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골
"아이 추워"
이불 안에서 몸을 바짝 웅크렸다. 코끝이 시큰하게 차가웠다. 몸을 아무리 작게 만들어도 좀처럼 온기가 생기지 않았다. 머리까지 이불을 덮은 동생은 등 뒤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자꾸만 파고 들었다.
"이히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낮에는 물놀이를 할만큼 더운데 아침은 추워서 이불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 재미있기만 했다.
"춥다 크크"
"흐흐 맞아, 너무 춥다"
잠은 벌써 한참 전에 깼다. 우리는 이불만 끌어덮은 채 일어날 채를 하지 않았다. 어제 아침과 똑같을 오늘 아침이기에. 한기가 조금 가시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그대로 있을 참이었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맞은 아침.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하얀 연기가 자욱해서 마당도, 맞은편의 헛간도 보이지 않았다.
'불이 난건가?'
냄새도 없고, 눈도 맵지 않은데 하얀 연기는 서늘하고 축축한 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잠이 덜깨서 냄새가 나지 않는 걸까? 불이 났다면 큰 일인데,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멀리서 새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청마루 밑에 놓인 신발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젖어서 뻑뻑해진 신발에 발을 욱여넣었다. 반질반질하던 대청 마루가 뿌옇게 변해 있었다. 손으로 살짝 문지르니 물기가 주르륵 흘렀다. 잠깐 앉은 새에 엉덩이가 기분 나쁘게 젖었다. 엉덩이를 툭툭 털며 돌계단 두 개를 내려 마당에 발을 디뎠다. 발바닥에 진흙이 진득 진득하게 달라 붙었다. 머리카락에 이슬 방울이 맺히더니 젖은채 이마에 달라붙었다.
공기 중에 투명하게 떠다니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 미세한 입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미세하고 축축한 입자로 뒤덮인 마을 전체가 구름 속에 들어앉은 것만 같았다.
마당 너머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산도 보이지 않고 밤새 마을은 '다락골'이라는 이름처럼 땅으로부터 들려 올려져 구름과 마주하는 만화속 마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이슬 맞게 왜 나와요! 옷 다 젖는다 아이가?"
어디선가 머털도사가 나타날것만 같았는데, 윽박지르듯 내지르는 소리에 나는 그만 눈물이 찔끔 났다.
엄마가 당황한 얼굴로 부엌이라고 불리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뒤따라 나왔다.
"여긴 아침에 이슬 내려서 다 젖어. 방에 들어가자. 추워서 감기 걸릴라"
며칠을 들어도 납작하게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아랫니를 드러내고 내지르는 할머니의 말투는 속이 상했다.
배꼽까지 축 쳐진 가슴, 그 가슴 바로 아래까지 치켜 입은 형형색색의 고쟁이.
할머니는 대청 마루에 앉을 때면 고쟁이 안에 손을 넣어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꺼낸 작은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어 둘둘 말아넣은 지폐덩어리를 세어본 후 다시 말아 넣어두었다. 우리는 혹시나 한 장 쑥 뽑아서 "옛다. 맛있는거 사 먹어라"라고 할까 하는 기대도 해보았지만 지폐는 고쟁이 속 주머니에서 단 한장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침 이슬이 얼마나 매서운지 살 속으로 박힌 한기는 한낮이 되야 가셨다. 풀 잎에 맺힌 이슬 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그 바람에 진득해진 발간 흙이 튀어올라 잎파리를 얼룩덜룩하게 만들면 한낮의 햇볕이 모든 수분을 빨아들였다.
시골에 온 다음날 연보라색 반바지에 풀물이 들고, 새로 산 하얀 샌들은 붉은 흙물에 얼룩이 졌다.
옷도 신발도 이렇게 다 망가지면 집에 돌아갈 때 창피할까봐 나는 아직 입지 않은 옷을 가방 밑바닥에 다시 접어 넣었다. 신발은 더이상 어쩔 수 없이 망가졌다. 흙물 들을까봐 할머니의 보라색 고무 쓰레빠를 신고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수풀을 헤치고 갈 때 자꾸만 벗겨져서 자갈길, 풀숲 길을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침 먹고 나면 우리는 계곡에서 놀다가 저녁에나 들어오니 할머니의 찌그러진 깡통같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다.
할머니와 엄마, 우리가 함께 먹는 상에는 김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하얗고 뜨거운 밥에 재운 김과 나물 몇가지, 김치, 올라올 때 사온 캔에 든 장조림이 전부였지만, 할아버지 상에는 야들야들한 계란 후라이와 참기름을 두른 명란젓이 놓였다.
"흐흐, 참 좋은기라"
할아버지는 가느다란 젓가락으로 명란젓을 조금씩 떼어 드셨다.
우리집에서는 다 같이 한 상에서 같은 반찬을 먹었는데, 맛있고 기름진 반찬은 할아버지 상에만 올라가고 할아버지는 양보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반찬 투정을 해볼까도 했지만 마트도 없고, 시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얼만큼 가야하는지도 모르니 투정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흰 밥, 김, 장조림, 찐 옥수수, 복숭아, 계곡에서 잡은 다슬기, 설탕을 잔뜩 뿌리면 먹을만한 찐 감자와 웃집 할머니가 만들었다는 부슬부슬한 두부. 큰 통 속에서 털이 몽창 뽑힌 닭고기..
그럭저럭 시장에 가지 않아도 먹을만한 것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자고 했다. 장이 서는 날이라며. 마트는 건물 안에 있는 것인데 장이 선다는 말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가게를 떠올려봤다. 요술처럼 생겼다 사라진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이 곳은 동화속 세상인 것만 같다.
할머니도 아침부터 큰 대야에 말린 고사리와 나물, 버섯을 담아 두었다. 대야보다 높게 쌓아올리고 보자기를 덮어 끄트머리를 대야 안에 꼭꼭 끼워넣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다. 서로 뭐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전화도 없는데, 버스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짐을 싣는 할머니를 기다렸다 시동을 켰다.
다락골.
머털의 스승이 살던 신선 마을처럼 기둥같은 절벽 위에 섬처럼 올려져 있는 마을. 머털이는 도사가 염력으로 그 절벽을 내려왔겠지만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락골 할머니들과 돌길을 달려 내려갔다.
자갈과 흙이 뒤섞인 고르지 못한 길을 달리는 버스 안의 물건과 사람이 통통 튀어 올랐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산허리를 내려가도록 버스 안에서 통통 튀어 오르니 엉덩이가 아파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버스는 오르고 내리는 길을 반복해서 산 속 마을 구석 구석을 지나갔다. 엄마와 우리는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가 버스 문 맨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짐과 함께 한 사람씩 태운 버스는 이제 앉을 자리가 없을만큼 가득찼다. 그래도 버스에 자리가 없어서 타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겠노라 그냥 보내는 사람도 없었다.
산골짜기를 굽이 돌아 햇볕이 가득한 작은 마을에 들어섰을 때였다. 자리는 한 두개 남아있었고 대부분 짐을 갖도 타는 할머니들이라 우리는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 불안해졌다.
새 둥지처럼 아늑한 모습의 마을이었다. 좁은 골짜기 안에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마을에 따뜻하고 밝은 빛이 잔뜩 내리쬐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이 햇볕에 투명해져 계란 노른자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 노란 주황빛이 눈 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버스 문이 열리고 하얀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쪽을 진 할머니가 올라섰다.
시골할머니 치고 고생없이 곱게 산 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햇볕 가득한 마을에서 고운 할머니가 타는 순간 나는 동화속 마을에 온 것만 같았다.
찌그러진 깡통같은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아이고! 어떡하나!!!!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아이고오!~~~~~~~"
할머니는 아주 신이 난듯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맨 앞자리에 앉아서 타는 사람들마다 참견을 해대고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가 아는 사람이 많은게 신기했지만 그 누구도 할머니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내 그저 혼자하는 참견이구나 생각했다.
동화마을의 고운 할머니는 당당하고 고귀한 자세로 한걸음 한걸음 버스에 딱 하나 남은 자리에 와서 앉았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길 기다렸다 버스가 출발한 후에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혀를 차던 할머니는 곱디 고운 할머니를 향해 몸을 돌려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고 저걸 어떡해!!!! 아이고!!! 세상에나 세상에. ㅉㅉㅉㅉㅉㅉㅉㅉ"
버스 안에서 가장 먼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우리 셋은 모두 조금 더, 조금 더 멀리 떨어질 방법을 찾아 엉덩이를 뒤로 밀었다. 우리가 동행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채면 어쩌지? 걱정이 밀려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너희 할머니지?" 하고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확실히 알고 있다. 우리가 동행이라는 것을. 가족이라는 것을.
아닌 척, 모르는 척 해보았자, 어쩔 수 없는 가족.
곱디 고운 할머니는 찌그러진 깡통같은 할머니의 얼굴과 말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듯 고고한 학처럼 몸을 꼿꼿하게 세운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풀을 먹이지 않아 후들거리는 모시 치마 저고리도 할머니의 흰머리처럼 적당하게 빛이 바래 있었다.
고운 할머니는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는 마을쯤에 내려서 마을로 향하는 긴 논두렁 길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모시 치마 아래로 내린 하나의 다리와 목발을 번갈아 짚으며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찌그러진 깡통같은 우리 할머니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얼굴을 내밀고 혀를 차고 있었다. 헨델과 그레텔이었다면 당장에 화덕 안으로 밀어넣듯 버스 밖으로 내동댕이를 쳤을 텐데. 열한살의 나는 그저 부끄럽고 화만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