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심장이 뛰는 삶을 살라고요?

이제 정말 터져버릴지도 모르겠다

by 이나

지난 2년간 내 심장을 뛰게 만든 요인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달리기, 다른 하나는 상사의 연락.

2년 전, 처음으로 달리기를 해보겠다고 나간 날. 스마트폰에 찍힌 심박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거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수준 아닌가.
심박수를 낮추기 위해 수많은 학습과 연습을 해왔지만 여전히 이상적인 수치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상적이라는 그 수치에 도달하려면 그냥 걸어야 한다.

... 그런데, 위 문장까지 쓰던 바로 그때.
심박수를 뛰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이 등장했다.
상사 A의 전화.
그것도 문자도 아닌 '전화'였다.

심지어 시간은 20시 02분. 아니 이건 우연이라기엔 너무 극적이지 않은가?

문제는, 그 전화를 받은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시간에 업무 요청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 상사의 언행에 불쾌함을 느꼈고,

그 불쾌함이 나를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파되었다.
나의 연락을 받은 그분도 지금 어딘가에서 허공을 향해
"아니 이런 XX가 다 있냐"라고 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정말 죄송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반성의 의미로, 저는 조만간 퇴사 의사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잠시 글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뭐, 상사 A덕에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게 이거 하나이겠냐만은.




다시 달리기와 심박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결국 심박수가 낮아야 좋다는 것에 대한 논리는 간단하다.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그리고 과부하가 걸리지 않는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오래 뛰고 멀리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00미터 달리기 선수에게는 심박수를 낮추는 훈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히려 심장이 터져라 뛰어야만 할 테니.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심박수를 체크하며 달리지 않는다.
정량적인 수치보다, 내 숨소리와 감각을 따라 달린다.
들썩이는 숨을 가라앉히고, 후우- 하고 내뱉는 리듬을 느끼는 게 좋다.

속도를 올리면 호흡은 가빠지고, 다시 천천히 내뱉으며 균형을 맞춘다.
내가 좋아하는 러닝 강도는 '대화 가능한 수준' 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실제로도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걸 좋아한다.
대화하면서 달린다는 핑계로 천천히 달려도 되는 건 덤이다.

달리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체 반응 중,

호흡을 조절하는 방법을 이제야 좀 알 것 같은데,
하지만 상사의 연락은, 조절이 안 된다. 이건 내 영역 밖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면 바로 전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출근길에도,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심지어 휴가 중에도 연락이 왔다.
“지금 통화 가능해요?”라는 말로 시작되지만

그건 그냥 "여보세요" 같은 인사말에 불과했다.


그냥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카톡을 안 보고 업무시간에 답장하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알 거다.

정말 말이 쉬울 뿐, 절대 그렇게 되지도 않고, 상대방도 그렇게 흘러가게 두지를 않는다.

한두 번 답장을 미루거나, 연락을 무시해 보면 알게 된다.

아, 그냥 그때 반응을 보이는 게 차라리 나았겠다는 걸...


그렇게, 나는 핸드폰만 봐도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읽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하면 맥박은 더욱 빨라졌다.
밤에도, 주말에도, 더는 'safety zone'이 없었다.
이제는 well-being 이 아닌 safety 그 자체를 우려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게 무슨 원시시대도 아니고,

동굴 밖의 맹수가 나를 언제든 공격하려 올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달리기만으로도 충분히 뛰던 내 심장은,
이제 정말 터져버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