열쇠가 '웃음'이라는 것을.
왜 이토록 웃음에 집착할까. 돌아보면 웃음은 내게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집을 떠나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살아갈 때, 나를 깊은 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건 거창한 위로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나누던 실없는 장난, TV 속 바보 같은 이야기들. 그 찰나의 웃음들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직 세상엔 재밌는 게 많아.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봐."
나에게 웃음은 도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가장 아프고 슬픈 순간에서도 웃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웃긴 사람을 질투하는 이유는 그들이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다정한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글의 깊이를 논하고, 누군가는 문장의 미학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재미'를 말하고 싶다. 재미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가장 고도의 지능과 공감 능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상대를 관찰하고, 허를 찌르고, 긴장을 설계해야 터지는 것이 웃음이기 때문이다.
백 번 설득하는 것보다 한 번 웃게 만드는 일이 더 강력하다고 믿는다. 마음이 먼저 열리면 그다음엔 어떤 메시지도 스며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웃음 경쟁자들을 보며 부러움의 칼을 간다. '다음엔 내가 더 웃겨야지.' 이 유치한 다짐은 독자들에 대한 나의 가장 진심 어린 애정 표현이다.
내 글이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 끝에 작은 틈을 만들길 바란다. 경직된 표정 사이로 "피식"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순간을 상상하며 글을 쓴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구덩이 안에 있는 누군가를 내가 서 있는 자리로 1cm쯤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나의 글쓰기는 앞으로도 계속 웃음을 향해 갈 것이다. 그게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