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에게라도 닿을 수 있다면
코르크 마개로 꾹 닫은 유리병 하나. 그 안에 정성스레 적은 편지를 넣고 넓은 바다로 던지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 있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그런 일이다. 받는 사람의 이름도, 닿아야 할 주소도 적혀 있지 않은 편지를 '언젠가 닿겠지'라는 믿음 하나로 세상에 내보내는 일. 그게 바로 내가 매일 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관찰한 세상의 기록들을 담아 수신인 불명의 고백을 디지털의 바다로 조용히 던진다. 어쩌면 글쓰기는 가장 먼 곳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가장 내밀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서 나는 늘 스스로에게 한 가지를 묻는다. "이 글에 내 진심이 온전히 담겼는가?" 그걸 말해주는 건 조회수나 댓글의 수가 아니다. 오직 내 마음에만 집중한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치열하게 구성을 짜던 시절에도,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밤을 지새우던 시간에도 결국 글이 끝난 뒤 내 마음이 가장 평온했던 순간은 대중의 반응이 쏟아졌을 때가 아니다. 내 진심이 단 한 문장도 왜곡되지 않고 이야기 안에 녹아있다고 느껴질 때였다. 그 짜릿한 확신이야말로 내가 계속 쓰는 이유이자, 기록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최고의 희열이라고 생각한다.
조회수는 디지털 바다의 수온 같은 것이다. 수온이 낮다고 해서 그 바다에 생명이 없는 것은 아니듯, 숫자가 적다고 해서 내 진심의 온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차가운 수온 속에서도 심해어는 자신만의 속도로 헤엄치듯, 낮은 조회수 속에서도 누군가의 영혼을 깨울 문장은 깊은 곳으로 침잠하며 제 주인을 찾아간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내 손을 떠난 글은 파도를 타고 유영하기 시작한다. 어떤 글은 금방 누군가의 해변에 닿기도 하고, 어떤 글은 아주 오랫동안 먼바다를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진심이 담긴 글은 반드시 닿아야 할 곳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 '사소한 기록'들이 언젠가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배달될 것이라 믿는다. 인생의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부는 지루한 시간을 지날 때, 혹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며 위로가 필요한 어느 날 밤. 우연히 파도에 밀려온 제 유리병을 발견하고, 그 안의 편지를 읽으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라고 안도할 단 한 사람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있기에 오늘도 멈추지 않고 쓴다.
기록하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다에 자신만의 편지를 띄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닿을지 모르면서도 써야 하고, 읽힐지 모르면서도 진심을 담아야 하며, 이해받을지 모르면서도 가장 나다운 것을 꺼내 놓아야 한다. 이것이 쓰는 사람의 숙명이자 축복이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유리병 하나를 준비한다. 평범하지만 솔직하고, 가장 '나다운' 것들을 가득 채워서. 오늘 띄운 편지는 지금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서로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 그 '알음다운' 순간에, 우리의 유리병들이 어느 낯선 해변에서 반갑게 교차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