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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절 Jul 22. 2023

연고 없는 지역 이주자의 흠집

젊은이가 어쩌다 강릉에 왔드래요? - 2편



1) 사랑 때문에


강릉살이 6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흠집을 발견했다.

바로 '외로움'이라는 정신적 외상이다.


강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어쩌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왔냐"라는 질문을 자주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냥, 좋아서요"라고 대답해 버리지만, 강릉에 오게 된 거, 실은 전부 '사랑'때문이다.

장미가 만개한 4년 전 봄,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생애 처음 강릉에 갔다. 따스한 바람에 살랑이는 머리를 정리하며 역에서 나오자 1t 탑차를 끌고 온 그가 보였다. 강릉 토박이인 그는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은 채 안반데기를 지나 정선 나전역까지 드라이브를 시켜줬다. 오디오에선 맥드마르코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푸르게 빛나는 창밖의 풍경은 마치 슬로모션 효과를 켠 것처럼 고요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그렇게 서울-강릉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그날 이후 달에 한두 번씩 꼭 강릉에 갔다. 태백, 삼척, 속초, 동해, 영월... 그와 나는 강원도의 수많은 도시를 여행했고, 각자의 카메라에 서로를 담으며, 한 캔버스에 번갈아 그림을 그리며, 피아노를 치고 칼럼바를 연주하며 데이트를 했다. 당시 회사원이던 나는 마음 한편에 늘 예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강원도 대자연 속에서 그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영감이란 단비가 내려, 부스러져가던 가슴 촉촉해지는 거 같았다.

회사 생활, 인간관계, 출퇴근길엔 언제나 만원인 9호선 급행열차... 모든 게 버거운 그런 날에도 강릉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면 힘이 났다. 어느 날은 퇴근하자마자 도망치듯 강릉행 열차를 타고 겨우 몇 시간 있다가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출근한 적 있다. 그렇게 강릉은 사랑의 장이자, 흑백의 삶을 물들이는 염료이자, 전쟁 같은 삶의 도피처가 됐다.


이러한 생활을 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그러자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강릉은 학연·지연·혈연을 중시하며, 외지인에게 매우 보수적이고, 서울보다 놀 곳도 없어 지루하고 로울 거란다.


2) 외로움 그까짓 거


뜨겁던 사랑도 끝이 나고, 그의 친구들과도 인연이 끊겼지만, 결국 강릉에 왔다. 강릉에서 돈도 벌고 작업도 하겠다는 나의 꿈과는 이별하지 못했으므로.

마냥 낙천적이라거나 충동적인 성격은 못돼서 수입에 대한 고민을 오랜 기간 했다. 주말 열차는 매진이 부지기수. 실제로 강원도에서 방문 관광객 수 1위(2022년 기준)인 도시이므로 나에게만 인기 있는 장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장소 있고, 사람 많이 오가고, 사업 아이템까지 있으니 굶어 죽진 않을 거라는 결론 내렸다. 이후 주 수입원이 될 웨딩촬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서울-강릉을 오가며 업체 미팅을 하고, 샘플 촬영을 진행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 마침내 강릉 이주를 결정했다. 경고받았던 학연·지연·혈연이야 개인사업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겠는가. 외로움 그까짓 거, 시간이 지나면 친구는 어떻게든 생길 거고, 먹고살기만 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3개월, 6개월,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나는 이렇다 할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다. 예상처럼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었고, 학연·지연·혈연도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러나 외로움은 결코 그까짓 게 아니었다. 강릉에 온 초반, 이 도시 모든 곳에 헤어진 남자친구의 흔적이 묻어있어 어딜 가든 혼자라는 사실을 체감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며 혼자인 것은 익숙해졌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고독의 쓴맛은 언제나 낯설어 삼키기 쉽지 않았다.

카타르 월드컵을 볼 때도, 크리스마스에도, 새해에도, 독감에 걸려 끙끙 앓을 때도 혼자였던 건 괜찮았다. 참을 수 없던 건, 바쁘게 하던 일을 잘 끝낸 기분 좋은 어느 날, 편안한 차림으로 만나 맥주 한잔할 친구 한 명이 없다 거. 그게 참 지독한 외로움을 줬다.


3) 친구가 없는 이유


서울에선 나름 인싸의 삶을 살던 내가 여태까지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사귀지 못 한  크게 네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또래가 많지 않다. 이 도시의 20대는 대부분 대학생이며, 내 나이 또래는 서울, 수도권, 원주 등 일자리가 많은 도시로 간다. 강릉 전체 인구 중 30대는 9.7%로 가장 낮은 퍼센티지를 보이며, 20대는 두 번째로 낮은 퍼센티지를 차지한다.(2022년 기준)

둘째, 그나마 비슷한 나이대를 만나면 이미 결혼을 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알게 된 대부분은 30대였는데, 이들 열 명중 여덟 명은 혼인을 했고,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다.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함께할지라도 뒤집어진 괄호처럼 한 무리가 되기 쉽지 않다.

셋째, 비즈니스 관계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삶의 패턴이 비슷할지라도 비즈니스 관계에 친구들끼리 나누는 은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직장인과 달리 어떤 소속도 없는 프리랜서, 개인사업자에게 연고 없는 지역에서 비즈니스 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선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그래서 인위적인 노력을 해봤지만, 관계의 지속성을 갖는 건 별개의 문제. 강릉에 온 초반에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러닝 모임, 등산 모임 등에 나갔었다. 그러나 러닝 모임은 이단의 전도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고, 등산 모임은 새벽부터 산을 타고, 하산 후에 회식을 하며 주말을 보내는 패턴이 맞지 않았다. 돈 벌기 바쁘고, 운동하기 바쁘고, 쉬기 바쁜 현대인에게 낯선 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보수 없는 노동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관계는 시작보다 지속되는 게 더 어렵다.


4) 처방전


결국 다시 혼자. 바다에 가도, 산에 가도 외로움이라는 외상은 치유되지 않았다. 그러면 어쩌나. 계속 고독해야 하나. 그저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을까?

마침내 '사람 말고 성장으로 이 치명타에 새살을 돋게 하자'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강릉의 문화, 예술, 창업 관련 프로그램이나 지원 사업 등을 찾아 참여하기 시작했다.

관련하여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고 자주 살펴보는 곳들을 아래에 소개해 본다.


1. 청년센터 두루 @gndooroo

'두루'는 강릉시 청년의 성장과 양질의 삶을 목표로 한다. 취업 및 창업, 자산 형성, 주거, 정책 등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년 간 교류를 위해 쿠킹클래스, 원데이클래스 등도 진행한다. 2022년 2월 오픈하여 긴 역사를 지니지 않았으나, 블로그 및 인스타그램 등 SNS 활동이 활발하다.


2. 강릉문화재단 @gncaf

'강릉문화재단'은 지역 내 문화예술 교육 및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문화예술 소식을 전달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문화예술 공모, 진행, 모집 등에 대한 정보를 단출하게 전달한다.


3. 강릉시 공식 인스타그램 @gangneungcity

강릉시에서 운영하는 공식 채널로, 강릉 소식을 복합적으로 전달하는 뉴스레터의 역할을 한다. 축제 소식, 계절별 가기 좋은 관광지, 공모사업,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등 종합적으로 전달한다.


4. 솔방울들 @sol.bangwools

'솔방울들'은 참여한 사람들이 잘 살고, 서로 돕는 친구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강릉시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모임으로, <숲 소풍>,<벼룩시장>등 달마다 주제를 선정해 참가신청한 사람끼리 교류한다. 활동 시에는 이름 대신 별명을, 나이에 상관없이 평어를 쓴다.


5. 사회적협동조합인디하우스 @indiehouse.coop

'사회적협동조합인디하우스'는 지역 영화 상영, 워크숍,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영화관이나 OTT 서비스에선 보지 못할 독특한 영화를 접할 수 있다.


6. 강릉정보를 알려주는 @gn_info

강릉의 신상 맛집 정보뿐 아니라 여행 코스, 축제 정보, 개별 사업장의 이벤트 소식도 함께 전달한다. 강릉시 공식 인스타그램은 뉴스레터라면, 이 계정은 강릉의 매거진 같은 느낌이다.


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진 강연을 했고, 청년을 위한 주거 정책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창업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업 분야를 넓혔고, 지금도 다양한 프로젝트에 지원 중이다.

여전히 남루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맥주 한잔할 친구는 없지만, 공통의 관심사 안에서 만난 이들과의 시간은 더이상 노동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더 나은 나로 성장해 가는 기쁨은 고독의 쓴맛을 잠재울 만큼 달았다.

고로, 인생은 전보다 더 달콤해졌다.


학연·지연·혈연 보다 맺기 어려운 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의 세 가지는 한 번 자리하면 영구하지만,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끊어지는 게 인연이니까.


내 외로움의 처방은 온전히 나만이 내릴 수 있다.

연고 없는 도시에서 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멀어진 인연을 잡지 못 한 것에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고, 함께하는 연은 소중히 여기며, 다음 연줄은 좀 더 노련하게 다루기를. 각자의 방식대로 더 달콤한 인생을 살기를. 때론 '에헤라디야' 춤추며 혼자임을 즐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2019년 5월, 나전역
2019년 5월, 안반데기 카페에서
2023년 5월, 안목해변에서 혼자
2022년 겨울, 사근진해변
2023년 봄, 허난설헌
2023년 6월, 강연중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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