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그만둔다는 마음으로 씁니다

막내작가 시절, 아빠에게 배운 버티는 법

by 미고

나는 좀 뒤늦게 방송 일을 시작했다.

보통 방송작가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막내를 시작한다. 나이가 많으면 잘 뽑아주지도 않는다.

사수보다 나이가 많으면 서로 불편한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스물일곱에 막내가 되었다.

내가 처음 방송작가 일을 시작한 곳은 한 방송제작사였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거장, 그 작가님이 제작사 대표였다.

나이는 많았지만, 다른 어린 막내들보다 풍부한 사회 경험과 근성을 대표님이 좋게 봐주신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막내였지만 사실상 서브작가 급의 업무부터 시작했다.
(막내–서브–메인작가로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대표님의 직속 작가로서 거의 모든 일을 혼자 했다.


대표는 방송 기획안과 제안서를 쓰는 일을 했다. 프로그램을 따내는 것이 그의 주 업무였다.

방송이 확정되면 메인작가를 구했고, 나는 그 메인작가와 피디가 하는 일들을 전부 서포트했다.


그런데 메인작가님은 상주하지 않았다. 다른 방송도 여러 개 맡고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사무실에 늘 있는 사람은 나였다. 결국 대표님과 메인작가를 보조하는 대부분의 일이 내 몫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다큐멘터리 출연자를 섭외해야 할 때면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해야 했는데 막내인 내가 혼자 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문서 수발은 기본이다. 새벽부터 논문 여러 편을 정리해 메인작가 집까지 가져다준 적도 있다.

새벽에 피디에게 전화가 오면 자료를 찾아 설명해야 했다.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진행 내용과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모두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24시간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방송작가의 모습과 현실의 괴리가 점점 커졌다.

말 그대로 현타가 온 것이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 혼자 남아 모니터 불빛만 켜둔 채 일을 하다가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아빠에게 문자도 잘하지 않는 무뚝뚝한 큰딸이 늦은 밤 전화를 걸었다.


항상 똑 부러지고 강한 모습만 보여줬던 큰딸이 갑자기 펑펑 울며 전화를 할 줄은 아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송작가가 되어서 멋지게 일하고 있을 줄만 알았지, 혼자 속을 끙끙 앓고 있을 줄은 아빠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나는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수십 년을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아빠는 잠시 듣고 있다가 짧게 대답했다.


“내일 그만둔다고 생각해라.
너무 힘들면 안 해도 돼.”


이상하게도 그 말이 힘이 되었다. 어쩐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만둬도 된다는 말이 어떤 것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켰다.

억지로 버티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남아 있는 느낌이랄까.

‘해야 해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기로 선택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일이 너무 힘들 때면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내일 안 해도 된다, 오늘까지만 해보자.

힘들면 그만두자, 이것까지만 해보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면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종종 이걸 평생 해야 한다고,
성공해야 한다고,
반응을 얻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그래서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번 글이 마지막이어도 괜찮다.”
“내일 안 써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이 조금 더 솔직해진다.


버티는 힘은 의무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만둘 수 있는 자유에서 나온다.


스물일곱의 막내작가였던 나는 아빠의 그 한 마디 덕분에 버티는 법을 배웠다.

또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배웠다.


"내일 그만둔다고 생각해라."

아빠의 위로가 나를 여전히, 계속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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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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