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에헤, 문지방에 앉지 마라"
방은 대청쪽으로 문이 한 개, 맞은편으로 그보다 작은 문이 한 개 나 있었다. 작은 문을 열면 한사람이 앉을만한 쪽마루가 있고 뒷마당이 보였다. 문은 어린아이나 드나들 수 있을만한 크기로 바닥에서 높게 나 있어, 문지방에 걸터앉기 좋았다.
문이 열려 있지 않아도 우리는 밭은에헤, 문지방에 앉지 마라"
방은 대청쪽으로 문이 한 개, 맞은편으로 그보다 작은 문이 한 개 나 있었다. 작은 문을 열면 한사람이 앉을만한 쪽마루가 있고 뒷마당이 보였다. 문은 어린아이나 드나들 수 있을만한 크기로 바닥에서 높게 나 있어, 문지방에 걸터앉기 좋았다.
문이 열려 있지 않아도 우리는 밭은 문지방을 의자 삼아서 앉았다. 이 집에는 의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자 마자 손수 조릿대를 엮어 만든 조랑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올 때는 허리춤에 맨 보자기에 한가득 무언가를 담아와서 마당에 휙하고 내던졌다. 아무렇게나 던져둔 것은 고르게 마를 수 있도록 대충 펼쳐두었다. 마당에 대충 내던져진 고사리나 산나물이 바싹 마르면 억새같은 손으로 둥그렇게 말아서 장에 나가 팔았다. 다른 사람들은 말리는 동안 손으로 펴고 모양을 잡아서 좋은 값에 팔지만 할머니는 마당에 던져둔 대로 말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것보다 색이 어둡고 쪼그라들어 더 작고 말라 비틀어져보였기에 헐값에 팔았다며 심통을 냈다.
볼이 넓어 남자 고무신 밖에는 못 신는다며 양말도 없이 고무신만 신고 산으로 들로 나가는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좀처럼 방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
들큰한 담배냄새가 잔뜩 밴 작은 방에 앉아서 하루종일 무언가를 했다. 하루종일 방 안에 있는 할아버지가 무얼하는지 궁금해서였을까?
우리는 담배냄새 자욱한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흐흐흐"
웃을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자주 혼자 웃었다. 작은 잔에 믹스커피 한 잔을 타 놓고 책장을 한 장씩 넘기고 있었다.
책 장 사이에 끼워 말린 넓적하고 노란 잎파리를 한 장 꺼내 돌돌 말았다. 손톱이 뾰족하게 자란 긴 손가락은 아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책장만한 크기의 잎파리를 말아서 눌러놓곤 검지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 얇은 종이 한 장으로 그것을 감싸 말았다. 똑같은 순서로 할아버지는 노란 잎파리와 종이를 3개 말아서 책장에 올려놓았다.
"흐흐, 오늘이 국치일인기라, 흐흐"
"그게 뭐예요?"
"국치일이라."
TV 화면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출연자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조금 떠들자, 할아버지는
"어흠"하며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본인 출연자가 말을 멈추자 할아버지는 "흐흐흐"하고 또 웃었다.
"할아버지 일본말 아세요?"
"그럼"
"어떻게 알아요?"
"학교를 다닌기라"
와~ 우리 할아버지는 책도 많이 읽고 일본말도 할 줄 안다. 이런 산골에 살아도 유식한 사람이었다.
몇년 전 할아버지가 서울에 살러 올라왔을 때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한문책을 상자 몇 개에 넣어 오셨다. 보지도 않는 책을 맨날 들고만 다닌다며 작은 아빠가 할아버지 몰래 책상자를 학교에 기부했다가 날벼락을 맞고 책을 다시 찾아왔다.
할아버지는 커피를 홀짝이며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누렇게 변한 책장을 넘겼다. 작은 책장에는 낙서인지 그림인지 모를 것들이 적혀 있었고 할아버지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흐흐하며 웃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책상 옆에 놓인 벼루, 먹, 붓이 담긴 나무함과 그 옆에 가지런하게 쌓아놓은 고서, 무게가 느껴지는 나침반. 할아버지는 그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것 같았다. 먼지라도 되어 날아갈까봐 한여름에도 뒷문만 열어놓은 채 어두컴컴한 방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 온 환한 빛에 유유히 떠다니던 먼지가 빛을 내며 휘몰아쳤다.
"저 놈의 영감쟁이, 또 저러고 앉아 있네.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뭐한다고 맨날 저 지랄일까? 빨리 안 해요?!"
"허허"
할머니의 악다구리에 한마디 변명도 못하는 할아버지는 눈썹을 한껏 끌어올렸다. 길쭉한 얼굴, 쌍꺼풀 진 눈, 큰 키. 젊었을 때 한 인물했다는 할아버지가 늘 품고 다니는 증명 사진은 정말 잘생김 그 자체였다. 인도에서 온 왕자라고 해도 믿을만큼 이국적인 외모에 늘씬한 체구. 시골 양반집 외동 아들로 자라 부족함없이 풍족하고 여유롭기만 했다는 할아버지를 할머니는 지독히도 미워했다.
"저 놈의 영감쟁이. 게을러 빠져서리. 나무도 하나 안 해놓고 저래 쳐 자빠져 있다. 다른 집 가봐라. 지금 나무 안하면 언제 하노? 나무를 해놔야 겨울 날거 아니가?"
경상도 사투리와 황해도 사투리를 섞어서 사용하는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만은 존대말같은 사투리 대신 욕이 섞인 분노를 쏟아냈다.
"저 놈의 영감쟁이, 맨날 저렇게 홀짝이고만 있지! 젊었을 때도 게을러 빠졌더니 늙어서도 저 지랄이라. 내가 말 안하면 알아서 하는 게 없다. 평엉생을! 젊었을 땐 나를 어찌나 두들겨 패는지 내가 그만 살아야지. 우리 아바이 어마이한테 가야겠다 하고, 시어매도 나를 그리 구박해서리, 들 일만 시키고! 근데 어마이 얼굴을 어찌보나 싶어 그만, 계곡에 몸을 던졌다. 근데 야~ 누가 날 살리주더라. 물에 빠져서 이리 막 허우적 대는데 어떤 동자가 날 요리 요리 꺼내서 건져주더라, 그래 내 살았다. 안 그랬으면 진작에 저승갔다. 저 영감쟁이랑 살지도 않았어. 그 때 내 애기씨가 들은 줄 알았다."
밤이면 할아버지 때문에 부화가 치민다며 할머니는 엄마를 붙잡고 옛날에 구박받고 살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초시는 보지 못했어도 동네에서 진사 대접을 받았다는 증조할아버지와 연백에서 백석꾼이었다는 외증조 할아버지는 정감록에 심취해 가산을 정리하고 한 산촌에 들어와서 만났다고 했다. 같은 이상향을 품은 두 유학자가 혼약을 맺어 이어진 인연이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내 어렸을 때 딸아가 나 뿐이어서 아자씨들이 얼마나 나를 이뻐했나 몰라요. 맹절마다 설빔해 입고 요래 동네에 나가면 다들 내보고 애기씨 애기씨 하고 아바이들이 딸아가 나 하나라고 애지중지했는데, 저 놈의 한량같은 영감쟁이 만나서 이날 입때껏 요럿코 살아요"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매일 밤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엄마는
"그런데 왜 애를 그렇게 많이 낳으셨어요?"
우리는 할머니가 깡통같은 소리를 지를까봐 겁이 더럭났지만, 할머니는 세상 온순한 목소리로
"그기야. 낳고 싶어 났나? 생기니까 났지"
"그렇게 구박하는데 뭐하러 자식 많이 낳고 사셨어요?"
엄마는 약한 사람 앞에 약하고 강한 사람 앞에서 강한 여자였다. 웃음 띤 얼굴로 놀리듯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큭큭 웃으며, 엄마가 만들어 놓은 간식을 먹으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엄마가 할머니보다 세다'
동생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큭큭 웃었다. 이럴 땐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