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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탐정 김바다 Oct 07. 2024

도시 속의 자연 관찰자

11. 수세미,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노랑은 힘이 넓게 퍼져나가는 것 같다. 노랑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수세미꽃을 볼 때의 내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식물의 수꽃들은 암꽃보다 먼저 세상에 나와 벌 나비를 불러 모은다. 수꽃을 찾아 벌 나비가 날아드는 걸 보고 나오는지 여러 수꽃이 환영을 해주면 그제야 암꽃을 살며시 피운다. 



수세미 수꽃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꽃의 법칙에 따르듯이 수꽃을 여나므게 피운 뒤, 암꽃의 꽃잎을 활짝 펼친다. 수가 많은 수꽃들은 저녁이 되면 가장자리 꽃잎을 살짝 오므리고 땅으로 떨어진다.  

수꽃들은 꽃이 핀지 하루가 지나면 탐스런 꽃을 바닥으로 툭툭 떨어뜨렸다. 땅심도 좋아서인지 꽃송이도 크고 아직 싱싱한 꽃이라 그냥 시드는 게 아까워서 책상 위에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또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실로 꿰어서 화관을 만들어 쓰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노란꽃 색깔이 순수 그 자체로 선명하고 노래서 혼자 좋아하다가 페북에 사진을 올리곤 했다.    


   

양재동에 살 때 옥상에 화단이 있어서 수세미를 심게 되었다. 씨앗은 한림출판사에서 나온 『내가 키운 채소는 맛있어!』로 도서관과 학교로 강연을 다닐 때 참석한 어린이에게 나눠주었던 씨앗이다. 

수원에 살 때 화분에 씨앗을 심어 싹을 틔우고 양재로 이사 가서 세 포기를 옮겨 심은 게 시작이었다. 화단 흙의 높이가 높아서인지 7월 초에 늦게 옮겨 심은 편인데 수세미 줄기가 마구마구 뻗어 나갔다. 


마침 알루미늄으로 높이 받침대가 만들어져 있어서 노끈으로 수세미들이 줄기를 잘 뻗을 수 있게 줄을 매어 주었다. 수세미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수세미도 주렁주렁 달렸다. 난 단지 수세미들이 목말라할 때 물을 준 것 뿐인데 쑥쑥 잘 자랐다. 내 키도 저렇게 자랐다면 지금쯤 기다란 다리를 쭉쭉 뻗으며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수세미는 처음에는 만지면 말랑말랑해서 누르면 푹 들어가다가 딱딱해져서 눌러도 반응이 없다. 수세미 속에서 씨앗들이 영글어가고 섬유질이 탄력을 더해가면 다시 몸통 전체가 말랑해지고 색깔도 누렇게 변해간다. 이때쯤이면 수세미를 딸 때가 된 것이다.     



여름에 비가 자주 오고 많이 와서인지 수세미가 까뭇까뭇해지고, 그 부분을 자르면 썩어가고 있어서 처음으로 수세미를 따서 큰 냄비에 물을 낳고 삶았다. 전에는 햇볕에 말려서 껍질을 벗긴다. 커다란 수세미를 넣으려면 아주 큰 곰솥이 필요하다. 안 끄던 곰솥에 수세미 10개를 넣고 삶는데 어느 정도 삶다가 디집어주고 또 삶았다. 30분쯤 삶은 것 같은데 수세미 껍질이 벗겨지고 물렁해져서 건져서 찬물에 식히면서 껍질을 벗긴다. 마지막으로 이 수세미를 햇빛에 말려서 말리면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수세미로 탄생한다. 

잘 익은 수세미로 수세미를 간단히 만드는 법은 그대로 말린 뒤 껍질을 벗기면 된다. 껍질을 먼저 벗기고 말리기도 한다. 아주 간단한 방법인데 이 방법이 더 친환경이라 할 수 있다. 말린 수세미는 가운데 있는 까만 씨앗을 탈탈 털어내어 수세미로 바로 사용하면 된다. 


수세미를 아주 깨끗하게 만들려면 껍질을 벗기기 전에 커다란 냄비에 넣고 삶은 뒤에 껍질을 벗기로 물에 씻어서 말리면 된다. 


수세미를 삶은 뒤 껍질을 벗기고 말리고 있다


수세미는 씨앗을 심으면 새싹을 거의 다 틔우는데 열매에 왜 그리 많은 씨앗을 키울까? 껍질을 벗기고 물에 미끈미끈한 걸 씻어내고 씨를 빼고 말리고 있다. 1차로 10개를 따서 삶아서 말렸는데 이걸 키우면서 물주고, 또 따서 삶고, 수돗물로 씻고 말리는 과정을 생각하면 1개에 만원의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친환경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수세미는 제 피부를 말려야만 수세미가 된다. 감싸서 키운 깜장 씨앗을 와르르 쏟아놓고 가벼이 하늘로 날아올라 구름과 얼싸안고서야 진정한 수세미로 태어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난 이 세상에 온 까닭을 잘 알아. 꽃 피워 열매 맺는 일보다 더 중요하지가 않지. 햇빛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열매 속 여린 씨앗을 까맣게 만들고, 질긴 그물을 촘촘히 엮는 거야. 봄부터 준비한 선물을 인간들에게 내놓는 일, 그 또한 너무 알찬 삶속에 채워 넣어야지. 앗 내가 제공한 꿀로 꿀벌, 호박벌, 말벌까지 살찌워 주었지.'


친환경수세미로 인기가 좋은 수세미! 영국에서는 친환경수세미에 대한 가치를 높게 인정해서 샤워용 수건 대신 사용한다고 한다. 한여름 줄기에 주렁주렁 달려서 커다란 수세미가 더 많이 자라 집집마다 주방에서 친환경수세미로 쓱싹쓱싹 그릇을 닦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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