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이 아니라, 글이 문제였어

누구를 위한 글을 써야 하는가

by 미고



한때는 내가 성인 난독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나 유명 작가의 책을 펼쳐도 다음 장으로 책장을 넘기는 일이 고역이었다.

책을 읽으면 자꾸 딴생각이 들고, 글자를 읽고 있지만 내용이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니 책은 책장을 장식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왜 이렇게 책을 못 읽을까.’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집어 든 소설을 읽다가 밤을 꼴딱 새웠다.

그 책은 바로 <해리포터>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문장이 기대가 되고, 또 그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을 때는 초조했고, 뒷장이 두둑이 남아있을 때는 괜히 마음이 든든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난독증이 아니었다.

그동안 재미없는 책을 읽고 있었을 뿐이었다.

독자로서의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동안 나에게 재미없는 글을 억지로 밀어 넣고 있었을 뿐, 내 뇌는 본능적으로 불필요한 정보와 매력 없는 서사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경험은 나에게 작가로서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사람들은 어떤 글은 끝까지 읽지 못하고, 어떤 글은 밤을 새워가며 읽을까.


그에 대한 마땅한 답을 생각하고 나니, 창작자인 나에게 조금 서늘한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쓴 글이 대중에게 읽히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재미없기 때문일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작가가 되면 흔히 이런 고민을 한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대중적으로 읽힐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점점 '모두를 위한 글'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곧 함정임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독자를 넓게 잡을수록 문장은 무난해지고, 이야기는 안전해지고, 글은 점점 재미없어진다.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을 만들려다 보면 결국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글이 된다.


생각해 보면 <해리포터>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켰기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판타지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길고 복잡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은 이유는 단순하다.

어떤 독자에게는 밤을 새울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취향의 호불호는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색깔이 분명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써야 할까.

나는 이 질문의 답이 의외로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말했다.

“관객의 호응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럴 바엔 소신껏 하자는 거죠.
본인을 만족시키려고 한번 애써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독자 한 명을 먼저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 보라는 얘기다.

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읽어도 재미있는가.
내가 쓴 문장이 나에게도 설레는가.
내가 다음 문장을 궁금해하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면 독자에게도 그 글은 매력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 사람들의 취향을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기준은 분명하다.


글쓰기는 결국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글을 쓰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글이 된다.


대신 나와 결이 맞는 단 한 사람을 밤을 새우게 만드는 글.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난독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알음다운 글쓰기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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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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