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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메간 Nov 14. 2022

아프니까 청춘이면 우리 할머니는 이팔청춘

버티는 게 최선이 아닐 때도 있어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중


"메간아, 아직 나의 계절은 오지 않은 걸까?"


애석하게도 고3 시기와 비슷하게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출판되었다. 수능특강을 다독해도 모자를 때였지만 그 책은 우리 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수시철이 되고 열개씩 원서를 넣었던 친구들 불합격 소식 하나씩 들려왔다. 그 친구들은 불합격 소식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며 엉엉 울었다. 위에 인용한 글도 한 친구가 울먹이면서 감동적이라고 쉬는 시간에 읽어줬던 글귀다. 오랜만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검색하니 바로 나온 구절인데 거의 10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반가웠다.


그때 저 글귀를 읽어준 친구에게 이렇게 답해줬던 거 같다.


"19살이면 이미 꽃필 나이아냐? 수시보고 인생 끝낼 거 아니잖아.  수 있어. 다음 면접 준비하게 코코팜 사 먹고 기운 차리자."



이 책과의 인연은 고3에서 대학으로 이어졌다.

대학교 1학년 1학기에 전공 관련해서 학개론 수업  듣게 됐다. 40년 이상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시다 은퇴하시고 명예교수로 오신 분이 우리 강의를 담당하셨다. 그분은 어차피 이번 학기에 배울 내용을 4년 동안 또 나눠서 배울 텐데 지금부터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수업과, 인생 얘기의 비율 5:5로 나누어 시간을 쓰셨다.


그리고 내주신 첫 과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A4용지에 자필로 독후감을 써오세요. 분량은 5장 내외면 적당하죠?"였다. 교수님은 그 책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며 우리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과제를 내주셨다.


으, 내가 고3 때 그 책을 읽고 우는 애들을 그토록 달래줬건만 대학 와서 또 그 책과 마주하다니, 거기다 난 그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 데 좋은 점수를 받으려 교수님 입맛에 맞을 독후감을 써야 한다니.


 싫은 건 죽어도 못하는 성격이라 아무리 그 책을 들여다봐도 좋은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명확한 답 없이 무조건적 위로만 건네주는 그 책이, 처음 봤을 땐 위안을 준다지만 아픈 마음을 딛고 일어날 방법을 주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불친절하고 무책임해 보였다.


결국 나는 A4용지 5장을 신랄한 비판으로 가득 채워 제출했다. 다행히 교수님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지 과제 점수가 잘 나왔고 그 과목은 A+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인 김난도 교수님이 내 글을 읽으면 기분이 나쁘실지 모르겠지만(그분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다.) 그 책에 대한 내 생각은 여전하다. 힘든 청춘은 이정표 역할해줄 이가 필요하고, 잠시 쉴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하지, '청춘은 원래 아픈 거야. 좀 참거 견뎌봐.'식의 응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물론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건 오로지 내 생각이다.)


 위로받는 것도 어쩌면 중요할지 모른다. 그만큼 자존감이 낮아질 일도 많고, 스트레스받을 일은 어디에나 있고, 상처 주는 사람은 어떻게는 나에게 상처를 주니까 가끔은 나를 따뜻하게 토닥여줄 누군가, 글귀, 노랫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몇 년간 서점에 나오는 책들의 트렌드도 사람을 위로하는 책들이 다수가 아닌가.


그렇지만 그런 위로의 말에 쓰러질 것 같은 몸과 마음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버티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들면 소리 내어 울어도 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때까지 달려도 보고, 전화는 꺼놓은 채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이렇게 그냥 내려놓고 주저앉아버릴 시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예전에 말했듯 회사가 싫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으니 도망갈 곳 하나는 만들어 놓자. 힘들면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면 어떤가? 사람일 모르는 거다. 조금 늦었다고 좌절할 필요 없고, 남들보다 못하다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보며 울던 친구는 지금 두 아이의 엄마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나는 어쩌다 이과에 가서 이공계 전공을 하고 공인중개사로 살면서 철저하게 워라밸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제 약만 잘 먹으면 사는 데 불편도 거의 없다.


 대학엔 미래가 없다며 한탄하던 친구는 제대 후 자퇴하고 지금 대기업 공장에서 8년근속 중이다. 이번에 우수 근로자로 선정되어 상을 받고, 우리 동창 중에 연봉이 제일 많다.


우울한 당신의 인생은 언제까지나 잿빛일 것 같은가?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혹시 아나?


오늘은 돈 없어서 죽고 싶었는 데 다음날 길에서 주운 로또가 1등에 당첨될지?




내가 다니는 절은 아니다. 하동 갔을 때 찍은 쌍계사.

내가 우울증과 강박으로 심란할 때 할머니 때부터 자주 가던 절의 스님을 뵈러 갔었다. 스님은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날 가만히 쳐다보시다가  이런 말을 했다.


"메간아, 사람 마음은 네모가 아니다. 마음은 둥근 모양이야. 둥글게 태어난 것을 억지로 모나게 틀을 만들 거기에 뭔가 욱여넣으려 하면 마음이 아프지 않겠니? 이미 모난 부분은 잘라서 버리고  다른 것들을 두루두루 덧붙여서 둥글게 둥글게 살아라. 그것이 너도 편할 거다."


동그란 마음으로 살기. 올해 나의 목표였다. 모난 마음으로 내 고집대로 욕심부리지 않고 세상을 둥글게 바라보기. 스님 말대로 하니 마음이 편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여유가 생기니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됐고, 취미로 인해 스트레스가 풀리니 손님들에게 부정적 에너지를 내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여러분도 자신이 만들어 놓은 네모난 마음 때문에 힘들다면 모난 마음을 무시하고 둥근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해보자. 모든 것을 좋게 보란말이 아니다. 도피처를 마련하든, 잠시 쉬든, 아니면 정말 그만 두든, 잠시 유연한 자세로 모난 마음을 품지 않게 풍파를 피해 보자는 거다.


 잠시 쉬어간다고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인생을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앞으로만 나아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은 과감히 무시하자.


청춘은 아프지 않다. 아프면 병이 난 것이니 병원을 가자. 우리는 건강한 청춘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내가 말한 청춘은 0세부터 100세까지 다 해당된다.)




 조울증에 관해하고픈 말은 이걸로 마지막이다. 마지막은 조울증이 꼭 아니더라도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와닿는 말을 하고 싶었는 데 잘 전달되었나 모르겠다.

(MBTI 중 높은 비율의 T이기에 공감성 위로는 잘 못하는 편. 쓰면서 능력치에 한계를 느꼈다.)


에세이는 처음이라 어설프지만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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