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쓰면 안 되는 이야기

당신의 감정은 충분히 소화가 되었나요?

by 미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괜히 망설여진 적 있지 않나.

이 이야기를 과연 꺼내도 되는지,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봤을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야만 하는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배운 게 있다.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아직 쓰면 안 되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 어떤 원고는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따뜻해졌고, 어떤 원고는 뭔가 날이 서 있었다. 덜 익은 과일 같은 느낌. 먹을 수는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

과연 그 차이가 뭘까 깊이 생각해 봤다.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가장 강하게 오는 순간이 있다. 바로 감정이 폭발할 때다. 억울할 때, 서러울 때, 아무도 내 편이 없는 것 같을 때. 그때 우리는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때 쓴 글은, 나중에 다시 읽으면 낯설다. 글 안에 날이 서 있고, 억울함이 배어 있고, 읽는 사람이 불편해진다. 감정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은 독자에게 닿기 전에 쓴 사람의 상처를 먼저 보여준다.

그런 감정은 꼭 써야 한다. 다만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써야 한다.


일기는 나를 위한 글이다. 정제하지 않아도 되고, 못생겨도 되고, 누군가를 미워해도 된다. 오히려 그래야 한다. 쏟아내고, 뱉어내고, 바닥까지 긁어내야 한다. 그게 일기의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 꺼내는 글은 다르다.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니까. 내 감정이 독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꺼내기 전에 한 번은 물어봐야 한다. 이 감정을 나는 지금 바라볼 수 있는가. 불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불을 끄고 연기를 바라볼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다.


또 하나. 쓰고 싶은 이야기 중에는 누군가를 향한 이야기가 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나를 무시한 사람. 그 사람이 배경에 깔린 채로 쓰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런 글은 쓰고 나도 이상하게 후련하지 않다. 그 글의 목적이 독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움이 글 전체에 스며든 이야기는 독자가 고스란히 느낀다. 읽고 나면 어딘가 씁쓸해진다.


그 마음도 일기에 먼저 써라. 미워하고, 원망하고, 다 쏟아내라. 그러다 어느 날, 그 사람이 그저 또 다른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그때 꺼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이야기를 쓰려면 그 안에 다른 사람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이름을 바꾸고 상황을 각색해도 당사자는 안다. 내 진실이 세상에 나왔을 때, 선량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면 멈춰야 한다.


내 안에서 해결이 된 감정, 충분히 소화된 이야기만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

일기에 쓰고, 시간을 두고 다시 읽고, 그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때. 그때 꺼낸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에 닿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글은 독자를 위로하고, 또 그 위로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감정은 아직 내 안에서 뜨겁게 타고 있는가. 이 글 안에 미움이 숨어 있는가. 이 이야기로 인해 누군가 다칠 수 있는가.


셋 중 하나라도 그렇다면, 오늘은 일기장에 쓰자. 거기서 충분히 씹고 소화하자.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충분히 익은 이야기는,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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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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