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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8. 등기부등본 사건

 희진은 경미와의 전화 통화 이후 세상이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경미와는 중학교 시절부터 단짝처럼 잘 지낸 친구다. 지금은 사는 곳이 거리가 있고 애들 키우느라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학창 시절 때 경미와 영화관에서 <여고괴담>을 같이 봤던 적이 있다. 어두운 밤 학교 복도에서 여배우 최강희 씨가 스크린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이 다. 웬만큼 놀라지도 않는데 영화보다 복도씬에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지금까지 살면서 특별하게 놀란 기억은 없다. 오히려 지금 친구와의 전화 통화가 더 소름이 돋는다. 

 부동산 일을 하면서 항상 좋은 면만 보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면도 마주하게 된다. 돈 때문에 겪는 집안 불화들 공동 투자 실패로 인한 갈등들. 임대를 놓으면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신경전들은 말도 못 한다. 그거야 사람들끼리 부대끼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하는데. 이번 건은 좀 세다. 제삼자인 내가 그 현장에는 없었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멘털이 흔들린다.     


“희진아, 오랜만이다. 전화라도 자주 한다는 게 애들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그지?”

“잘 지냈지, 경미야. 아이들은 잘 크고 있어? 너도 잘 지내고 있지?”     

 경미의 첫 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오히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거나 중학교에 가버리면 학부모 모임 일명 학모 모임은 활발하지 않다. 처음 초등학교 입학을 하니 엄마들의 기대와 불안감으로 학모의 모임이 더 활발하고 그중에 학부모 대표까지 선출한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초등학교일수록 신경전이 더 불꽃이 튄다. 정작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데 엄마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것 같다. 학부모 모임에 오면 엄마들끼리 아이들의 친구도 정해주기도하며 학원을 어디 보내는 지도 세심하게 파악한다. 왜 그렇게 남의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다. 맞벌이하는 엄마들은 은근히 살짝 돌리기도 한다. 

 그렇게 첫 째 아이가 입학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학모 모임들이 형성이 된다. 요즘 애들은 자기 할 일도 많은데 엄마가 친구까지 정해주니 사는 게 더 고달파 보인다. 이러다가 그 아이들이 커서 면접을 가게 가면 엄마가 옷가지 들고 따라갈 판이다. 그러다 보면 그 모임은 조금 변질이 되어 엄마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시작된다. 남편의 직장이 어디인지 그 사람의 경제적인 상황은 어찌 되는지 많은 추측들이 오고 간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서열이 나뉘고 있다. 

 어디든지 무리에는 갈등의 요소들이 있다. 그 무리들 사이에서 특히 영민이 엄마와 지현이 엄마가 유난히 신경전을 벌였다. 둘은 참 안 맞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신경을 긁다가 지현이 엄마가 폭발했다. 

 지현이 엄마가 무리들 다 있는 곳에서 주변 다 들리도록 말을 했다.

“영민이 엄마는 뭐가 그렇게 잘 났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 본인 자가도 아니잖아. 뭐가 그렇게 있는 척이라고는 다 하고 다녀? 그리고 지금 애들 학원도 몇 개씩 보내고 있지? 솔직히 지금 무리하는 거 아니야? 형편은 되긴 한가 보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얼어붙었다. 너무 당황한 영민이 엄마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그 무리에서 박차고 나갔다. 그때 나 역시도 자가가 아니었기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도 없었고 가만히 있던 자신이 더 수치스러웠다. 

 그다음 날 엄마들은 아이들을 아침 등교를 보내고 난 뒤 약속이나 한 듯 카페에 다시 모였다. 어제 뛰쳐나갔던 영민이 엄마의 손에 A4 용지의 프린트를 들고 나타났다. 

“지현이 엄마, 내가 어제 황당하기도 하고 집에 할 일이 있어서 아무런 말 안 하고 집에 갔거든. 근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근데 지현이 엄마, 그쪽은 왜 그렇게 당당해?” 

 A4용지를 테이블에 던져서 나를 포함한 여러 엄마들이 봤다. 맨 앞장에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말소사항포함)’라고 적혀있었다. 이번에는 영민이 엄마의 반격이다. 

“지현이 엄마, 자가라고 나한테 큰 소리 칠 여유는 있어? 집에 대출 많던데. 대출 끼고 사는 지현이 엄마나 내가 전세 사는 거랑 뭐가 그렇게 다를까? 쪽팔리지도 않아? 자기는 은행하고 같이 집 산 주제에. 본인 대출이나 다 끄고 나한테 뭐라고 해. 다들 고만고만하면서 무슨 여기서 계급을 나눠. 수준 떨어져서 내가 같이 못 다니겠어. 다들 이렇게 잘 지내봐요.” 

 이번에는 지현이 엄마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카페를 나갔고, 그 모임은 그 이후로 자연스레 해체가 되었다. 도대체 등기부등본이 뭔데 이 사달이 났나 싶기도 하고 어렴풋이 부동산 계약할 때 부동산 소장님이 보여준 것 같기도 했다. 내일 오전에 희진이한테 한번 전화나 해봐야겠다. 


 “희진아, 너는 부동산 소장이니깐 당연히 잘 알 꺼라 생각 들어서 전화해 봤어. 혹시 등기부등본 나도 떼 볼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등기부등본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상세 내역을 정리한 문서이자 자유롭게 아무나 열람을 할 수 있게 되어있어. 어떤 점이 궁금한 거야?” 

“우리 학부모 엄마들끼리 막 싸우는데 말하는 게 욕하는 것보다 더 잔인해서 그냥 다들 가만히 있었어. 등기부등본을 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니깐. 진짜 나도 없는 형편에 애들 교육 여건이 좋다 해서 여기 와서 전세 살고 있는데 여기가 과연 정답일까? 그런 의문이 들어.”

“경미야, 내가 네 말 듣고 있으니깐. 가끔은 옛날 성인들의 말도 틀릴 때가 있구나 싶다.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는 말,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다고 하는데. 무슨 나이만 든다고 다 어른이냐? 그나마 애들이 그 자리에 없어서 다행이다.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도대체 자라는 애들이 뭘 배우겠어? 왜 학모모임이 있는 거야. 정작 애들은 관심도 없고 그 모임으로 더 비교당하고 힘들어지는데 말이야. 우리 클 때는 그런 게 어디 있었냐? 그래도 우린 다들 친구들하고 잘만 지냈는데. 세상사는 게 이렇게 점점 팍팍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자.”

 “희진아. 그때 이후로 학모 모임 자연스레 해체가 됐어. 그 자리에 있던 엄마들은 혹시나 한마디 해서 자기들도 그렇게 당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언제 그 차례가 본인이 될 쭐 모르는 거지.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고 모두 다 방관자 역할만 하고 있었던 거야. 분명 이건 부조리한 건 다들 아는데 말이지. 그냥 씁쓸했어. 부모의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우리 애들도 같은 계급으로 메겨질까 봐. 그런 게 그냥 씁쓸해.”     

 희진은 경미와의 전화 통화를 끊고 나서는 하루를 멍하게 보냈다. 사람과의 관계는 어찌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지는 거 같다. 그러고 보면 그 친구와도 그랬다. 학창 시절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수 길 노란 낙엽이 이뻐서 가까운 거리를 부러 빙 둘러 걷곤 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간이 한없이 짧게만 느껴지고 금세 하늘에 별이 떠 있었다. 그땐 사소한 것 하나에도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웃음이 헤펐는지.

 지금 나이가 들어서 그 가로수 길이 생각이 나서 걷다 보면 그 길이 한 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그 어떤 누구와도 지난날처럼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수다는 힘들다. 그때는 당연했었는데 그게 새삼 어려운 일이란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고. 아마 경미의 그 학부모 모임의 엄마들도 어릴 때 한 번쯤 이런 생각 들은 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은 변하고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것 또한 내가 견뎌야 할 세상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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