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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07. 호중 씨의 외출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어딘가에 외출할 곳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설렘이다. 아내는 간단하게 식사 준비를 해주고 출근을 했다. 쓰러지고 나서 모든 삶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은 아내밖에 없다.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무너져버렸을 것이다.

 뭐든 느리다. 어쩔 수 없지만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쓰러지고 나서 의식 없는 채로 3개월 눈만 껌뻑인 채로 5개월을 병상에 누워만 있었다. 왼쪽은 아직까지 마비이지만 내 자유의지로 다닐 수 있다. 

 오늘은 무지개 부동산 김희진 소장을 만나기로 했다. 김소장을 만나고 나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장애인이라고 딱히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게 대해준다. 나를 위한 배려임을 알고 있다. 옷을 입고 외출 준비하는 것도 꽤나 시간이 걸린다. 나드리 콜을 불러놨다. 배차시간이 뒤죽박죽이라서 운이 좋으면 바로 잡히지만, 시간이 꽤 걸릴 때도 있다. 김소장은 잘 안다. 나와의 약속 시간을 정해도 그 시간이 정확하지 않다는 걸.     



 

사무실이 오늘따라 눈에 거슬리게 지저분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바닥을 좀 더 쓸고 물걸레로 닦기도 해야겠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귀한 손님이 오는 날이다. 내게는 호중 씨는 특별한 분이다. 우리 사무실에 오기까지 큰 맘을 먹고 힘들게 오실걸 아니깐 더 고맙고 마음이 찡하다. 사무실 책장도 한번 더 정리하고 오늘은 둥굴레 차가 아니라 호중 씨를 위해 원두커피를 내려야겠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간다. 사무실 유리창 밖으로 나드리 콜이 보인다. 호중 씨가 있겠구나 단박에 알 수 있다. 휠체어가 적재되어 있는 규모의 차여야만 되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도로가로 마중을 나갔다.

 “안녕하세요, 호중 씨. 잘 지내셨나요? 온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기사님의 도움으로 호중 씨의 전동 휠체어에 탄 채로 능숙하게 내려온다. 나는 옆에서 기사님이 건네는 가방과 카스텔라 빵을 받아 들었다. 

 “김.. 소장.. 님.. 제가 아니라.. 맛.. 이.. 는.. 빵을 기... 다린 거 아니에요?”

 “앗. 정곡을 찌르셨어요. 호중 씨도 반갑고 빵은 더 반갑네요.”

 호중 씨가 어느 날 근처 시장에서 줄 서서 사 먹는 유명한 카스텔라라고 사 오셨다. 맛도 있었지만 호중 씨가 그 빵을 사 오기 위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고생한 그 일련의 과정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잘 알기에 너무 맛있다고 잘 먹었더니 그 뒤로 계속 빵을 사 오신다. 


     강호중 씨를 처음 만난 건 무지개부동산 사무실을 오픈하던 첫 해였다. 무지개 부동산 멀지 않은 곳에 5층 높이의 40년이 넘은 구축아파트가 있다. 오래되다 보니 그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지정되었다. 어느 날 젊은 남자분이 전화가 왔는데 옆에서 말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재건축 매물을 계약하러 사무실을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약자분이 몸이 불편해서 많이 느리고 더디더라도 양해를 부탁한다고 했었다. 그게 바로 호중 씨였다.          


  계약을 하는 날, 호중 씨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장애인 활동지원사 님과 함께 방문을 하셨다. 휠체어에 탄 채로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에는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매도인의 살짝 당황하는 분위기를 눈치를 살피고 최대한 이 계약을 잘 마무리 짓기 위해 노력을 했다. 침착하게 물건지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재건축 진행에 대한 과정 잔금일까지 마무리 짓고 계약을 마쳤다. 

 계약서 자필을 앞두고 서명하는 란에 호중 씨의 손이 불편했기에 이름 한 글자만 적는 걸로 협의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 아... 안.. 녀... 녕.. 하세요오..”

 장난 전화인가 싶어서 희진은 전화기를 끊으려다가 이상하다 싶어서 좀 더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쫑긋 귀 기울여 듣다 보니 그제야 예전에 내가 계약했던 호중 씨란 것을 알았다. 전화로는 울리는 느낌이라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사무실에 한번 가도 되냐는 말은 알아들었다. 내가 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은 했지만, 과한 친절은 독이 될 거 같아 그렇게 하시라고 하며 첫 방문 약속을 잡았다.      

 

 계약 이후에 첫 방문이었다. 계약서 적는 날만 해도 가족들과 활동지원사님과 함께 오셨는데, 이번에는 활동지원사님과 단출하게 오셨다. 그만큼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셨다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같이 오신 분께 함께 테이블에 앉다고 권했으나, 웃으시면서 말 편하게 이야기 나누라고 근처 카페에서 쉬고 있겠다고 하셨다. 한편으로 그것도 그분에겐 휴식이 될 듯하여 흔쾌히 보내드렸다. 

 “기... 어... 억.. 해... 주... 시... 고... 감... 사... 합... 뉘.... 다...”

 첫 방문에서의 호중 씨와의 기억을 떠올리면 그분의 하는 말의 90프로 정도까지 못 알아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썼다. 재건축 진행단계와 그 앞으로의 일들이 궁금하신 것 같아서. 호중 씨는 듣고 내가 혼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 부동산 이야기들 2시간이란 시간 동안 떠들어댔던 것 같다. 그 날밤 나는 호중 씨와 만나면서 이야기 들으려고 용을 써서 그런지 동우 씨 말로는 밤새도록 코까지 골면서 잤다고 한다.

 “강호중 씨, 계약 이후에 너무 멋진 모습 보니깐 보기가 좋아요. 다음에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 오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호중 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또 와도 되냐고 물으셨고.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당연하죠. 오시는 길이 너무 힘들지 않다면 오셔도 됩니다.”

 호중 씨는 좋아하시며 이 맘 때쯤 보기로 하고 나드리 콜을 불러서 가셨었다. 그게 일 년에 한 번 선선해지기 직전쯤 보게 되었다.         



 그다음 해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호중 씨의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보다 발음들이 더 정확하셔서 알아듣기가 좀 수월해졌다. 이번 에는 보조인이 보이질 않았다. 혼자서 외출을 하신 거였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김소장님, 나 이제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어요.”

 “대박이예요! 말도 제법 잘하시고, 멋지십니다!”

 “내가 더 대단한 거 보여드릴까요?”

 “뭔데요?”

“김소장님, 종이하고 펜 좀 줘봐요.”

 A4용지 한 장과 쓰기 편한 펜을 드렸다. 볼펜을 힘겹게 쥐더니 ‘강호중’의 이름을 삐뚤삐뚤하게 적으신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와. 이거 진짜 토픽 감인데요? 언제 이렇게 좋아졌어요?”

 예전에 계약할 때 매도인에게 양해를 구해서 한 글자만 이름 적었던 기억이 났다. 이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동안 재활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손 운동도 더 했다는 것이다. 

 “하하하. 내가 김소장님 이런 반응 보고 싶어서 운동했어요.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요!”

 갑자기 주책없이 눈물이 차오른다. 첫째 아이 정환이가 처음 걷던 날이 생각난다. 

한 발짝 조심스레 첫 내딛는 걸음에 눈물이 나던 그때가. 

 내게 보여주고 싶다고 연습했다던 이름 세 글자. 그 세 글자를 쓰기 위해 호중 씨는 무수히 많은 날들을 공들여서 연습하고 좌절했었을까? 그런 과정이 떠올려지니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호중 씨의 손목에는 흉터 자국이 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편히 이야기해 주셨다. 

 “하하하. 멋진 훈장 하나 있어요. 그 시간을 다 견뎌냈기에 지금이 있지 않습니까? 한때 건설 현장에서 소장으로 바쁘게도 살았죠. 젊은 나이에 현장 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나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어요. 애송이가 소장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스트레스로 술자리도 잦았고 담배도 많이 폈어요. 이런 말 하기까지는 세월이 흘러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쓰러졌기에 지금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상태로 몸에 무리 가는지도 모르고 일하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있었다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예요.”

 “아... 호중 씨. 시간이 흘러 감정이 희석돼서 그런 말 하는 거 알아요. 쓰러지신 이후로 호중 씨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소장님. 죽지 못해서 산다는 삶 이해 못 하시죠? 죽으려고 했는데 죽지 못해서 살고 있어요. 정말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싶어서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그러다가 아내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더군요. 아들 역시도 함께 울고 있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어리석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호중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먹먹한 마음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을 호중씨였을텐데. 평소처럼 회식자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을 열고 나서는 머리가 어지럽더니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하필 사모님은 외출을 하셨었고 너무 늦게 혼자 쓰러진 채로 발견이 된 것이다. 

 병원에서 정신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다가 눈을 떴을 때. 눈에 초점도 없이 본인 의지로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퇴원으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호중 씨가 아는 집이 아니었다고. 그제야 아내는 40평대의 아파트를 팔고 작은 평수로 집을 옮겨 병원비에 보태어 썼다고 한다. 호중 씨가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안 병원비가 꽤 나왔던 것이다.

 호중 씨를 보면서 나는 느끼는 바가 참 많다. 인생의 끝에서 섰던 분이 그걸 딛고 일어섰던 용기가 말이다. 날이 밝기 전 가장 어둡다고 한다. 그래야 해를 볼 수 있으니깐. 지금 호중 씨는 어둠을 지나고 있다. 그 밝은 기운을 내게도 나눠 주는 것 같아서 호중 씨를 만나고 나면 나 역시도 힘이 난다. 내게 찾아오는 손님은 의미가 깊지만 호중 씨는 조금 다른 의미로 특별한 분이다.      




 김소장은 보면 볼수록 깊이가 깊은 사람인 걸 안다. 내가 말하는 게 어눌한 편이다 보니 김소장은 배려한다 싶어서 혼자서 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한다. 그 모습이 또 나는 고맙다. 부동산 일을 하면서 웃기는 에피소드도 말해주고, 부동산에 관심 많은 나를 위해서 부동산 관련 지식도 알아서 해준다. 현장 소장으로 일을 했었을 때는 직원들 분위기 띄우려고 말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경청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 쉽게 인간관계 정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걱정도 하고 연락도 꽤 왔었는데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동정의 눈빛도 싫었고, 그 전과 다르게 대하는 확연한 온도차이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변인들과 점점 멀어졌고 이제는 나도 혼자가 편했다. 

 인생을 놓고 말하자면, 쓰러지기 전과 쓰러지고 나서의 삶으로 나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고 집도 바뀌었고 하물며 내 성격도 변화가 왔다. 사람들은 좋아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즐겼는데 지금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몸이 불편하게 된 나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가족들에게 짐도 되기 싫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 그제야 자신이 어리석었단 걸 뒤늦게 알았다. 그때부터였다. 다시 살아야겠다.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 마음을 바꿔먹었다. 또 마음을 바꿔먹고 나니 삶이 제법 편했다. 그전에 바쁘게 일만 했던 내가 느린 세상을 살아보니 사소한 것 하나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게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와 아들은 내 곁에 그대로 있어줬다. 


 무지개 부동산 김희진 소장을 만난 건 다른 의미로 내겐 행운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말을 알아들으려고 귀를 쫑긋이며 신경 쓴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도 내색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 말을 도통 못알아들으때면 눈썹을 살짝 찡그린다. 그러면 나는 좀 더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한 글자씩 천천히. 내 의지와는 반대로 말이 샌다. 아직까지 내 몸의 절반은 마비 상태라 발음이 영 시원찮다. 이번에는 집에 가서 입 주변 운동을 더 집중적으로 해야겠다. 다음번에는 지금보다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호중 씨, 다음번에 무지개 부동산 오실 때는 뛰어서 들어오세요!”

 작년에 올 때는 나보고 걸어서 들어오라고 그래서 재활하면서 난간을 붙잡고 열심히 걷는 연습을 했었다. 목발을 짚고 뒤뚱뒤뚱 마비가 된 다리를 조심해서 잘 걸어봤다. 역시나 너무 힘들었지만 그게 또 되었다. 아내가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김소장이 나보고 사무실 걸어서 들어오라잖아.”라고 이야기를 해줬더니 아내가 활짝 웃는다. 김소장님 덕분에 당신이 더 재활운동 열심히 하는 거라고 고맙다고 찾아가야겠다고 말이다.  예전에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시기에 아내는 무너지는 나에게 울며불며 재활 다시 해보자고 노력해 보자고 했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게 아무것도 아닌데도 용기가 생긴다. 진짜 김소장 말대로 다음번에는 사무실 뛰어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진짜 힘들 거 같다. 신이 있어서 기적을 일으켜주시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어찌 됐든 김희진 소장의 엉뚱함에 웃음이 나고 힘이 난다. 


  다음에 무지개 부동산 사무실 방문할 때까지 지금보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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