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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9. 놀이터 낙서

 매주 수요일이면 수정이가 일찍 학교에서 마쳐서 돌아오는 날이다. 아이들 곁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낸다. 나의 학창 시절은 외로웠다.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오빠가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혼자서 감당해야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나마 할머니와 함께 지냈기에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셨지만 할머니라도 일터에 가끔 나가시면서 그 시간들을 오롯이 감내하며 견뎌냈다. 

 희진이는 동우와 결혼 전 이야기 한 것이 있다. 생활의 여유가 없더라도 두 명은 있어야 한다고. 사실 동우는 한 명만 낳자고 했다. 그러면 조금은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깐. 자녀가 두 명이라면  본인이 책임져야 할 사람이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겁이 난다고. 그런 부분에서 희진은 확고했다. “아니, 두 명은 있어야 해. 한 명은 외로워. 서로 의지할 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동우 씨만 부모 아니야, 나는 엄마야. 우리 같이 책임지는 거야!” 그래서 지금의 민재와 수정이가 우리 곁에 있다. 사실 두 명 키운다는 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학원비든 경제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후회를 한 적은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원동력이기에.     


 수정이는 가방을 책상에 두고 손을 씻고 있다. 약 10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이지만 뒤편으로 파티션을 두고 아이들 공간을 마련해 뒀다. 대게 부동산 사무실은 상담 테이블과 계약 테이블을 별도로 두는데 아이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일원화를 시켰다. 

 수정이가 저학년 일 때는 반 친구들이 학교 마치고 책가방을 메고 부동산 사무실로 들어가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제는 제법 수정이 친구들 사이에 알려져서 친구들도 더운 여름이면 가끔 사무실 문을 두들이고 인사를 하고 정수기 시원한 물을 마시러 들어온다. 

 한 번은 딸 친구 지아가 평소처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이 있다. 지아 뒤에서 엄마로 보이는 분이 어색하게 인사를 하셨다. 딸아이가 목이 너무 마르다고 엄마 물 좀 먹고 가자면서 갑자기 부동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길래 깜짝 놀라셨다고. 부동산 소장님도 너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해주셔서 한 두 번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그제야 지아가 얼핏 아파트 상가에 친구 엄마가 가게를 한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 뒤로 지아 엄마도 부동산 사무실 종종 들러 커피도 마시고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도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손을 후다닥 씻고 물도 마시고 수정이는 빨리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재촉한다. 수정이 말이 궁금하긴 하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재촉하는지. 딸이 있으면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 했는데 아이가 커 갈수록 친구가 되는 느낌이다. 학교 마치고 사무실 오면 특별한 일 없을 때는 수정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준다. 

 수정이네 반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내가 일하는 아파트 단지 내에 산다. 기특하게도 수정이는 반에서 반장도 맡고 있고 성격이 두리둥실 하다 보니 특정 무리에 종속되어 있는 편도 아니다. 

반에는 몇 명의 무리들이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내게 털어놓은 수정이의 고민은 무리들 중에서도 리더처럼 보이는 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들끼리 싸움이 났다는 거다. 영지하고 서원이라는 친구가 사이가 안 좋아서 어느 날부터는 무리가 나뉘었다는 것. 수정이는 영지와 서원이하고도 친하고 반장이라는 직책도 있다. 이 둘을 사이좋게 해 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한다. 근데 영지하고 있으면 서원이의 시샘 어린 눈빛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서원이하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영지가 나타나 사이를 떨어뜨려 버린다는 것이다. 

 교실에만 가면 둘 사이를 눈치 보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수정이다. 희진이가 생각해도 딸아이의 걱정이 점점 늘어나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 방법이 있었어! 수정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수정아, 우리 사무실에 영지하고 서원이하고 그 무리들 다 데리고 와봐. 김소장이 쏜다!”

 “엄마, 그렇게 해서 둘 사이가 단박에 해결될 거였음 이 상황까지 안 왔어.”

 “뭘? 너희 나이 때는 다모여서 맛있는 거 먹고 웃다가 떠들면 괜찮은 거 아니야?”

 “김소장님! 우리 나이도 생각이 있는 나이고, 방정환 선생님이 말한 아동 인격이라는 것도    있어. 그리고 우리가 애야? 맛있는 거 먹고 놀면 아무렇지 않게? 그 단계는 벌써 뛰어넘었다   고! 그리고 그 친구 엄마들도 싸워서 이야기 안 한대. 서로 놀지 말라고 했다던데? 그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수정아, 영지하고 서원이 일인데 그 엄마들이 만나서 싸울 일이 뭐가 있어?”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라더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났던 걸까? 세상에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더니만 애들이 싸운 건 애들이려니 하겠는데, 엄마들이 왜 싸운 건지는 진짜 궁금하긴 하다. 

 “엄마, 그냥 나는 누구 편에도 안 서고 반장일이나 열심히 할래. 엄마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이번은 도와주는 거 같아. 시간이 지나면 끝은 있겠지.”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대박 사건이야!”

 “수정아~ 어떤 일이길래 대박 사건이야?”

 “아파트 놀이터에 누가 영지를 음해하는 낙서를 한 거야. 그래서 서원이가 집에 가서 엄마한테 가서 일으면서 속상해서 울었대. 아무리 생각해도 영지가 범인이라 생각한 서원이네는 그다음 날 영지보고 놀이터에 낙서한 거 지우면 용서해 줄 테니깐 지우라고 했대. 이틀이란 시간을 줘도 발뺌하고 지우지 않자 엄마와 경찰서 가서 신고를 했다나 봐.”

 “응? 놀이터에 낙서했다고 경찰서 신고를 했다고?”  

 “응. 그런가 봐. 영지가 아니라고 딱 잡아떼니깐 서원이 집에서 화가 난 거야. 서원이 엄마가 처음에는 관리실에 찾아가서 관리 소장님한테 놀이터 CCTV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경찰서에 접수해서 공문을 들고 와야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대. 서원이 엄마가 영지가 놀이터에서 낙서 한 모습을 캡처를 했다더라고.” 



  여기서 또 하나의 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CCTV 안의  놀이터에는 제법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서원이 엄마와 관리소장 경찰 그리고 아파트 회장님과 함께 CCTV를 보다가 아파트 회장님께 한마디 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놀고 있는 아이들이 우리 아파트 아이들이 다 맞나요?” 회장님 말처럼 유난히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서원이 엄마는 두 눈을 부릅뜨고 CCYV를 보고 있는데, 유독 더 거슬린다.   

 “회장님, 아파트 경비원 분들 교육 안 하세요? 우리 아파트 단지 아이들 말고도 주변에 주택이며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다 와서 놀고 있잖아요!”

 놀이터 낙서 사건을 계기로 하여 경비원 분들의 오후 순찰이 더 늘었고, 낯선 아이들에게는 너는 집이 어디니?라고 일일이 묻게 되었다. 아파트 회장님도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경비원분들과 같이 순찰을 돌고 계셨다.

 아파트 회장님은 한 아이에게 “너는 이 아파트도 안 살면서 여기서 놀면 어쩌니? 얼른 다른 곳에 가서 놀거라. 학교 운동장에 가든지.”라고 큰소리로 훈계하는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끼리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때마침 수정이는 훈계하는 아파트 회장님 옆을 지나 부동산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엄마, 나 이제 아파트 놀이터에서 못 놀아. 그러니깐 우리도 아파트로 이사하자.”

 “수정아,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나는 오늘 학원 숙제가 많아서 숙제하려고 친구들하고 안 놀고 바로 사무실 오려고 했거든. 다행이야. 내가 놀았으면 혼날 뻔했어. 경비 아저씨하고 다른 어른이 놀이터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 아파트 안 살면 여기서 놀면 안 된다고 했어. 나도 이제 마치고 바로 사무실로 올 거야. 괜히 꾸지람 듣고 싶지는 않아. 눈치 보기도 싫고.”

 수정이의 조금 처진 어깨를 보는 것도 안쓰러웠지만 아이가 이 상황을 어떠한 자세로 받아들일지가 조심스러웠다. 아파트 시설을 이용하는 건 관리비를 내는 주민들의 권리임은 맞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 조차 원리 원칙의 잣대를 적용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브라질에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유명한 기상학자의 나비효과가 오버랩이 된다. 두 아이의 신경전이 어른의 싸움이 되고 그 일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갑론을박을 일으키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놀이터에서 시작된 낙서 문제로 경찰서에서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등의 명목이 붙여졌다. 경찰 입장에서도 단순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두 집안의 화해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그나마 영지 아버지와 서원이 아버지가 이 사건을 나서서 화해하고 무마시켰다고 한다.      

 희진이는 그 후에 무지개 부동산 옆 사무실인 이은영 소장님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영지 엄마네가 빨리 이사 가고 싶다고 급매물로 집을 내놓았다고 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단지 내에 여기저기 소문이 났다. 그러고 얼마 안돼서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얼마 뒤 서원이 엄마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수정이 엄마, 우리 집도 급매물로 집을 좀 내놓으려고요.”     

 한 여름 놀이터 사건으로 아파트 단지도 소란스러웠으며 그 계절이 끝나갈 무렵 그 두 아이의 엄마도 서로의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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