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
첩첩 산중.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안으로 구름이 들어차더니 슬금 슬금 퍼져 나갔다. 하얀 구름떼는 뾰족한 산머리까지 집어 삼키고 산이 바다가 되는 운해의 풍경을 만들었다.
구름은 온 천지를 뒤덮고 마당까지 들어왔다. 바들바들 떨리게 기운이 서늘하고 물방울이 뚝 뚝 내려 앉아도구름 사이를 슬렁슬렁 걸었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물주머니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흙덩이에 폭. 풀잎에 톡. 머리카락에 툭툭 부딪혀 터져버린 물주머니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피부의 온기로 나는 힘을 잃고 보송보송 맺힌 물방울을 손바닥으로 쓱 쓸어서 탁탁 털어냈다.
'추워도 괜찮아. 젖어도 좋아. 나는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있어.'
"뭐한다고 저래 다녀요! 다 젖어뿌잖아!"
신령하고 아름다운 구름 속의 산책이었는데...
촉촉하게 적시던 이슬 방울이 예리한 얼음으로 변해서 요란스럽게 깨져버렸다. 찌그러진 깡통같은 목소리와 위아랫니를 드러내며 잘근잘근 씹듯이 말을 쏟아내는 얼굴에 마구 두들겨 맞은 것만 같았다.
'오늘은 할머니 얼굴을 보지 않을거야'
아침을 먹고 나면 어차피 할머니를 볼 새가 없다. 각자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땅을 적시고, 풀을 적시고도 내려갈 곳을 찾지 못해 떠다니던 물주머니들은 한낮 볕에 증발해 버린다. 물주머니들이 햇볕에 끌려올라가면 그늘 밑에서도 눈이 시릴만큼 모든 것이 밝고 선명해진다. 따뜻해질 때를 기다려 우리는 가방에 먹을 것을 주렁주렁 담아서 길을 나섰다.
할머니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바위 그늘 아래 큰 계곡이 있었다. 물이 깊지도 얕지도 않아서 튜브를 타고 놀기 맞춤이었다. 바위그늘에 놀러오는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다락골에 우리 또래 아이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 아이들은 우리와 같이 놀지도 마주치지도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서울 아이와 시골 아이와 어울려서 여름 방학을 보내기도 하던데, 다락골 아이들은 길에서 몇 번 마주쳐도 우리를 본체 만체했다. 한 번은 좁은 오르막 길에서 소를 몰고 내려오는 남자아이와 마주쳤다. 길을 꽉 메울 정도로 거대한 황소를 아이 혼자 끌고 내려갔다. 소가 산으로 도망쳐서 잡아 오는 길이라며 소를 혼내고 있었다. 소도 분을 삭히지 못했는지 발굽으로 땅을 땅땅 치며 억지로 밀려 내려왔다. 햇볕에 그을려서 눈만 반짝이던 아이는 겁도 내지 않고 소를 쳤다.
나는 한 번이라도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싶었다. 마을에 아이가 우리 둘만 있다는 것이 왠지 서운하고 외롭게 여겨져서 같이 물놀이도 하고 산에도 올라가면서 친해지면 긴 여름방학이 조금이라도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했지만,
어쩌다, 아주 우연히 마주친 다락골 아이들은 저희들끼리만 얘기하고 눈을 마주쳤다.
까만 얼굴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는 마치
'서울에서 왔다고 까불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매서웠다.
흙물이 들어 거뭇하게 변한 샌들은 시골길에서 자꾸만 미끄러져서 줄이 끊어질것만 같았다. 아무데서나 휙 벗어 놓을 수 있는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튜브를 메고 간식거리를 들고 오늘도 물놀이를 나섰다.
막내 고모는 고모들 중에 제일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마음은 착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자리를 얻지 못해서 시골집에 내려와 살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우리 막내가 일곱살때 천자문을 줄줄 외며 똑똑했었다는 얘기를 했지만, 모두들 그 땐 그랬지...할 뿐이었다.
공부는 못해도 막내 고모는 마음씨가 착해서 할머니 대신 온갖 집안일에 우리들까지 보살피면서도 화 한 번 안내고 잔소리 한 번 없이 밥상을 차리고 간식을 내오고, 개울에 가서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바위그늘은 넓은 수영장처럼 물이 넉넉히 많고 깊었다. 완전히 고여있지 않고 어디론가 들어오고 나가는 물길이 있었기에 물은 항상 깨끗하고 미지근했다. 바닥은 고운 모래로 맨발로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았다. 물 위로 바위가 불룩 튀어나와 동굴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그늘이 있어 좋았다. 튜브를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며 노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게 몇시간이고 놀 수 있었다.
바위그늘 아래 물에서 놀고 있을 때 바위 위에서 보고 있던 고모가
"뱀! 배앰!"하고 소리를 쳤다.
사람있는 곳에는 뱀이 안 나타난다고 했는데, 겁 없는 뱀 한 마리가 우리들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헤엄치며 지나갔다. 뱀이 물살을 가르고 바위를 타고 올라간 후에야 뱀이었다는 것을 안 우리는 그제야 물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언제 뱀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걱정에 바위그늘이 아닌 다른 물놀이터를 찾기로했다. 뱀은 어디든 갈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할아버지 집에서 한참 걸어 사람이 조금 많고 물도 얕은 계곡으로 내려왔다. 물이 고여서 깊은 곳도 있었지만 흘러내리는 계곡이라 뭍이 얕고 폭이 좁았다. 전용 수영장 같은 곳을 두고 바닥에 닿아서 튜브가 찢어질까봐 걱정하며 슬금슬금 바닥을 짚고 헤엄쳐야 하는 물놀이였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물 사이로 다슬기를 잡고 물에 깎여 동글동글해짐 돌멩이 사이로 투명한 보석같은 돌을 찾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 속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에잉!
할아버지가 여기 왜 오셨지?
중절모를 비스듬히 쓰고, 긴 여름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가 바위 위에 앉아계셨다.
"흐흐 좋은기라"
할아버지는 삼복 더위에도 땀을 흘리지 않았다. 평생 감기 한 번 걸린적도 없고, 어디가 특별히 아프지도 않고, 평생 일도 하지 않고 고생도 없이 살았다고 했다.
물 안에 있으면 입술이 파래질만큼 춥고 닭살이 돋는데, 물 밖에 나와 앉아 있으면 햇볕이 따갑고 땀이 뻘뻘 난다. 그런 날씨인데도 할아버지는 물에 손 한 번, 발 한 번을 담그지 않았다. 나무 밑 그늘에서 해만 피할 뿐.
"흐흐 좋은기라"
막내 고모가 옥수수를 반으로 잘라 건넸다. 할아버지는 손으로 슬쩍 치며 옥수수 대신 담배를 태웠다.
'아휴.... 왜 여기까지 오셔서 담배 피우시는 거야? 숨 막혀'
쪼그려 앉은 자세로 담배를 태우던 할아버지가 나무 그늘아래서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셨나?
물길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악! 와 그래요?"
볕이 내리쬐는 너른 바위 위에 누워있던 미화 고모 목소리였다.
미화 고모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수영복처럼 짧은 바지를 입고 바위 위에 엎드려 있는 고모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와그러는데요? 사람한테?"
"어허?"
항상 웃고 있어도 왠지 무서운 할아버지가 눈썹을 치켜 올리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할머니한테 호되게 당할 때만 웃지 않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웃지 않을 뿐더러 화가 나 있었다.
"어허!"
할아버지는 선 채로 미화고모를 내려다보며 점점 더 엄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요!"
고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앉은 채 발바닥을 문질렀다.
"앗 뜨거라. 뭐 저런 노인네가 다 있노? 앗 뜨거라"
"와?"
"라이터 불을 갖다댔다!"
우리는 악다구니 치며 핀잔을 주는 할머니와 달리
"어허"하고 눈썹만 한 번 치켜 뜨고 마는 할아버지가 쪼그리고 앉아 고모의 발바닥에 라이터 불을 당기는 모습을 상상했다.
팬티만큼 짧은 바지를 입고 바위 위에 누워있는 고모는 아직 장가들지 않은 삼촌 방의 달력 모델 같았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팬티가 보일것 같아 고모가 누워 있는 곳은 쳐다보지 않고 그 곳에서 가능한 멀리 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깜짝 놀랄 행동에 우리는 모두 미화 고모 옆에 모여 섰다.
막내 고모가 바짓단을 둘둘 말아 무릎 위로 접었다. 튼실한 허벅지가 반바지를 꽉 채우고 있었다.
막내 고모는 바지를 추켜 입어도 달력 모델 같지 않았다.
하지만 미화 고모의 가늘고 구부러진 눈썹과 쌍꺼풀진 눈매 가무잡잡한 피부는 한 번 보고 다시 바라보게되는 끌림이 있었다.
예쁘지는 않았다. 그저 다시 바라보게 되는 모습이었다.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며 예쁘다고 얘기하는 탤런트들과는 미화 고모는 달랐다. 눈이 시려서 눈꺼풀을 반쯤 내리고 바라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락골에 와 있는 동안 미화 고모는 한 번도 할아버지 댁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어디서 지내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할아버지 댁에서 멀리 내려왔을 때에만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집에서 멀리 내려왔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따라오시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우리를 특별히 귀여워하는 것같지도 않고, 챙기지도 않으면서 늘 우리가 노는 곳 주변에 앉아 계셨다.
미화고모를 보고 할아버지는 화가 났을까?
고모의 발바닥은 화상을 입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할아버지의 행동에 놀랐다. 상상해본 적 없는 행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 순간을 보지 않았는데도 상상하고 마치 일어나는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는 듯이 생각한다.
고모는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어디서 지내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면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장난이었을까?
왜 그랬는지 할아버지께 물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둔 채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벼루함이 깨진 이유가 미화고모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할아버지가 고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순간 자식이 아홉명이나 되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졌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모든 아이들이 다 사랑스러울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아홉 명의 자식을 모두 아끼고 사랑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가기 전에 꼭 들러서 가는 고모할머니와 할머니가 우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가마솥에 갓지은 밥에 산에서 나는 온갖 버섯과 나물을 끼니마다 다른게 내고, 시골이라 고기가 없어서 어쩌냐고 얼굴에 주름을 잔뜩 만들며 미안해하는 표정과.
저녁상 물리고 나면 항아리 안에서 살짝 언 홍시와 찐 고구마를 내오고 포실포실하고 달큰한 술떡을 해놓고 기다리던 고모할머니.
고모 할머니가 진짜 우리 할머니였으면....
고모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와 이리 오랜만에 왔노? 아이고 요래 이쁘게 컸네"하면서 주전부리를 내놓으며 이런 저런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고모할아버지가
친손주를 챙기는 모습은 더 각별했다.
밤새 안고 잔 손자를 이른 아침 깨끗하게 이부자리를 갠 방에서 무릎에 앉혀 놓고 책을 읽어주시던 모습에 나는 어떤 경외감과 감동, 부러움을 느꼈다.
자식이 너무 많으면 사랑도 줄어드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미화 고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