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숙한 세일즈>를 보며 드는 생각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90년대 한 시골마을에서 성인용품 방문 판매에 뛰어든 여자들의 이야기다.
극 중 주인공은 한정숙(김소연 분), 왕년에 미인대회 출신에 공부도 잘해, 성격도 착하다.
한편 불같은 성격의 남편은 주먹질을 하다 회사에서 잘리고, 심지어 그녀의 절친과 바람이 난다.
가난한 살림에 어린 자식을 키우기 위해 정숙은 성인용품 판매업에 뛰어들고, 친정어머니와 갈등이 벌어진다. 극 중 친정 엄마는 딸 정숙에게 다음과 같은 모진 말을 내뱉는다.
출처: Jtbc홈페이지
“내가 하지 말랬지. 싫다고. 드럽다고.
딴 사람이면 몰라도 내 딸이 그런 천박한 물건 팔고 다닌다는 거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려.”
“엄마….”
“돈에 눈이 뒤집혀도 유분수지.
그렇게 돈 벌어서 너네한테 남는 게 뭐여.
애미면 애미답게 행동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짧은 장면이었지만 내 가슴속에 큰 울림이 있었던 장면이다.
애지중지 곱게 키운 딸이 남편에게 상처받고, 성인용품을 팔러 다니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 엄마의 가슴이 찢어지지 않겠는가. 한편, 수치심과 동네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꿋꿋이 물건을 팔러 다니는 정숙의 모성도 너무 공감이 간다.
하지만 엄마가 딸에게 내뱉었던 마지막 말은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한다.
애미면 애미답게 행동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도대체 엄마다운 것이 무엇일까? 과연 부끄러운 엄마란 무엇일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새 책가방 사줄 돈도 없이 어려운 상황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잘리고, 월세는 밀리고,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경리로 취업을 시도해 봤지만 아가씨만 뽑는단다.
남의 집 파출부를 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그 돈만으로 생계를 꾸려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만 했을 것이다. 정말 책임 있는 엄마라면 말이다.
물론 나쁜 짓만 빼고.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직업에 귀천이 없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도 다양해졌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떳떳하게 말해도 속물처럼 보이지 않는 시대다.
오히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또 그들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숙은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좋은 시대에 태어난 나는 어떠한가.
배울 수 있는 공짜 정보들은 넘쳐나고 돈을 주면 정말 좋은 강의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한 때 나도 다시 예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혀 막막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해봤던 것에만 매달려서 그걸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혔었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육아를 하느라, 아들 둘 키우느라 남는 체력이 없어서 등등…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는 갖가지 이유와 핑계들이 넘쳐났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점점 못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전업주부로 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엄마들도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살림과 육아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잘 해내는 사람들은 분명 그 안에서 노력하고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림과 육아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좀처럼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런 마음들이 쌓이며 우울감이 들기 시작했다. 매일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아이 앞에서 한숨만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둘째를 임신했다. 언제 크나 싶었던 첫째 아이가 알아들을 만한 단어를 말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대화 상대가 너무나 그리웠던 나에게 희망이 생겼다. 아이가 빨리 말을 해서 나랑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 내가 가르쳐 주는 말을 따라 하고, 반응하고 드디어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뿐 아니라 양말을 혼자 벗고, 계단을 오르고, 생일케이크 촛불을 불고. 정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뿌듯했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문득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아이가 저만큼 성장했을 때, 나는 그대로면 어쩌지.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은 부모라던데, 더 이상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내 모습을 아이들에게 들킬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성장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