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가져야 할 두 가지 태도
그나는 작가도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이 언뜻 거창해 보이지만, 본질은 명확하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작은 아씨들>을 정주행 했다.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내려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중 막내 인혜는 예고에 다닌다. 특출난 그림 실력을 가졌지만, 부잣집 친구의 대작을 해주는 기묘한 우정을 이어간다. 한편, 그 부잣집 소녀 효린은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 밑에서 약을 먹으며 고통을 견딘다.
자신의 부모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진실을 마주한 효린에게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결국 두 소녀는 모든 기득권과 안락함을 뒤로한 채 배낭 하나만 메고 외국으로 떠난다. 그때 효린이 엄마에게 남긴 편지 한 구절이 인상 깊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그렇게 살아보려 해요. 예술가가 되어서요."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왜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일이어야 할까.
그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내리는 비를 거부하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
그것은 곧 '수용성'을 의미한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시련을 우산 없이 받아내는 용기다. 그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슬픔, 때로는 찰나의 기쁨까지도 자기 안에서 정제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굳은 다짐인 것이다.
작가들은 흔히 '섬세한 안테나'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세상을 향한 감각이 남들보다 예민하고 민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외부의 자극이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그것이 내 안의 파동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타인의 마음을 울리는 글은 태어날 수 없다. 온몸이 젖어드는 축축함을 느껴본 사람만이 비의 온도를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법이다.
결국 예술가는 수용성과 민감성, 이 두 가지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존재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가끔은 우산을 접어보자. 옷이 젖어 몸에 감기는 찝찝함 뒤에는, 경계가 허물어질 때 느낄 수 있는 시원한 해방감도 있다.
그리고 비가 그친 뒤 더 선명해진 세상의 풍경을
나만의 시선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