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엄마와 내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꼈을까?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 말을 따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딱히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모든 딸들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안 보이는 엄마의 규율 속에서 사는 게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편했다. 그게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날수록, 서로를 공유할수록 엄마와 나의 관계는 설명하기 참 어려운 관계였다.
어떤 친구는 나한테 말했다. "오리야 너희 어머니는 무슨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하냐? 그럴 거면 그냥 집에 가. 부담스럽다." 또, 어떤 사람은 "와~ 오리야 너 대단하다. 나도 엄마랑 친구 같고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데, 꼭 너 보고하는 것 같아." 또, 다른 사람은 "오리야,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어머님이 그런 거까지 통제를 하시니, 아무리 외동딸이어도 너도 독립까지 했는데 너 너무 자립심이 없는 거 아니야?!" 등등 이런 종류의 말들을 참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랑 엄마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말하고 판단을 하지? 자기들이 뭔데, 이러쿵저러쿵 하는 거야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무시했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라고 하면서 나에게 했던 말들은 당시의 나에게는 듣기 싫었던 잔소리일 뿐이었고 우리에 대해 훈수를 둔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우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판단을 한다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 엄마를 두둔했다. 아무튼, 나는 30대 초반까지 엄마와 나의 관계가 애틋하다고 생각했고, 나로 인해 희생한 엄마를 위해 나는 꼭 엄마한테 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내가 노력을 해도 엄마가 바라는 딸의 모습이 될 수 없었다. 엄마가 바라는 딸의 모습은 명문대를 졸업하여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전문직종에서 일을 하고 매달 엄마한테 용돈으로 몇 백만 원은 쉽게 줄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심지어 엄마는 성인이 된 딸의 인간관계마저 통제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말하는 그 어느 것도 들어줄 수 없었다. 명문대는 실패했고, 누구나 알만한 대기업에서는 잘렸고, 전문직종 취업에 성공은 했지만 채 1년이 되지 않아 적응을 못해 그만뒀다. 매번 실패할 때마다 엄마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아서 그런지 점점 나의 실패가 무서웠다. 나는 결국 엄마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했다. 나의 거짓말은 나의 인생도 바꿔놨지만 엄마의 인생도 바꿔놓았다. 거짓말을 하기 전에 엄마는 매번 나를 위해 인생을 희생했는데 너는 그것도 못하냐라고 비난을 했지만, 내가 거짓말을 시작한 후로는 역시 하나밖에 없는 내 딸이 나를 위해 이런 꿈을 이루어 줬다고 하면서 주변에 나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항상 못난 오리 같았지만, 엄마한테 거짓말을 할 때면 백조가 된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 느낌을 더 받기 위해 엄마에게 화려함을 채워줬다. 그럴수록 현실은 시궁창이어도 엄마한테는 자랑스러운, 하나밖에 없는 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거짓말은 내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나는 어떤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도 헷갈렸다. 간혹 엄마한테 거짓말한 내 모습에 취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겨울바람처럼 차가웠고 따가웠다. 그때의 나는 그 칼바람을 맞서기에는 너무 두려워 언제나처럼 차가운 현실을 피하기만 했다. 당장 앞에 있는 거짓말을 수습하는데만 온 힘을 다 쏟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모르게 이런 내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가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한테 말을 꺼냈다. 현재의 내가 이렇게나 망가져있다고 거침없이 말을 꺼냈다. 엄마는 이런 내 모습에 당황했다. 나는 엄마한테 내가 엄마가 기대한 딸은 아니라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가감 없이 말했고, 전부는 아니지만 엄마의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 했던 거짓말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엄마는 믿지 않았다. 내가 꼭 귀신 들려서 이상한 행동을 한 사람처럼 취급했고 내 딸이 이럴 수 없다고 부인했다. 나는 처음으로 엄마 앞에서 내가 지금 잘못된 걸 인정하라며 내 스스로 마구 때렸고 벽에 머리를 박았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본 엄마는 나를 말리지도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때의 나는 엄마한테 미안함 보다는 이렇게 엄마 마음에 상처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통쾌했고 사이다를 마신 것 마냥 속이 뻥 뚫렸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꽤나 오랫동안 엄마와 서로 연락을 안 했다. 내 휴대폰은 고요했고 나는 속 시원함을 느꼈다. 이때 나는 일찍 못 배운 자립심을 배웠다. 처음으로 내 인생을 내 스스로의 선택으로 살아간다고 느꼈고 누구를 위한 인생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으로 살아감을 느꼈다. 당시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진정한 독립이란 걸 배웠다. 그 사람은 나에게 내 인생에 있어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줬고 선택에 있어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책임감을 알려주었다. 또한, 그는 항상 나의 선택을 존중했다. 나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것을 그 사람을 통해서 배웠다. 꽤나 새로웠고 내 인생을 나 혼자 선택해서 개척해 나간다는 이 느낌이 좋았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깨달았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도 배웠고, 그동안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가장 몰랐다고 한다면 드디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스스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시간이 꽤나 지나서 엄마가 처음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엄마의 힘겨운 사과 연락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엄마의 행동을 이해해라가 아니라 엄마가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울먹이며 우리 딸이 엄마 때문에 힘들었겠다며 엄마가 참 못났다고 하나 밖에 없는 딸을 고생시켰다며 자책했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보다 나은 인생을 살게 하려고 그랬던 거였다고, 하지만 그게 내 딸을 힘들게 한다면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용서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처음으로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한테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받았던 그 어떤 상담 치료와 약보다 효과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천천히 나는 엄마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여전히 우리 엄마는 나로 인해 자존감을 채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한 번에 확 바뀔 수 없듯,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나는 여전히 엄마의 눈치를 보기는 하지만 나는 이제 엄마한테 대놓고 말을 할 수 있다. 엄마 나 효녀 하기 싫어!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안 사랑하는 건 아니야! 나는 엄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해, 하지만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야. 그러니 내 선택을 존중해줘! 그럼 엄마는 마음에는 안 들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인정해 준다. 지금의 나는 불과 3년 전의 내 모습보다 많이 안정되어 있고 꼭 이제 막 성인이 된 사람처럼 모든 게 새롭다. 나는 지금 나의 모습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