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글쓰기에는 답이 없다

[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책을 읽고

by 자청비

대만 천쉐 작가의 『오직 쓰기 위하여』를 읽었다. 현실적인 조언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담담하게 이야기한 책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고, 고난의 길을 지나온 사람만이 정상에서 건네줄 수 있는 말들이 있는 것 같다.



“가장 낮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장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그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좀 더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면 미래를 걱정하느라, 남과 비교하느라 기운 빼지 않아도 된다. 나에겐 나만의 목표가 있고, 나만의 기준과 시간 감각이 있고, 나만의 가치관이 있으니까. 내 마음을 보살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킨다. 검소한 생활이 고생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내 하루하루가 매우 충실하고, 이렇게 분투하는 몇 년 동안 날마다 목표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p21 오직 쓰기 위하여 - 천쉐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올 초에야 비로소 내가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또렷하게 깨달았다.

막연히 “나는 계획을 좋아하긴 하지만, 원래 즉흥적인 사람이야”라고 생각해 왔는데, 친구와 대화하다가 문득 알았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계획적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하루를 시작해 눈을 뜨면, 나는 내가 정해둔 루틴을 따라 움직인다. 아이들도 내 루틴대로 움직여주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늘 예상과 다르게 흐른다. 그걸 내려놓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여전히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어릴 때 나는 남들과 많이 비교했다. 내 안에 ‘나’라는 중심이 없었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나만의 기준과 시간 감각, 가치관이 생겼다.


한 생명을 양육한다는 일은 나의 밑바닥을 마주하고, 내 감정선을 들여다보며,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내 마음을 보살피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 덕분에 나는 ‘자아 성찰’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갖고 싶은 것보다 아이에게 먼저 내어주는 일이 당연해졌고, 희생과 헌신이 부담이 아니라 기꺼이 하는 일이 되었다.


완벽하지 않은 내 인생에 아이가 들어왔다. 완벽하지 않은 육아지만, 하루하루가 충실히 쌓이며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힘든 순간도 있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앞으로도 기대해 볼 만한 여정이라는 걸 날마다 깨닫고자 한다.


p30 오직 쓰기 위하여 - 천쉐

“이는 악보와 건반처럼 규칙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속박이 아니다. 자신의 규율과 규칙을 찾아내는 것, 자꾸만 도피하고 싶고 자꾸만 갈등하는 나를 길들이는 것은 곧 나 자신의 악보를 찾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갑작스러운 여행이나 예기치 않은 변수로 루틴이 깨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천쉐 작가의 말처럼, 루틴이란 다시 돌아올 ‘집’ 같은 것이라 금방 회복된다.

목표가 생기면 느리든 빠르든 계획을 세워 그 길로 걸어간다. 중간에 쉴 때도 있고, 방황할 때도 있지만 끝맺음을 향해 달려가는 성향이다.


몇 년 동안 번역만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내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실력, 번역이 주는 끝없는 스트레스, 성취감 없는 시간들 속에서 결국 내려놓았다.

그리고 놀랄 만큼 마음이 편해졌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초보 번역가로 근근이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외국어는 취미로 즐기기로 했고,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지금은 미래가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오히려 그 불확실함이 활력으로 다가온다.



p35 오직 쓰기 위하여 - 천쉐

“잘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계속 쓰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에 다가갈 수 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꾸무럭거리거나 펜을 놓지 말자. 오로지 글로 써낸 원고만이 나의 것이다.”


올해의 시작은 희망이 아니라 깊은 우울 속에서 시작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이룬 것도, 능숙한 것도, 전문성도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남편은 옆에 있기만 해도 된다며 위로했지만, 그 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왜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후회만 남았다.

원래 후회를 잘하지 않던 나인데, 올해 초에는 후회가 나를 삼켰다.


그러다 『기록이라는 세계』를 읽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쓰는 행위 자체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었다. 엉망진창인 문장이었지만 감정을 다스리는 데 놀라울 정도로 도움이 되었다.


지금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도 완벽을 향한 글이 아니라, 대부분 나의 삶을 기록하는 일에 가깝다. 그저 쓴다. 답이 없는 글쓰기지만 계속 써 나간다.


어린 시절의 꿈은 계속 바뀌었다. 엄마, 선생님, 사업가, 소설가… 귀여니 소설이 유행하던 시절엔 그 영향을 받아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내 소설들. 20대 초반쯤 다시 읽어봤을 때, 유치하지만 묘하게 나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은 진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