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흘수

농암

by 은의 정원

작은 터미널 밖으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낮은 시멘트 구조물, 계단, 땅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 사람들 옆으로 나도 동생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멀미로 인해 초죽음이 되어 잠시도 서 있을 기운이 없었다. 장애물 뛰어넘기를 할만한 높이의 낮은 시멘트 턱이었지만 여자 아이 둘이 나란히 앉기에 적당했다. 발로 밟거나 가뿐하게 뛰어 넘은 적은 있어도 몸의 한 부분을 대고 그 감촉을 느껴본 적은 없던 시멘트 덩어리는 따뜻하고 맨질맨질했다. 손바닥을 문지르며 깔깔하면서 맨질맨질한 따뜻함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여기 잠깐 있어. 엄마 금방 뭐 사갖고 올게"

"응"

동생이 작은 엉덩이를 바짝 붙여왔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혹시라도 우리가 겁을 먹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 했다.

터미널이라고 적힌 작은 건물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다. 요란한 노랫소리 같이 빠르고 높은 말소리만 분주하게 느껴졌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바싹 마른 몸에 통이 넓은 흰 옷을 입은 할아버지들은 한참을 한 곳에 앉아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금 떨어져서 짧고 뽀글거리는 머리에 깊게 주름이 팬 그을린 얼굴의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휘휘 저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멀찌감치 서 있던 할머니들이 그 작은 몸을 푹 눌러서 찌그러뜨릴만큼 큰 짐을 머리에 이고 그 뒤를 따랐다.


우리는 낯선 세상와 와 있었다.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매일 저녁 티비로 보던 전원일기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끝이 저려왔다.

동생이 슬슬 엄마를 찾을 즘에 멀리서 양 손 가득 물건을 들고 뛰어오는 엄마가 보였다. 그 뒤를 따라오는 아빠의 양 손에도 짐이 가득 들려 있었다.


'다행이야'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낯선 곳에서 혼자 아니면 어린 동생과 둘만 남겨진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헐레벌떡 뛰어오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주변을 지키고 있던 어른들도 한시름 놓는 듯 말을 걸기 시작했다.


"서울 애기들이 놀러왔구나"

노래하듯이 내뱉는 말투.


"어디 왔는교?"

"할머니 댁에요"

"아이고 예쁘다. 잘 놀다가요"


머리가 용수철처럼 꼬불꼬불한 할머니는 까칠까칠한 손으로 사탕 몇개를 건넸다. 손에 꼭 쥐고 있었는지 사탕껍질이 따끈따끈했다. 머리에 올린 양동이를 손으로 잡지도 않고, 바깥으로 휜 다리를 절뚝이며 어디론가 걸어갔다.

양 손을 휘휘 저으며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는 거겠지?


'여기 할머니들은 왜 다 존댓말을 해?"

"그게 사투리야"

"사투리가 뭐야?"


농암 시내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가기 위해서 우리는 작은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정류장에 쌓인 양동이와 보자기로 싸맨 짐보따리를 먼저 차에 실었다. 허리가 ㄱ자로 구부러진 할머니들은 이름표라도 붙은 듯이 자기 짐이 놓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엄마~ 놀이기구 타는 거 같아"

좁은 길고 덜커덩 덜커덩 달리는 버스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동안 우리는 킥킥 거리며 웃어댔다. 어마어마한 멀미를 겪고 나니 이 정도 흔들림 쯤이야 별거 아니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터미널 앞에서처럼 저마다의 목소리가 높아 무슨 말을 나누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나는 그만 포기하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을 타고 누릿한 거름냄새가 풍겨 들어왔다.


"우왁" 동생이 두 손으로 코를 막았다.

나는 큭큭대며 창문을 닫았다. 창문 밖으로 평화롭게 펼쳐진 푸릇한 풍경의 냄새가 똥 냄새라니...


문 앞에 앉은 사람부터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어떻게 알고 먼저 내리는 사람의 짐부터 문 앞에 두었을까? 차례대로 타고 앉으면 되는 것을 버스에 타는 사람들의 짐을 드문 드문 놓던 모습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흘깃흘깃 보던 시선들은 손에 손을 거쳐 옥수수, 계피맛 사탕으로 전달되어 왔다. 껍질을 까지도 않았는데 강한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엄마아~"

사탕을 건네고 바라보던 눈동자들이 버스에서 내려 밭과 밭 사이, 논과 논사이에 난 외길로 걸어갈 때까지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던 사탕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넓은 길이 좁은 길로, 아스팔트 포장이 깔려 있던 길이 시멘트 길을 지나 돌이 튀고 흙먼지가 날리는 울퉁불퉁한 길로 들어서는 동안 버스에는 우리만 남았다.

급기야 버스는 차가 갈 수 없을 것 같은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유리창에 나뭇가지가 드드득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막다른 산길에서 버스가 시동을 껐다.


"다 왔다"

자갈돌이 잔뜩 깔린 흙길. 샌들 안에 신은 하얀 양말 사이로 흙먼지가 들어와서 발가락이 간질간질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도 나무 밑에 버스를 세워둔 채 작은 가방을 들고 우리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어디가? 아저씨 집도 여긴가?"

"여기 산골이라 여기서 주무시고 새벽에 버스 출발하는 거야"


무릎 높이로 자란 잡초가 여기저기 줄기를 뻗고 있었다. 종아리에 풀이 스칠때는 몰랐는데 금새 빨갛게 부풀어오르고 따가웠다.


"아유, 풀독 오르겠다. 풀 없는데로 걸어"


길이 아닌 곳에는 아빠 키만큼 자란 풀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엄마~"

"어머니~ 저희 왔어요~"


휑하니 넓은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무로 만드느 오래된 집은 고요하기만 했다. 아빠는 대청마루에 짐을 올려두고, 집 뒤로 사라졌다.


"어디? 산에 가셨나?"


어린 손주들이 대문에 들어서면 아이고 우리 강아지들하며 반가운 얼굴로 달려나와 안아주는 할머니는 TV에나 있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 대청 마루에 앉아 다리를 흔들어 대니 멀리 보이는 산등선과 푸른 하늘이 왔다 갔다, 그네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당 한 쪽 키가 큰 나무 밑 흙바닥에 작은 공 같은 것들이 펼쳐져 있었다. 야구공만한 크기에 검고 단단한 모양이었다. 하얀 샌들바닥으로 살살 굴려보니 검고 푸릇한 껍질이 짓물러 있었다.


아빠가

"그거 만지지 마. 물들면 안지워져"

"이게 뭔데?"

"호두야. 그 안에 단단한 껍질이 들어있어. 이렇게 말려서 겉에 껍질 벗기면 딱딱한 호두껍질이 나오는 거야. 옷에 물들일 때 이 말랑한 껍질을 으깨서 염색하는 거야"

"껍질로 물을 들여?"

아빠가 손가락으로 껍질을 조금 떼어 비볐다. 손가락이 금새 진한 보라색으로 물이 들었다.

"이봐. 안지지?"

"보라색이네. 와~"


동생과 나는 물감이 아닌 것으로도 색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아빠 손을 검게 물들인 것을 보고 도저히 손으로 만질 용기가 없어 그 검고 둥근 것에서 보라색을 찾아내려고 빤히 들여다봤다.


나무틀에 한지를 붙인 문은 힘을 주어야 꺽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머리를 조금 숙이고 들어가야 할 만큼 낮은 문 안은 어둡고 쿰쿰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밥이나 먹자. 밥은 해 놓고 가셨겠지"

아빠가 집 주변을 살피는 동안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엄마를 따라 컴컴한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너무 어두워서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정 어딘가에 작은 알전구 하나가 매달려 있었는데 불을 켜든 끄든 실내는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눈이 밝아진 후 검게 그을린 아궁이에 걸려있는 커다란 솥 두 개가 보였다. 절대로 맛있는 음식을 지을 수 없을것만 곳이었다. 아궁이 반대쪽에는 다듬지 않은 나뭇가지가 어른 키만한 높이로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이게 부엌이야?"

"불 때서 밥하는 거야. 여기에 나뭇를 넣고 불을 붙이면서 음식도 하고 방도 데우고. 이게 아궁이야"

"어떻게 불을 때?"

"그러게. 엄마도 시집와서 처음 봤어. 밥솥에 밥은 있더라. 배 고프지? 아까 사온 거 꺼내서 그냥 먹자"


가끔씩 TV를 보다 아빠는 우리 어렸을 때 저랬어. 책보에 책을 둘둘 말아갖고 메고 다녔어. 십리씩 걸어서 학교가고.. 하고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곧장 난 안 그랬어. 책가방 메고 다녔지. 전차 타고. 밥도 석유 곤로에 해 먹었어.

아빠는 집이 가난하고 엄마는 부자였냐고 물으면,

아빠는 그땐 다 그렇게 살았다고 하고 엄마는 서울에서는 그렇게 안 살았다고 했다.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다른 시대에 산 듯한 그들의 이야기는 돌림노래처럼 매번 같은 방향으로 맴돌았다.


나뭇짐을 쌓아놓은 먼지나고 그을은 부엌을 둘어보면서 나는 아빠의 어린시절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서울 우리 동네는 흙길은 커녕 골목길까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고 넓은 도로에는 버스, 택시, 자가용이 끊임없이 다녔다.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 학교에 갔고, 갓구운 빵을 파는 백조 제과와 문방구, 조금만 걸어가면 멋진 분수와 잔디밭이 있는 어린이 대공원도 있었다.

이런게 서울과 시골의 차이라는 걸까?

그렇더라도 서울만 다 좋고 시골은 다 별로인 것도 아니었다.

바람이 숭숭 지나다니는 반질한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계곡물 소리, 풀 벌레 소리가 들리고 날이 어두워지면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가 방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밥만 먹고 나서면 우리끼리만 실컷 놀 수 있는 계곡이 있고, 한낮과는 달리 아침에는 덜덜 떨릴만큼 기온이 차가웠다.

새콤 달콤한 스파게티아 라면은 없어도 바로 따서 쪄 먹는 옥수수와 달콤한 꿀물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도 맛있었다. 말랑말랑한 우리집 치약과 달리 딱딱한 금속 튜브로 된 시골 치약은 짤 때 손이 좀 아프긴 하지만 왠지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라 재밌었다. 할아버지 댁에서는 전원일기에나 나오는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다. 은색에 꽃무늬가 그려진 양은 밥상, 팔각형 성냥, 보라색 고무슬리퍼, 빳빳한 휴지...


마루에 놓인 전기 밥솥에서 갓지은 하얀 밥을 푸고, 캔에 들어있는 장조림과 김을 두고 밥을 먹었다. 투정을 부릴만한 상차림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말없이 밥을 먹었다. 엄마의 얼굴이 왠지 부루퉁해 보였기 때문에..


딱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손을 휘적거리며 마당을 가로지르는 할머니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상했던 장면을 아주 살짝 기대하면서.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당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컸는데도 할머니는 듣지 못했나 보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할머니는 손에 든 작은 광주리를 허리에 고쳐 메고 있었다.


"산에 가지!"


"애들 데리고 온다고 했으면 집에 좀 있지, 그래요?"

아빠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지만,

할머니는 뭔가를 잘근 잘근 씹는듯이 얼굴을 일그러 뜨리며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산에 가요! 지금 지척으로 널렸는데 가야지! 뭐해요!"

"허, 참!"


엄마는 말없이 밥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왠지 눈물이 찔끔 났다.

역시나..

한껏 일그러뜨린 얼굴로 소리치던 할머니가 풀숲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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