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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Oct 30. 2022

Are you a scientist?

 입국 목적에 대한 내 대답에 심사관이 되물었다. Are you a scientist? 물어야 해서 물었겠지만 답은 예상 가능한 몇 가지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여행이나 출장, 혹은 친지 방문, 유학 등등. 마침 LA에 대형 K-pop 공연이 있어 함께 타고 온 비행기엔 가수도 있는 것 같았고 K-pop 팬들도 있었으니 공연을 보러 온 팬으로 예상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나는 짐작할 수 없지만 직업상 일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다른 여러 입국 목적을 그는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내 대답은 좀 의외였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도 99년 만에 대륙을 관통하는 개기일식이라고 했다. 입국심사를 업으로 삼는 동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한국에서 LA까지는 직항으로도 13시간이 넘게 걸렸다. 13시간이 넘는 비행시간과 그 비행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개기일식을 보러 왔다고 하니 입국심사관으로서도 생소한 일이었을 거다. 그 비행기에는 나 같은 사람이 약 200명 정도가 있었다. 나는 그저 입국심사를 빨리 통과하고 싶어 재게 움직인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저 여행이라고 답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답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방문의 목적은 일식이었다. 그냥 일식이 아니라 ‘total'이 붙는 개기일식.

 '약'이라는 것은 편리한 개념인데, 나는 과학자냐는 질문에 지금 여기 나처럼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200명 더 있다고 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함께 온 사람들이 100명이었나? 200명이었던가? 그런데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될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온다고 표시되어 있던 거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그런데 스텝들은 모집 인원에 포함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은 몇 명이지? 같은 온갖 쓸데없고 잡다한 생각들이 몰아쳤다. 그저 '약'만 붙이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 편리함을 이용하지 못하고 고작 No, I'm not. 한 마디만 하고 말았다. 틀려도 되는 것들에 정확성을 기하고 정작 정확해야 하는 것들에 허술하다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만간이 조년에서 만년이라던 천문학의 스케일이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물리학의 정확성에 매몰되고 말았다. 일식을 보러 입국한 사람이 생소하듯 나 역시 과학자냐는 질문은 생전 처음 들었는데 나는 물론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일식을 보러 한국에서 미국에 갔다. 갑자기 비가 오거나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못 보고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달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장면을 보러.

 2017년 봄 무렵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일식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단숨에 매혹될 만큼 설레는 기획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머뭇거리게 될 이유도 많았다. 우선 처음 기획을 들었던 봄을 기준으로 불과 몇 달 전에 한 달짜리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터였다. 5년 근속으로 받은 유급휴가를 모조리 여행으로 쓴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일주일이 넘는 해외여행을, 그것도 멀고 비싼 나라로 간다는 것은 내 생활 대비 좀 과했다. 같은 이유로 일식이 일어난다는 장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씩 해외여행을 다닌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아직 못 가본 나라가 많았고 앞으로 몇 개의 나라를 더 가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미국은, 서부는 가본 적 없다 해도 총 1년 2개월을 체류했던 국가였다. 한국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고 일상도 여행도 조금씩은 맛보았던 곳이었다. 한동안 해외여행지로 선택할 나라는 아니었다. 여행 스타일도 맞지 않았는데 혼자 하는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단체 여행이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 저런 이유를 대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가 말했다. 야 너 가. 너 지금 눈 되게 반짝여.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눈이 반짝인다는데. 실은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이밀며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했대도 그렇지만으로 시작하는 또 다른 이유를 들며 결국 나는 내가 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성과 결을 달리하는 설렘에 이미 너무 매혹되어 있었다. 눈이 반짝이니 가야한다던 말은 지금까지도 참 좋아하는 말인데 무언가를 해야 함에 있어 그보다 좋은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일식은 2017년 8월 21일이었다. 우리는 '천조국 과학일식 유흥단'이라는 이름 하에 유흥을 즐겼는데 과학 팟캐스트에서 기획한 것인 만큼 우주왕복선 엔데버호가 전시되어 있는 LA 사이언스 센터,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자리를 볼 수 있는 베링거 운석공, 영화 라라랜드로 유명한 그리니치 천문대 등 과학과 관련된 곳이 주 유흥지였다. 그리고 근처에 갔다면 빼놓을 수 없는 그랜드캐니언과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들렀다. 근처는 근처가 아니었는데 우리가 내린 LA 공항에서 일식을 보기로 한 Beck-Kiwanis Park까지는 구글맵으로 가장 빠른 경로도 1,364Km, 차로 13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일식을 관측하기에도 좋고 몰려든 인파에 휩쓸릴 위험도 적었던 공원은 한적함만큼이나 주변에 관광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단 경로가 아닌 이곳저곳을 둘러왔다. 되돌아보면 일정의 상당 부분이 이동이었는데 좀이 쑤시거나 화장실 곤란을 이유로 혈중 카페인 농도를 강제로 낮춰야 했던 일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새로 알게 된 인연과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의 분위기나 차창 밖 무지개를 오래 보던 기분은 그렇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일정 중에 보편적인 유흥이라 할 수 있던 것은 카지노에 간 것이었는데 카지노 방문이 여행 일정은 아니었고 어느 날의 숙소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호텔이었다. 당연히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엔 카지노가 있었다. 카지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방법을 아는 게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딜러가 있는 곳엔 가본 적도 없었고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는 기분으로다 버튼을 누르는 기계 앞에서 언제 눌러야 하는지도 모를 버튼을 아무렇게나 누르곤 했었다. 그럼에도 도박에 대한 확고한 규칙은 있는데, 내게 매해 20불의 도박 자금만 허락하는 것이었다. 2017년 들어 카지노는 처음이었기에 스스로 허락한 20불을 들고 당당히 딜러가 있는 테이블로 갔다. 함께 방을 쓰는 언니가 룰을 아는 게임의 테이블이었다. 카지노의 모든 게임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결국은 세상 모든 게임이 그렇겠지만 결과적으론 확률 게임을 했다. 1/2, 1/3 그리고 더 낮은 확률에 베팅을 하는 게임이었다. 베팅 금액이 클수록, 낮은 확률에 베팅할수록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달콤하기에 호기롭게 내 전부를 1/2의 확률에 걸었다. 달콤한 보상보단 적당한 확률을 택했다. 그러나 모두를 걸었다. 일종의 절충안 같은 거였다. 단 한 번의 게임으로 끝이 날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그것 역시 반반의 확률이었다. 첫판을 이겼다. 이김에 대한 보상으로 20불의 가치를 지녔던 칩이 30불의 가치가 되어 돌아왔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지키고 싶은 마음도 커지는 것일까? 전부를 다 걸었던 호기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다시 20불만을 1/2 확률에 걸었다. 이번 판에서 진다면 처음에 시작했던 20불이 10불로 줄어들게 되겠지만 어쩐지 20불은 즐거움에 대한 소비 같았고 10불은 승리에 대한 전리품이 될 것 같았다. 져도 좋은, 정서적으론 잃을 게 없는 승부. 나는 또 이겼다. 그리고 다시 20불을 1/2 확률에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겼다. 20불은 50불이 되어있었고 거기서 멈췄다. 1/2 확률에서 세 번 연속 이길 확률은 1/8로 어쩐지 가능할 것 같았지만 1/16로 훌쩍 뛰는 다음의 가능성은 어쩐지 급진적인 것 같았다. 그렇다. 나는 일식을 보러 온 사람이었다. 입국 심사관은 내게 과학자냐고 묻지 않았던가! 확률은 직선이 아닌 포물선 반쪽의 형태로 낮아지고 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확률은 낮은 쪽으로 가속해 갈 것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내 생이 가질 수 있는 운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카지노 따위에 할애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에 정해진 운의 양 같은 건 하나도 과학적이지 않지만 뭐 어떤가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일식을 보러 간 것이었다. 일식은 오리건주 온타리오에 있는 벡-키와니스 공원에서 보았다. 몹시도 크고 한적한 공원이었는데 시야 내에서는 거의가 한국인이었고 더러 외국인이 보였다. 사람들이 이토록이나 개기일식에 대해 관심이 없었나 싶었지만 이후 언론에서 본 주요 일식 관측지들엔 우리가 있던 곳과 달리 사람들로 빼곡했다.

 달이 해를 가리는 건 천천히 진행되었는데 일식이 해를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 되기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였는지 달의 움직임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관측용 안경을 쓰고 볼 때마다 분명 아까와는 달리 해가 더 많이 가려져 있었지만 보고 있다고 해서 움직임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면 움직임이 느껴졌을지 모르겠으나 관측용 안경을 썼다 해도 해를 오래 바라보고 있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그저 ‘아까보다 더 많이 먹어들어갔네’ 같은 말들만 나도 하고, 저쪽 사람들도 하고, 또 이쪽 사람들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잠시 안경을 쓰고 해를 바라보다 더 오래 안경을 벗고 일식의 분위기를 즐겼다.

 달이 해를 얼마나 가렸는지는 해를 바라보지 않고도 확인할 방법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구멍 뚫린 비스킷을 들고 그림자를 지켜보면 됐다. 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비스킷 속 구멍의 그림자는 해처럼 동그랗지 않고 달에 가린 해 모양이 된다. 그렇지만 반사 망원경으로 보듯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9개의 구멍이 있는 비스킷의 그림자에는 9개의 초승해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작은 구멍만 있으면 되고 개기일식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해서 나는 종이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것이 다 있었다. 가방에 달아두었던 배지의 핀이 있었고 읽을까 싶어 가져갔던 책이 있었다. 적당히 도톰한 붉은 내지가 있던 책은 커드 보니것의 제5도살장이었고, 멀쩡한 책의 내지를 뜯어내고 구멍을 뚫는 동안 속으로 ‘뭐 그런 거지’를 자주 되뇌었다.

 찾아낸 다른 방법도 있었는데, 해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불청객처럼 찍혀있던 하늘색 점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나타나있던 하늘색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둥글게 패어 갔다. 그것은 안경을 쓰고 본 태양의 모습과 패인 정도가 같았다. 비스킷 그림자처럼 위아래가 뒤집힌 채로. 우리는 그 하늘색 점을 팔목에 오게 하고, 목걸이처럼 걸어도 보고, 나무에도 걸어봤다. 개기일식 관측이 처음이지 않았던 분도 그런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건 처음 봤다 하셨대서 좀 뿌듯했으나 아마도 그날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을 찾아내 즐겼을 것이었다. 그날의 개기일식은 유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대축제 같은 것이었다.

 태양을 가리는 달의 움직임을 내도록 영 느낄 수 없던 건 아니었다. 가느다랗게 남아있던 태양의 가장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기 직전, 그제야 달의 움직임을 감각할 수 있었다. 다섯시에서 아홉시 사이 정도의 길이이던 태양의 가장자리가 빠르게 여섯시에서 여덟시 사이로 줄어들었고 점점 더 줄어들었다. 줄어드는 원호의 길이만큼 달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맹렬했다.

 그렇게 태양이 사라졌다.

 세상은 온통 암흑이 되었다.

 관측용 안경 때문이었다. 관측용 안경을 벗고 태양이 있던 지점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있고 그 앞에 달이 버티고 있을 지점. 그 지점에 코로나가 보였다(태양의 코로나이다. 지긋지긋한 그 코로나19가 아니다). 코로나가 밝았다. 나는 다시 관측용 안경을 썼다. 코로나가 밝아서 안경을 썼다. 완전한 개기일식의 순간이 아닌 것만 같아 내가 무언가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관측용 안경을 썼다. 세상은 암흑이었다. 그러니까 태양은 다 가려진 것이었다. 안경을 다시 벗었다. 그 밝은 것이 말로만 듣던 코로나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사위는 초저녁보다 조금 더 어두웠고 예상했던 것만큼 캄캄하지 않았다(조도에 따라 자동으로 켜지는 가로등 때문에 더욱 덜 어두웠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별을 볼 수 있을까? 잠깐 둘러봤지만 다시 코로나를 응시했다. 별은 위치를 알아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이 넓어 시선이 길을 잃었다. 무엇보다 강렬한 코로나의 모습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식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일식을 불운의 경고장으로 여기던 시절, 사람들은 태양이 가려진 하늘을 보며 두려움에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나도 소리를 질렀다. 400배 먼 태양을 400배 작은 달이 가리는 현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점점 멀어지는 달 때문에 5~6억 년 후에는 태양의 테두리가 보이는 금환일식만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러니까 그들처럼 일식을 불운의 예언으로 여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완전히 가려져있던 2분여 간 자꾸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은 분명 환호성은 아니었다. 경외심. 압도적인 광경에 대해 보일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었다. 저쪽 사람들, 이쪽 사람들도 그래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천체가 천체의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천체는 3차원의 공간에 있고 가려지는 것은 2차원의 감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3차원의 좌표가 일치하여 충돌도 하는데 관측자의 입장에서 가려지는 일이야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개기일식은 1년 6개월에서 2년에 한 번 정도는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망망대해나 높은 산같이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곳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없는 현상이라지만.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동물들도 곤충들도 이상행동을 보인다고 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생경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태양이 가려지는 면적에 비례해 어두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낮이었고 넓고 평평한 공원이었기에 햇살이 따가웠다. 어둠은 마지막 순간에 급속도로 찾아왔다. 뜨겁게 달궈져 있던 비닐 재질의 돗자리가 빠르게 식었다. 마치 해 질 녁을 타임랩스로 찍은 것 같았다.

 개기일식을 본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실은 많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경외의 감정은 선명하지만 장면은 어느덧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의외로 해가 다시 나타나던 순간이었다. 2분여간 해를 완전히 가리던 달이 물러나기 시작하자 빛이 달의 테두리를 감싸고 지구로 쏟아져 내렸다. 빛이 '쨍'하는 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쨍'하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우주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이 맹렬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일식을 본 후엔 종종 '다이아 반지를 살까?'하는 실없는 농담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 '쨍'하던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다이아몬드 링이라 부른다고 했고 빛은 다이아보다 아름다웠다. 금세 맨눈으로 관측할 수 없는 아주 잠깐의 찰나를 간직하고 싶어 다이아 반지를 일식의 기념품으로 가져야 하나 했지만 어떤 다이아도 그 모습을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돌아온 후 개기일식은 한동안 내게 빛의 속도가 되어주었다. 마음이 부대낄 때면 나는 눈을 감고 일식의 순간을 떠올렸다. 붉은 원호가 점점 줄어들다 완전한 일식이 일어나고 다시 빛이 쏟아지던 순간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 광경은 내게 빛의 속도만큼이나 절대적이었는데 어떠한 희로애락 속에 있다 해도 모든 것이 사라지고 경외만이 차올랐다. 기분이 아무리 앞으로 달리고 뒤로 달리고 빠르고 느리고 해도 일식의 장면은 그런 시공간과는 무관하다는 듯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 경외로 날 이끌었다.

 그리고 태양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별이 되었다.

           그날의 놀이                                                                그리고 어느 부분일식 날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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