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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10. 세 식구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며칠 전 동우와 저녁에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미국에 유명한 교수님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리얼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다루고 있다. 희진이와 동우는 그 교수님만큼 꽤나 심각하게 시청하고 있다. 화면에 잡힌 미국 교수님의 일그러진 얼굴이 당분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이들은 일찍이 잠이 들었고, 모처럼 동우와 함께 드라마를 보며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차렸다. 연애 시절만 해도 영화관에서 팝콘에 콜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간단한 맥주를 마시고 헤어졌었다. 어느 순간부터 치솟은 물가에 연애 시절에 영화관은 큰맘 먹어야만 가능하게 됐다. 동우 씨가 온 동네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공수했다고 자랑을 했다. 

 “희진아, 그 과자 한 개씩 천천히 먹어.”

 “동우 씨, 먹는 걸로 그러지 말자. 무슨 과자 한 봉지에 동네 편의점을 돌아다녀? 그게 말이 되냐고?”

 “희진아, 지금 네가 먹고 있는 맥주와 과자 그냥 평범한 게 아니야! 나의 노력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정 못 믿겠으면 , 네가 나가서 사가지고 와봐.”

 “요즘 물가가 장난이 아니라서, 애들 둘 키우면서 사는 것도 힘든데. 이제 맥주 한 캔과 과자 먹는 것조차 힘들면 우리 이제 앞으로 살아나가기 더 힘들겠다. 하하.”

 희진은 과자를 한 입 먹다가 깜짝 놀랐다. 서민들이 간단하게 맥주와 막걸리에 잘 어울리는 안주인 먹태맛이 난다. 집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의 가성비로는 최고다. 

 “근데, 희진아. 이 과자가 사실 인기 있는 게 신기하지 않아? 과자의 주 소비층은 원래 아이들이잖아. 이 과자가 인기가 있다는 게 반면에 씁쓸한 일이기도 해.”

 “동우 씨, 요즘 애들이 노가리나 먹태 맛의 과자를 먹어서 노티 난다는 거야? 애들은 애들 다뤄야 하는데 어른들 입맛이라서 씁쓸하다는 거야? 그렇다고 애들이 초콜릿이나 단 것만 줄구장창 먹을 수는 없잖아. 난 오히려 괜찮은데.”

 “그게 아니라, 과자가 아이보다 어른을 타깃으로 잡는 게 흥행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거지. 즉 안주과자 열풍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함축되었다는 거야.”

 동우는 비장하게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과자를 먹는 주 소비층은 말 그대로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 소비층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동이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기록적인 대한민국 저출산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이 더 이상 과자의 주력 소비층이 아니라 판단이 된 것이다. 오히려 흔히들 말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들)들을 타깃으로 잡은 것이고, 그 결과 역시 맞아떨어진 것이다. 과자 하나에도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업계들의 생존 출구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광고에 인기 트로트 가수가 성인 단백질 보충제를 선전하고 있다. 희진의 시댁과 친정집에서도 광고의 단백질 보충제를 봤다. 요즘 나이 든 노년층에게 트렌드구나라고 생각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분유보다 오히려 노년층을 대상으로 삼는 게 우유 업계들의 생존 출구 전략인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들 상대로 하는 장사는 흥행불패라고 했는데, 이제 그 말도 틀린 것이다. 얼마 전에 봤던 미국의 유명한 교수님의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했던 일그러진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침 시간 동우가 뉴스를 보다가 희진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국민학교 오전/오후반 출신이야.”

 “정말? 나는 학교 다닐 때 6반은 기본이야. 대박이다. 오전/오후반은 지금 생각하면 전설이 다 전설!”

 “그렇지? 한 번씩 헷갈려가지고. 오후반이면 애들하고 놀다 보면 엄마가 학교 가라고 찾으려 다녔지. 헐레벌떡 학교에 애들하고 뛰어가고 그때 생각하면 진짜 학생수 많긴 했다.”

 두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다. 그럴 테지 너희는 기껏 해봐야 2반이 전부니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과 등굣길을 나선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와 사뭇 다르다. 동우는 국민학교 오전/오후반에 다녔다고 했다. 오전반과 오후반을 착각하는 건 부지일 수였고, 거기에서 발생되는 에피소드는 꽤나 다양하다.  희진 때부터 오전/오후반은 없어졌지만 각 학년은 6반까지 있었다. 운동회 한번 하면 지금 아이들하고 비교하면 올림픽 수준이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학교 교표를 달아야 선도에게 걸리지 않고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한 번씩 교표를 달지 않고 오는 날이면, 아이들 등교할 때 그 무리에 끼어서 우르르 같이 뛰어 들어가곤 했다. 

 지금의 학교 분위기는 한산하다. 희진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도심이고 주변 세대수도 천세대가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굣길은 혼잡하지 않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는 교문 앞에 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해주신다. 때로는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도 해주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시절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일일이 눈인사와 하이파이브를 한다면 교문은 학생들로 정체가 되고 손은 퉁퉁 불어서 불났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신혼부부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무지개 부동산 김소장님.”

 “잘 찾아오셨네요. 영수 씨 맞죠? 아내분도 시간이 되셨나 봐요. 같이 잘 오셨어요.”

 “네. 저는 황미진라고 합니다. 편하게 미진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도 집을 같이 보고 싶어서 

 유치원 등원시켜서 보내고 함께 왔어요.”

 “미진 씨 잘 왔어요. 마침 유치원도 갔다고 하니 맘 편하게 셋이서 집 보러 가봐요.”

 희진의 말에 미진 씨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영수 씨와 통화를 했다. 결혼한 지 3년 차 되는 신혼부부다. 이사 날짜가 맞는 월세 집을 보러 가기로 예약 한 날이다. 세 식구라서 일층이나 필로티 층만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일층이나 필로티의 가장 큰 장점은 층간소음 신경 안 쓰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돼요. 그리고 사실 어른들도 걸으면서 발소리가 나기 마련이거든요. 신경 안 써도 되는 것 그런 점은 편해요.”

 “네, 소장님. 저희는 엘리베이터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집에서 바로 출구로 나가는 게 좋아요.”

 “그렇죠. 아이가 있는 집일수록 일층 살아봐요. 정말 편하다니까요. 좀 전에 유치원 보내고 왔다고 했잖아요. 아이가 지금 몇 살이에요?”

 “하하하. 소장님. 유치원 갔다는 그 아이가 레트리버에요. 절순이라고 해요. 엄청 순해요. 가족사진도 보여드릴까요?”

 절순 이를 가운데 두고 셋 이서 가족티를 입고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며 뒤죽박죽 되었다.  다시 정리를 하자면, 영수네는 3년 차 신혼부부에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세 식구라 했다. 이론적으로는 시간으로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저마다 사정은 있는 법이니깐.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혼인신고를 미뤘거나 결혼식을 늦게 할 수 있으니. 그러면 그 아이가 지금 유치원 가는 게 말이 된다.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간과했다. 근데 그 세 식구 안에 개가 포함이 된 거지. 근데 개가 유치원을 갈 수가 있나?

 “잠시만요, 영수 씨. 절순이가 유치원을 간다고요?”

 희진의 말에 미진 씨는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여기 아파트 단지까지 유치원 차가 운행을 한다고 했거든요. 오전 9시에 등원 차량이 와서 철순이 데려가고요, 간식 먹이고 나서 오후 5시에 하원도 시켜줘요. 그리고 매일 키즈 노트도 써주시거든요. 그날 먹은 간식과 낮잠 잔 시간이 적혀 있어요. 그리고 친구 누구랑 놀았다고 적어줘요.”

  희진이는 지금 다른 세상과 맞닥뜨렸다. 다소 경험하지 못한 문화충격을 겪고 있다. 이해를 하기 위해 다시 집중이 필요하다. 사진을 보니 인절미라 불리는 레트리버종이다. 인절미에 힌트를 얻어 여자다 보니 순이 즉 절순이라 부른 것이다. 절순이가 유치원 간다고 찍은 증명사진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개도 증명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 하나하나에 놀라는 나를 보며 마치 꼰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본 단체사진. 셋이서 같은 티를 맞춰 입고 카메라를 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희진이는 점점 세뇌당하고 있다. 그 들은 세 식구였던 것이다. 이번주 금요일에 부모 모임이 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만난 학부모들인데 또래가 비슷하고 공감대가 많아서 정보도 공유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요즈음은 집을 구하러 오는 젊은 세대들은 고양이와 개를 흔하게 키운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실감이 난다. 부동산 사무실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놀러 오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 정식적으로 키워보진 않았지만 여유가 되면 이쁜 강아지 키워보고 싶단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영수 씨에게 조금의 양해를 구해야겠다. 

 “흠흠. 영수 씨, 제가 임대인 분께 세 식구가 집을 구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물론 세 식구는 맞아요. 절순이도 엄청 순하고 귀엽네요.  일단은 임대인분께 의사를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영수 씨에게는 절순이가 가족이지만, 간혹 임대인 분 중에는 특약사항에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기로 한다라고 요구하시는 분도 있거든요. 절순이가 집을 훼손 시에는 원상복구 하기로 한다라고 특약사항에 적을 거고요.”

 “네, 김소장님. 제가 소장님께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 사과드립니다. 절순이가 너무 소중한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저희 입장만 생각한 것 같아요. 저희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까요. 임대인분과 이야기 해보시고 연락 주셔도 됩니다. 기다릴게요.”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요즘은 개를 키우는 분이 많기 때문에 절순 이를 이해해 주고받아주는 집은 있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영수 씨와 미란 씨 만나서 ‘강아지 유치원’도 알게 되고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다음에는 절순이도 같이 오세요. 보고 싶네요.”

 “네. 연락 미리 주시면 다음번엔 다 함께 올게요~”     




  지금은 강아지 유치원 반장 선거 기간이다. 미란이와 집에서 절순이 반장 선거 연습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두고 “절순아 기다려.” 이 말과 함께 인내심을 기르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의 사교성과 인내심으로 평가해서 반장을 맡게 된다. 한 달에 한번 유치원 학모모임도 간다. 여기서는 편히 숨을 쉴 수가 있다. 양가 부모님은 볼 때마다 이야기를 한다.

 “너희는 결혼한 지 이제 3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2세 계획은 없니?”

 “미란이와 자리 좀 더 잡고, 돈을 좀 모아서 아이를 낳을까 해요.”

 “그래서 그때가 언젠데? 너희들 쓸 거 다 써가면서 언제 돈 모아서 애를 낳을 거니?”

 그럴 때마다 붙어 있는 입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미란이와도 상의를 해봤다. 다들 신혼여행 때 앞으로의 계획은 세운다고 흔히들 말한다. 연애할 때만 해도 우리도 남들처럼 결혼 계획 세우고 아이들 몇 명 나을 건지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결혼을 막상 앞두고 보니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집 값을 알아보니 우리에게 집을 산다는 건 바위에 계란 치기 격이고, 전세를 살자니 그것 역시 어른들의 도움 없이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도 사랑하니깐 우린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살아서 돈도 모으고 집도 사고 아이도 가지자고. 

 시간이 흐를수록 돈을 더 모을 수가 없다. 집 값은 자고 나면 오르고 또 올랐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미란이와 특별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다. 우리 위치를 파악하게 되니 자연스레 아이 없는 부부 딩크족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아내와 우연히 펫샵을 지나게 되었고 작은 레트리버를 분양하게 되었다. 

 미란이와 나는 절순이에게 애정을 쏟게 되었다.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자식이지만 기르는 정도 무시 못한다니. 결혼한 지도 시간이 지나니 주변에서는 아이에 대해 물어보는 이들이 많았다. “아직 아이가 없어요.”라고 대답을 하면 질문이 더 많아진다. 절순 이를 분양받고 나서는 습관처럼 “세 식구예요, 아이가 어려요.”라고 단답형의 답을 하니 편해졌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금 상황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희진은 점순이네 가족이 다녀가고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렸다. 다음에 절순 이를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나에게 새로운 문화를 선사해 준 개가 아닌가. 영수와 미란 씨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절순 이를 키우면서 또 많은 걸 배운다고. 지금 당장은 힘들 순 있지만 절순이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겠다고. 그래서 응원해 줬다. 잘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응원을 했다.     


 나른한 오후라 몸도 찌뿌둥해서 외출 중 팻말을 걸고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그러다 태형 씨 부부를 만났다.

 “태형 씨, 안녕하세요. 이제 늠름한 아빠가 다 됐네요. 시간이 참 빠르다 그죠? 아기가 너무 귀여워요! 잘 지내고 있었죠?”

 “안녕하세요. 소장님. 보시다시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출산 선물로 주신 내복도 잘 입히고 있고요. 애기가 칭얼거려서 아내와 함께 유모차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이런 시간이 올   까 싶었는데 그 시간을 견뎠기에 지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그런 용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저처럼 도망치는 용기요. 이곳으로 도망치듯이 왔었으니까요. 하하하”

 “하하하. 태형 씨 말이 너무 재미있어요. 도망치는 용기라. 그 말도 맞네요. 세상을 살면서 무리하게 맞서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진짜 오랜만에 애기 보는 것 같아서 좋아요. 다음에 또 봐요.”

 태형과 예비 신부는 결혼하기 전 부동산 사무실에 놀러 온 적이 있다. 이제 세 식구가 되어서 다니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까지 하다. 애기 발바닥이 내 손바닥만 한 게 꼼지락 거리는 걸 보니 심장이 간지럽기까지 하다. 흔히 말하는 심장폭격을 당했다. 아휴 귀여워. 태형이네 부부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행복지수와 출산율이 비례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건 아이러니하다. 희진이는 영수와 미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끄떡였다. 그들의 삶을 겪어보지도 않고서 아이 대신 개를 키운다는 말에 훈수를 둘 이유는 없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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