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글쓰기
“어차피 안 될 거야. 그러니까 대강할 거야. 그런데 계속할 거야. 그렇게 멈추지 않고 계속하기 위해서는 몰입하고 집중해야 해”
박혜윤의 <도시인의 월든> 중에서
브런치에서 라이킷은 큰 기쁨이다.
하지만 절망이기도 하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서 라이킷 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라이킷 수는 그만큼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의미이기에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된다.
동시에 글을 쓸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흔이 넘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주 늦은 나이이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이 든다.
매일 글을 쓴다고 실력이 느는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길이고 지금이라도 내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다.
환경을 원망하고 나를 원망하고 엄마를 원망하며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서야 콸콸 쏟아져 버려진 물이 아깝게 느껴졌다.
느리디 느려 영원할 것 같던 시간이 이제야 비로소 끝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겨우 반환점을 돈 것뿐일 수 있지만,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보이지 않지만 나의 글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좌절하고 절망하면 글을 쓸 수 없다.
독자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지만 지금은 계속 글을 써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희망이 없더라도 계속 써야 하고, 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더없이 큰 기쁨이다.
과정이 즐겁고 완성을 하면 뿌듯하다.
글쓰기는 나의 하루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나는 뿌듯하고 보람 있는 삶을 산 적이 없다.
육아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고, 보람을 느끼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엄마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쓰기는 결과물이 차곡차곡 쌓인다.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과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과정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어차피 삶은 고통이다.
이전에는 완성된 크고 멋진 행복을 꿈꿨지만, 내가 바라는 영원하고 완벽한 행복은 없었다.
순간순간 작은 행복을 느끼며 그 찰나의 행복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야 한다.
고통스러운 삶에 글쓰기는 바늘구멍 같은 숨통이다.
하루라도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한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하더라도 나의 오늘은 아무것도 아닌 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