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이 멋진 글이 되는 순간

오직 내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하여

by 미고

꽤 유명한 사진작가에게 방송 포스터 촬영을 맡긴 적이 있다.

실력도 있고 명성도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그런데 컨셉과 완성된 결과물을 보고 조금 놀랐다.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진이 한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때의 나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갔다.

포스터는 꽤 멋있었고, 또 유명 작가의 결과물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말이 오마주이지, 그냥 따라 한 것은 아닐까.

그 일을 떠올리며 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의 세계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면 세상에는 질투가 날 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문장은 너무 완벽해서 슬쩍 내 노트에 옮겨 적어 두고 평생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멋진 글을 쓰고 싶은 작가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멋진 문장을 보면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래서 표절 문제는 끊임없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는 것과 그 문장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멋진 글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글일까.
누구나 잘 썼다고 인정하는 글일까.
아니면 화려한 표현과 세련된 묘사가 가득한 글일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글을 엄청나게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장을 세련되게 꾸미는 능력도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 대신 나는 다른 곳에서 나의 강점을 찾는다.

나는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다.


카페에서 옆 테이블의 대화를 흘려듣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분명 할 말이 있는데 끝까지 하지 못하고 참는 순간,
어떤 사람이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는 순간 같은 것들.

전후 상황에서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어났는지 관찰하고 상상한다.


그런 장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보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런 장면들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메모를 해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비슷한 감정을 글로 옮길 일이 있을 때 그 기록들을 다시 꺼내본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의 재료는 대단한 표현이나 화려한 문장이 아니다.

내가 본 사람들, 그리고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이다.

누군가는 더 세련된 표현을 사용할 수도 있다.
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은 감정이라면 그 문장은 결국 내 것이 아니다.

남의 표현을 빌려오는 순간 그 글은 어딘가 들떠 있고 어색해진다.

반대로 투박하고 서툰 문장이라도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문장은 더 애정이 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투박하고 멋이 없어 보여도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진짜다.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나만의 시간과 경험으로 완성된 문장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멋진 글이란 화려한 표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세계를 정직하게 써 내려가는 데서 비로소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의 것을 훔쳐 만든 아름다운 글보다 내가 보고 겪어 알게 된 것들로 채운 글이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나는 그런 글을 ‘알음다운 글’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의 생각을 빌려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다.

내가 직접 알아차리고(알음) 내가 직접 체험한 시간에서 나온 문장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관찰을 한다.


멋있는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라면 그 문장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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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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